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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Sep 05. 2019

음악과 함께하는 여행

음악이 쏟아져내린 밤- 싱가포르, 슈퍼트리쇼

남편과 나는 중창단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낭랑한 20대 후반의 겨울이었다. 회의 성가대 휘자님이 합창대회 출전용으로 창단을 꾸렸는데 그 곳에는 전공자가 반, 전공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비전공자들 , 그리고 나처럼 노래 부르기를 즐겨해서, 재밌을 것 같아서, 언니들 따라 들어간 사람들 몇 명까지 20 여명이 모였다. 우리는 다음 해 가을 경연 참가를 위해 겨울 즈음부터 매주 토요일 낮에 모여 3~4시간씩 연습을 했다. 


중창단을 하기 전부터 우리 둘을 공통으로 아는 여러 사람들이 너무 잘어울릴 것 같다며 이어주기 위해 부던히 노력해기 때문에 남편의 존재 자체는 알고 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 그는 내 이상형는 다른 사람라, 시큰둥해했 것 같다. 그런데 중창단을 시작한 이후에는 지휘자님까지 나서서 나에게 남편에 대한 칭찬을 늘어으셨다. 가 볼 때는 전혀 비슷한 점이 없는데 왜들 이러는 걸까. 심지어 지휘자님은 우리에게 각각 중창단 총무/ 회계까지 맡겨버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그는 수시로 번개를 하자며 사람을 모았다. 톡방은 매일 불이 났다. 말이 많네, 나랑 너무 안맞네. 열심히 남편을 피해다녔다.(알고보니 나를 만나기 위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나누자면 남편은 과묵한 편이다.)



그러던 어느 3월, 여전히 무거운 코트 위로 살랑 봄내음이 흩어지던 토요일, 그 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연습에 빠져서 베이스에는 남편만 홀로 나온 날이 있다. 그 날의 연습곡은 알 수 없는 이탈리아로 된 노래. 템포는 매우 빠른 반면 분위기는 어두워서 잘 부르면 웅장하지만 잘 못부르면 너무 가볍거나 아니면 음침 곡이었다. 전체 연습 후 소프라노-알토-테너- 베이스 순으로 파트 연이 이어졌다. 내 파트가 끝나고 나선 악보에 고개를 박고 가사를 입에 붙이고 있었는데  그때 뒤에서 홀로 베이스를 지키고 있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이스엔 혼자 와서  부끄럽겠다고 생각하며 시선은 여전히 악보에 두있었는데, 갑자기 멈칫, 고개를 들다. 아니 저 사람, 저렇게 노래를 잘했던가? 어떻게 이 노래를 저렇게 멋진 중저음으로 부를 수가 있지? 짝 놀란 토끼 마냥 고개를 든 채 멈춰버렸다. 베이스 파트 연습 시간 동안 알 수 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지 멈추지 않았다. 전체 연습 시간에도 귀는 내내 뒤쪽을 향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반년에 걸쳐 이어지던 사람들의 노력 무색하게 그 이상한 노래를 부르던 낮고 웅장한 목소리 하나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린 것이었다. 그 간 조금씩 스며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날, 그 교실에서, 그 노래로, 가 예전에 곤고히 세웠던 이상형의 조건은 더 이상 모없어졌다. 세상 변덕스러운 내가 그렇게 무나 쉬운 이유로 반해버린 로 (나조차도 다시 변할거라 생각했지만) 그 마음이 예상과 달리 사그러들지 않아서 우리는 1년여 동안 순탄하면서 순탄하지 않던 연애 하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책에서나 보던 그런 생각을 하게되고, 그렇게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서 창단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주었다. 뭉클했다. 우리의 인연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태어난 우리 하마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마는 다른 아이들보다도 유독 노래를 좋아다. 어디를 가든 우리의 발을 붙잡는 것은 바로 노래,  연주. 음악. 우리 나라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어디선가 소리가 나면 우리는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우리 하마는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주 아가일때부터, 하와이에서 오키나와에서 발리에서 길바닥에 앉아 공연을 보고 박수를 치고 따라부르며 한참을 자리를 키곤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함께 괜찮은 공연도 보러간 적이 없고, 그 흔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조차 아이에게 시끄러울까봐 보지 못하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찾아듣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이 아닌 셋이 함께 즐기는 음악은, 비록 그 것이 길거리 공연일지라도, 순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마법 주문 같았다.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음악이 없었다면 우리의 여행은 매우 빈곤해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싱가포르의 손꼽히는 볼거리 중 하나는 바로 슈퍼트리쇼 불리는 가든랩소디. 거대한 식물원인 가든스 바이더 베이 옆에 있는 커다란 슈퍼트리(아바타 나무처럼 생겼다)에 설치된 조명이 음악에 맞춰 반짝거리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나베이샌즈몰 앞 계단에 앉아  8시 레이저쇼를 보고 8시45분 슈퍼트리쇼를 보기위해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리나베이샌즈몰에서 가든스바이더베이는 멀지 않은 거리인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복잡해서 몇번을 뱅글뱅글 돌다가 인파들을 헤치고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슈퍼트리쇼를 볼때 바닥에 누워서 보라고 한다. 슈퍼트리가 너무 높기 때문에 앉아서 보기엔 목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바닥도 깨끗하지 않고 여기서 쥐를 보았다는 후기도 생각났고 돗자리를 챙겨온 것도 아니라서 4살 아이와 바닥에 눕는 것이 주저되었다.  셋이 엉거주춤 앉았다가 너무 불편해서 우리 하마만 유모차에 눕히고 우리는 그 옆에 불편하게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올리고 보았다. 조명이 멋지게 반짝였지만 감흥은 없었다. 대체 슈퍼트리쇼라는 것이 왜 멋있다는거지. 저 올려다 보고 있는데 우리 하마 유모차 차양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 그냥 셋이 바닥에 누웠다. 눕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아! 왜 이제야 누웠을까!




