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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Apr 12. 2019

우리의 길 위엔 무엇이 있을까

오키나와, 여유로운 여행의 시작

혹한기의 긴 추위에 지쳐 어디든 몸을 녹일 곳이 절실했던 겨울, 온 세계의 따뜻한 도시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오키나와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우리 하마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오키나와의 고래상어를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던 터였다. 비행시간 2시간 반이라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 함께 이 추위에서 벗어나 보자. 맑은 공기를 마셔보자고. 남편의 소원대로 드디어 아이와 함께 고래상어를 보러 간다. 우리 하마가 38개월이 되던 때였다.


짐을 꾸리다보니 이전과는 뭔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3돌 즈음 기저귀를 뗀 덕분에 캐리어의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던 기저귀 짐이 사라진 것이다. 트렁크에 여유가 생겼다. 여행 준비에 노하우가 쌓인데다가 일정도 짧고 이제 웬만한 요리는 어른과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준비할 거리도 예전보다 많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괌에 갈 때만 해도 25개월 된 아이와 처음 비행기를 타는 여행인지라 무엇을 가방에 넣어야 할지 몰라 버벅대다가 새벽 3시까지 짐을 싸지 않았던가. 심지어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2시간 만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지. 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좀비 수준이었는데 말야. 그간 여행에선 트렁크에 빈 자리가 없어서 늘 단벌 신사로 다녔었지만 이제는 기저귀가 있던 그 자리에 나의 옷과 책을 채워넣는다. 육아와 일로 힘들어 하던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육아가 아주 힘든 시기는 잠깐이라고, 곧 순간을 즐기는 시기가 온다고. 고난의 시간에 박혀있던 내게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시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가방을 채워 넣으며, 한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을 만큼 지쳐있던 그 시간이 지나고 숨 돌리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아이가 아침 7시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오키나와 가는 날이다!"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춘 덕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여유로운 아침을 먹고, 여행 갈 때는 선글라스를 쓰고 가야 한다는 아이의 말에 따라 패딩에 선글라스를 낀 채로 길거리 한복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이렇게 눈치보며 허겁지겁 라운지 음식을 먹을 바에야 안가고 말겠다던 지난 날의 결심이 무색하게 라운지 쇼파에 앉아 여행 일정을 이야기 하며 요기를 하고, 얌전히 비행기에서 뽀로로를 시청하다 보니 2시간 반 이 훌쩍 지났다. 출발 전 부터 기분이 좋던 아이는 오키나와에 도착한 뒤에도 쉬지 않고 흥을 뽑아냈다. 낮잠을 자지 않은 상태라 아무래도 졸릴 것 같아 물어보면 <나 안 졸린데?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러는 거야. 졸린 게 아니라 잠깐 가려워서 눈을 비비는 거야>라고 하더니만 갑자기 눈이 풀리며 기절. 이 녀석, 그럴 줄 알았지. 이런 우리 하마를 렌터카에 태우고, 호텔로 향했다. 서쪽으로는 무겁고 몽실한 구름을 가득 담은 석양이 펼쳐져있었다. 바다는 멈춘 것처럼 평온했다.


아이 친화적이라는 차탄의 힐튼 리조트는 듣던 대로 깔끔하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7시 반. 호텔 레스토랑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 리조트를 한 바퀴 돌며 밤 산책을 했다. 오키나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더니 3 계절 옷 챙겨 오길 잘했지 뭐야. 4월이 되면 좀 나아지려나, 내일도 날씨가 좋았으면, 잔잔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 하마는 카운터에서 선물로 받은 야광 인형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앞서 뛰어나갔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을 낯설어하던 아이였는데 여행지에서는 더 이상 경계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았다. 우리도 덩달아 여유로워졌다. 조금 차갑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이 아이를 지나 우리 옆을 일렁거리며 지나갔다.

