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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ug 23. 2019

아이랑 여행을 왜 가? 어차피 까먹을 텐데

사소한 경험이 모여 꽃이 피었다 - 싱가포르 센토사섬

우리 하마는 유난히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다. 새로운 것을 바로 시도하는 적이 없고 돌다리를 여러 번 두드리고 두드리다가 결국엔 건너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마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렇게 조심성 있는 성격은 유아기 사건 사고를 방지해 주고 침착한 성정을 갖게 해 주었지만 스스로 새로운 경험을 피하는 기억이 쌓 습관이 되진 않을까, 다양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엔 세상을 보는 시각까지 좁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모든 감각을 열어  다양한 세상을 마음껏 느끼고  폭넓은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길 바랬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은 정말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걸, 더 나아가 나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을 깨 부스는 것은 아이 스스로 할 일. 우리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가 나아지길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 하마가 여행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른들도 여행에서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기듯 아이도 그런 모양인지, 일상에선 시도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여행에 와서 하나씩 해나가는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었다. 또래들에겐 시시하지만 우리 하마는 시도도 못했던 워터 슬라이드를 엄마와 함께 라면 같이 타고 내려올 수 있다던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관심 없는 척 나의 뒤에 숨지 않고 혼자 다가가 만지고 온다던가 하는 아주 간단한 일들이었다. 다른 이가 보기엔 번 드러진 모험이 아니지만 제 스스로는 꽤나 큰 모험이었을 테다.  여행지에서나 반짝 새로운 것에 발을 담가보았을 뿐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그간 여행에서 쌓인 도전의 경험들은 싱가포르에서 을 피웠다.




싱가포르는 우리의 6번째 해외여행지였다. 이전의 여행에서는 아이의 개월 수에 맞게 거의 휴양 위주고 그 외에는 관람 정도라  노는 것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면 싱가포르는 우리에겐 좀 더 새로운 여행이었다. 싱가포르는 8일의 일정을 꽉꽉 채워도 모자랄 만큼 새로운 즐길거리가 많았는데, 나는 우리 하마가 혹여 싱가포르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거부한다면 모두 즐기진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왔다. 아이는 저마다 꽃 피는 시기가 있듯 우리 하마도 언젠가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저 순간을 즐기다가 와야지 싶었다.



우리가 처음 4일의 일정을 보낸 센토사 섬의 샹그릴라 리조트에는 매일 새로운 액티비티로 채워져 있었다. 재밌어 보이는 워터슬라이드도 2종류나 있었고, 매일 11시마다 진행되는 키즈 액티비티는 보기만으로도 신나 보였다. 풀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하마는 처음엔 늘 그렇듯 액티비티에는 물론이고 슬라이드도 절대 타지 않겠다고 공표했던 참이었는데,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정말 하고 싶은데 낯설어서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웬일로 본인이 나서서 키즈 액티비티 참여겠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척척 도전하는 이들에겐 별일 아니겠지만 우리 하마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위를 달리는 게임이었는데 느리지만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길 위를 달렸다.



키즈 액티비티에 성공한 뒤 풀장에서 놀던 아이는 우리 손을 끌고 슬라이드가 있는 풀장으로 갔다. 원숭이와 개구리가 그려진 꽤 길고 빠른 슬라이드였다. 아마 엄마와는 탈 수 있겠다고 다짐한 모양인데 안내문엔 성인 탈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전의 여행에서 엄마와 함께 하루에 50번도 더 넘게 슬라이드를 오르내렸던 우리 하마였기에 당연히 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타야 한다는 사실은 굉장한 허들이었다. 사실 나는 우리 하마가 센토사 섬에서는 슬라이드를 못 타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타더라도 마지막 날에나 낯선 마음이 좀 걷히고 두려움이 내려앉으면 그때쯤 려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마의 고민은 1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다른 곳에 가서 놀던 우리 하마는 다시 슬라이드에 가보자고 했다. 본인이 타보겠다고. 사실 남들이 볼 땐 별거 아닌 슬라이드지만, 4살이던 우리 하마는 이때까지 놀이터에서 혼자 미끄럼틀을 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선 곳에서 혼자 줄을 서고, 혼자 슬라이드에 올라 발을 떼는 건 엄청사건이 분명했다. 아이의 성장 놀라웠다. 슬라이드 아래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나는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이 슬라이드는 일정 내내 수십번을 타고 내려왔다.



센토사 섬 첫날의 경험은 아이에게 새로운 분기점이 된 것 같았다. 후 모든 일정에서 하마는 우리보다 더 모든 것에 나서서 신기해했고 두려움도 없었고 새로운 체험을 해보자는 우리의 제안에 "싫어, 여기에 있을래." 대신 기대하는 눈빛으로 따라나섰다. 여행 막바지에는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얼마나 재밌고 새로운 지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분에 우리도 이 도시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아이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여행의 분기점이 되었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 샹그릴라 액티비티 (1) 수영장에서 공을 불어 풀장 반대편까지 가는 액티비티
싱가포르 샹그릴라 액티비티 (2) 물 위 달리기 -  누가 더 빨리 가나/ 누가 안 빠지고 달리나/ 누가 멋있게 다이빙 하나
달린다
두번째 달리기
성공!
야호!
슬라이드 기다리기- 슬라이드가 2종류 (개구리/원숭이) 였는데, 안전요원에게 몽키 몽키! 라고 여러번 말했다 한다.
처음으로 혼자서 슬라이드 탄 날
즐거운 센토사 섬
즐거운 센토사 섬 - 아이들의 천국이다
액티비티 참여해서 받은 풍선을 들고-
센토사 섬에서 즐거운 루지타기
센토사 섬에서
센토사 섬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린 아이랑 여행을 왜 가? 어차피 다 까먹을 텐데.” 맞는 말이다. 나는 우리 하마가 이 여행을 기억할 것이라고는 전기대하지 않. 하지만 인간의 성향이란 한 순간에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경험들이 모여 이루어지듯, 우리의 여행에서의 순간들이 하나씩 쌓여 내일의 아이가 되고 더 다양한 경험을 입은 그 아이는 한 살 한 살 자랄 것이다.  여행의 다양한 변수에 대처하며 새로운 곳을 여유롭게 즐기는 능력, 새로운 경험이 주는 생경함과 짜릿한 성취감이 아이의 세포 하나하나에 차곡히 쌓일 것이다. 여행이란  단순히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눈을 하다 더 키워가는 것이듯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하마가 자라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세상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 많이 시도해보고 실패도 하고 성공해봤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길, 이를 바탕으로 뚜렷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한 유연하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때까지  부모로서 아이에게 기회와 영감을 주고, 나중에 혹시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이전의 여행에서 찾은 용기와 시선을 바탕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보호자이자 동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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