불빛들이 음악을 안고 우리 위로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슈퍼트리쇼의 음악은  Fly me to the moon, Moon river,  월량대표아적심 (첨밀밀  ost). 음악들이 다르게 가올때, 예상하지 못한 변주로 진행될 때 감동은 극대화되는 법이다. 숙한 멜로디나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노래의 웅장한 전개 그 이야기 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남편의 표정을 보니 이 순간 어떤 느낌일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악에 맞춰 우리의 서사가 떠올랐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에는 알 지 못했던 거대한 감정의 진폭 속에서 서로가 부던히 애쓰며, 함께 감동하고 나누고 위로하며 자라고 있고. 이렇게 셋이 바닥에 누워 밤바람을 맞으며 불빛 속에 듣는 음악싱가포르 여행이 비로소 완벽해졌다고 느껴질 무렵, 우리 하마가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아마 실제로 이렇게 느낀건 아니고 나에게 하도 들어서 알고 있는 표현이 나온거겠지만). 만약 그림을 그리다 만났다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함께 감동을 받 때 이런 벅찬 기분이려나.  동하는 순간의 선이 같다는 것을 느꼈을때 우리의 음악은 축복이 되었다.


 

몽환적이고 섬세한 불빛 아래 공기를 가득 채운 가사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처럼,  쏟아져내리던 별을 보던 마우나케아에서 처럼, 불빛 음악에 푹 빠 밤이었다.




싱가포르에서, 4살 가을



모든 노래에는 서사가 있다. 인생이 긴 연주곡이라 한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쯤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회사로 집으로 뛰어다니며 아이를 돌보던 시간들이 너무 버거워서 처음의 내게 암흑으로 느껴졌지만, 돌아보니 셋이 함께 마음을 나누고 힘든 순간을 헤쳐나가는 그 때가 그리고 지금누가 보아도 내가 보아도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마 우리의 지금은 한껏 밝고 경쾌한 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한 순간에도 클라이맥스를 찍는 순간에도 께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들었던 순간을 그리워 것이다.




우리의 여행에는 별빛이 내려 /  지난 2년간 아이와 함께한 여행 성장 기록.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문득 지치는 어느 날 여행을 계획하고 그 날을 기대하며 다시 일상을 소중히 살아내고 그러다 떠나는, 평범한 여행자의 빅아일랜드, 오아후, 발리, 오키나와, 싱가포르, 다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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