오키나와 공항
오키나와 나하의 석양
차탄 힐튼 리조트





인간이란 참 간사하면서도 아둔해서,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아이를 한없이 기특해하고 나 자신을 격려하며 이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으면 되는데, 조금씩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만큼 컸네. 벌써 4살이야. 자, 그럼 내년 유치원은 일반 유치원으로 보낼까 영어유치원으로 보낼까? 교육은 어떻게 진행해야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모든 여유와 감사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갑자기 조급해진 나는 인터넷을 열고 정보를 얻고자 여기저기 두드려본다. 그 곳에서는 유명한 책을 쓰거나 자신만의 확고한 육아법으로 유명해진 인사들의 말과 글이 떠돌고 있다. 내 방법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동의하며 따르는 사람들, 소신을 가지고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 자식의 지능과 성취를 엄마의 훈장으로 매달고 있는 사람들, 귀를 팔랑이며 정보의 바다를 헤매는 사람들, 나처럼 아무것도 몰라 정보를 얻고자 기웃거리는 초보엄마들이 각자의 생각을 쏟아낸다. 수학은 몇 살부터, 학습지는 무엇을, 코딩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한다 등등. 육아서를 보면 부모들은 아이를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자기 능력 발휘하면서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은 다른 전제들보다 "자기 능력 발휘를 얼마나 할 것인가"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작 시기는 점차 어려지고 있다. 이 대열에 올라 나도 불현듯 초조해졌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문장이 마음에 떠올랐다. 이내 모든 생각을 꿀꺽 삼켰다.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임신 중기 무렵, 산부인과 정기 검진으로 초음파 정밀 검사를 하고 있는데, 화면을 보고 흠칫 놀랐던 적이 있다. 손가락이 5개가 아니라 한개 더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력해준 사진을 집에 가지고 와서 손가락을 세어보는데 아무리 세보아도 6개였다. 그럼 담당 의사선생님께 바로 물어보면 될텐데 선생님이 <어!그러네요! 큰일났네요?!>라고 할까봐 두려워서 묻지도 못하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손가락이 6개인 아이들이 있었고 나오자마자 수술을 한다고 했다. 설마 손가락이 6개일리가 있겠나 싶었는데 그럴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 다음 초음파 검진, 넌지시 물어보았다. 손가락이 5개 맞나요? 선생님은, 뭘 그런 당연한걸 물어보냐는 듯 네. 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이 점이 계속 걱정되었다. 출산일이 임박했을 즈음엔 바로 수술하면 된다니까 괜찮겠지. 마음을 다잡았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를 자연분만하고 품에 안았을때 손가락의 갯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다고,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신생아실로 나는 회복실로 올라온 뒤에야 그 손가락 갯수가 궁금해졌는데, 별거 없었으니 아무말도 없는 거겠지 싶었고 손가락이 5개인 것에, 모든 것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리고 선배들을 보다보니, 아이는 부모가 만든다는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한없는 잠재력을 가진 아이가 방관하는 엄마를 만나 그 날개를 펼쳐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갇히는 경우도 보았고 반대로 평범해보이던 아이였지만 엄마가 그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잘 살려주어 꽃을 피우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부모로서 늘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세상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적합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과정의 주인공이 나와 우리 아이가 아닌 성과물이 되어버리는 일이 많다. 그런 선배 부모들을 속으로 이해할 수 없다 했지만 이제 육아를 조금 하다보니,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했겠나, 하다 보니 결국 그렇게 되었겠지, 깨닫게 된다. 나라고 그렇지 않을리 없다. 그런데 만약 나의 우선순위가 그렇게 된다면 모든 순간 멈춰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내가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의 성취와 비교하는 마음이 들면, 혹시나 그것을 보며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한다면, 오로지 건강함으로 감사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야지 싶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결국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걸까. 여러 생각들이 뒤엉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대로 인생을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성취뿐만 아니라 자신의 길을 만드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마땅히 끌어줘야할 바를 끌어주겠지만, 그와 별개로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그 감동과 감사함을 정말 될 수 있는한 영원히 잊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모든 결정이 이런 마음을 기준으로 내려졌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던 오로지 교육에 치중을 하든 놀기만 하든 모든 길의 끝에는 허무하게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배우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러다 입시를 치루고 성인이 될텐데 각 단계를 성공한 듯 미션을 통과한 듯한 기분이 들 수는 있어도 결국에 그 끝에 대단한 선물이 또는 대단한 열매가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닐테다.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뒤에 세상이 변할 것 같지만 일상은 놀랍게도 그대로인 것처럼, 내 인생도 아이의 인생도 대단한 것을 얻으려고 걷지만 결말엔 다른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된 인생이란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무엇을 느끼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아는 사람, 내게 있는 복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겸허하게 열심을 다해 사는 삶이다.  런 마음을 통해 우리의 그 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무슨 길을 걷든간에, 무슨 선택을 하든 늘 그랬으면 좋겠다. 




한껏 여유로운 밤공기가 오키나와에 내려앉았다. 지치던 날엔 이런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것 처럼 다시 또 파도가 다가올테지만 지금을 감사하며 이 호시절을 최대한 오래오래 즐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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