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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Mar 22. 2019

여행에서 우리의 낭만을 실현하는 일

발리에서 자전거를 타요 - 발리 누사두아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우주 중심에는 아이가 자리 잡았다.  나에게 사랑이란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었다. 자는 시간을 쪼개 아이를 위한 내일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 평소 읽고 싶던 책 대신 육아서를 집어 드는 일,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아이의 것으로 채우는 일, 나를 위한 욕심은 모두 내려놓는 일.  우리 부부는 이전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게 모든 것을 뒤로 미뤄두고 오로지 우리 하마를 사랑하는 일로만 하루를 채웠다 . 아이를 뛰어나게 키우려는 것도 남다르게 자라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것이 우리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에겐 여행도 당연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졌다. 네가 좋은 것, 너에게 경험이 될만한 것들로 일정을 채우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에게 로망이었던 일들은 마음속에서 꺼내어질 틈도 없이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서운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이, 늘 하던 대로. 우리 일상이 늘 그래 왔으니까. 물론 아이에게 맞춰진 여행도 충분히 만족했고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게 충분하다는 생각했으며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완벽한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의 세계가 조금은 기울어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발리에서의 어느 날, 나는 문득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왠지 자전거를 타고 단지를 한 바퀴 돌면 상당히 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고,  아! 정말 자전거를 타고 싶어! 너무 많이! 제발! 열망이 끓어오른 것이다. 아니, 발리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의식의 전개가 더욱 황당한 것은 나는 자전거를 못탄 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자전거는 무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무모함이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고개를 들고 일을 벌인다. 발리 해변에서 자전거라니! 생각만 해도 낭만 그 자체이지 않은가!  아마  오다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왔고, 나도 모르게  저들은 아이가 없는 싱이니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남일 보듯 보던  마음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갑자기 뾰족  튀어나온 것 같았다.


- 남편, 우리 내일 아침에 자전거 탈까?
- 갑자기? 자전거?
- 타보자. 간단히 단지 한 바퀴 돌면 재밌을 것 같아.


우리가 머물던 누사두아 하얏트 리조트에 문의해보니 다행히 유아를 뒤에 태울 수 있는 자전거가 비치되어있었다. 역시 방법이 있었군. 처음부터 포기할 필요가 없었어. 겨우 자전거일 뿐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순수히 내가 주인공인 일을 꺼내들었다는 생각에  달뜬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발리에서의 자전거 타기가 추진되었다.



 




다음 날 아침, 청설모가 분주히 베란다를 오가며 먹이를 나르는 분주하고 평화로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둘러 방에서 나와 자전거 대여소를 향했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왔는데 어영부영 9시, 이미 땅덩이는 달궈질 대로 달궈져 있었다.


먼저 유아를 태울 수 있는 자전거를 빌렸다. 그리곤 내가 탈 자전거 실물을 마주했는데, 아!!! 생각보다 너무 낯선 나의 자전거!  자전거란 것이 원래 이렇게 컸던가?! 몸으로 배운 건 잊지않는다고 들었거늘 20여 년만에 자전거를 타는 게 가능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두려운 마음에 애꿎은 자전거 안장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마를 뒷좌석에 태운 남편이 "이제 됐지?"하고 갑자기 출발해버리는 게 아닌가.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어... 어디가?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멀어지는 뒤통수가 말했다. "워터 블로우! 거기서 만나!"


"네? 워터 블로우요????!!!!!"


전날 <단지 한 바퀴> 돌아보자는 제안을 할 때 나의 의도는 하얏트 리조트 단지였다. 이 단지만 해도 꽤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누사두아 리조트 단지 (리조트가 몇십 개 있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실 워터 블로우는 하얏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그걸 몰랐던 나는  장거리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에 너무 무서워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이거 타자고 했어, 그냥 애기랑 수영이나 할 걸, 내가 무슨 자전거야 엉엉. 내가  우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비 없는 부자는 점점 더 멀어졌다.  최면을 걸었다. 나는 할 수 있어,  휴양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오랜만에 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해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처음엔 바닥을 여러번 마주해야했지만 다행히 몸으로 배운건 기억하는 그 명제는 나를 빗겨가지 않았다. 하얏트 단지 내에서 몇 번의 교통 체증을 일으키며 쏘리쏘리를 외치다보니  균형이 잡혔다 . 두려움 위에 이야, 자전거 재밌네 하는 생각이 조금씩 덮어질 무렵 남편과 아이가 쉬고 있는 곳에 당도했다. 다시 함께 페달을 밟았다.  길 끝에 워터 블로우가 있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워터블로우를 바라보니 파도가 매우 세다고 하여 붙여진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잠잠했다. 맑은 발리 하늘 아래선 땅과 하늘 양방향으로 열기를 뿜어내며 발가락 하나하나를 노릇노릇 정성스레 익혔다. 파도가 높은 시간은 11시라고 한다. 덥고 뜨겁고 배고프구나. 어차피 파도를 보러 온 건 아니었으니 경치 구경 한번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돌아 나왔다.  



리조트로 돌아가는 길, 자전거가 몸에 익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휘어 감고 나갔다. 정말 시원했고 정말 자유로웠다. 쉼 없이 웃음이 나왔다.  해변의 사람들은  다 벗어던지고 발리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일광욕을 하거나 서핑을 즐기거나 나처럼 그 모습을 보며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고 있었다. 굉장히 발리스러운 장면들.  이런 광경을 이제야 보다니, 왜 진작 자전거 렌털 할 생각을 못했을까. 매일 저녁 탔으면 좋았을걸. 나는 왜 아이가 주체가 되지 않을 만한, 내가 주체가 되는 일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 아이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우리의 우주가 한 번쯤은 모든 운동을 멈추고 쉬어도 좋지 않았을까.


이 자전거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우리 하마는 처음엔 긴장하더니 아빠 뒤에서 내내 웃었다. 저 나무 보라며 파인애플 같은 것이 주렁주렁 달려있다며. 저 열매는 원숭이가 와서 반은 따먹고 간 것 같다며. 제 나름대로 이 시간을 즐겼다.  우린 아이가 우선시되지 않는 일을 하면 큰일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의 유희와는 무관한 아이에게만 좋은 일을 하더라도 아이의 그 웃음을 보면 내가 덩달아 행복하듯 어쩌면, 가끔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계획은 방에 가서  샤워한 뒤 룸서비스를 시키는 거였지만 푹 익힌 삼계탕처럼 흐물흐물해진 우리는 도저히 방까지 걸어갈 수도, 룸서비스를 기다릴 여력도 없었다. 조식당으로, 문자 그대로 달려들어가 자리에도 앉기 전에 셋이 나란히 서서  오렌지 주스 두 잔씩 원샷했다. 주스가 혈관을 따라 몸 끝까지 흘러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여행을 통해 일상이 조금씩 균형을 잡아간다. 모든 취향을 통틀어 함께 좋아하는 건 여행과 음악 그리고 떡볶이뿐인 우리 부부가  유일하게 잘 맞는 생각이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오던 대로 살아갈 테지만 가끔은 오로지 아이가 중심이 된 일상이 아니어도, 우리 셋의 우주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며 균형을 맞추며 움직여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거라 깨달았다.  우리는 조금씩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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