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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Sep 20. 2019

우리가 가족이라서 다행이야

싱가포르 여행이 좋았던 진짜 이유



싱가포르는 볼거리가 많았다. 싱가포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놀이공원 같았다. 특별한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범작은 도시 곳곳에 이렇게 관광상품을 잔뜩 만들어놓고 도시의 수입원 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니 감탄이 나왔다. 아무리 물놀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수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워낙 가볼 곳이 많으니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리는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수영을 하고 그 해가 진 다음에는 밤까지 관광을 다녔다.  센토사섬에서는 윙스 오브 타임 공연과 루지 타기를 즐기고, 아빠 머라이언상도 보았고 본섬으로 넘어와서는 하루는 가든스 바이더 베이, 또 다른 날에는 주룽새 공원에 갔다. 밤에는 리버크루즈를 타고, 다른  밤에는 레이저쇼와 슈퍼트리 쇼를 보았다. 흔히 알려진 싱가포르의 명소들은 모두 가본 셈이었다. 지금껏 여행에서는 아이가 더 어렸기 때문에 휴양 이상의 것을 즐기기에는 제약이 많았는데 싱가포르에 와서는 셋이 함께 도시 자체를 즐긴다는 기분이 들었다. 종일 돌아다니며 우리가 함께 본 신기한 것들과 재미난 경험을 복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우리의 진짜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 었다. 꽤 자주,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이유가 즐길거리가 많은 싱가포르의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여행이 좋았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다녀온 몇 개월 뒤, 그러니까 얼마 전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연수 덕분에  한 달간 미국에 머무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애엄마가 혼자 한 달간, 그것도 미국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니. 매일 회사로 집으로 뛰어다니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난다니. 아이와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챙길 거리가 수만 가지 정도 되는 부담, 혹여나 여행지에서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온전히 나의 안위만 생각하면 되는 홋홋한 여행이 1달 동안 펼쳐진다니.  나는 본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라 홀로 거한다는 사실이 걱정되기는커녕 기대되었다. 결혼 전에도 나는 혼자 여행을 훌쩍 떠나곤 했었다. 혼자 다니던 여행에서 나는 홀로 생경한 땅에 떨어져 있는 내가 철저히 내 자신으로 여겨졌고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한 달도 당연히 그런 시간이 될 거라 의심치 않았다.



런데 마음은 예상외로 흘러갔다. 1달 동안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었지만 늘 뭔가 빠져있는 기분이 었다. 외로움일까? 정확하게 아니었다. 그리움, 어느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늘 그전에 아이와 함께 다녀온 여행지들이 생각이 났다. 유서 깊은 명소와 볼거리가 지천에 깔린  DC의 어느 미술관 의자에 앉아 르누아르의 대단한 작품을 앞에 두고 싱가포르에서 함께 바닥에 앉아 보았던 공연들과 주룽 새 공원의 허접한 새 공연 따위를 떠올렸다. 세상천지 반짝이는 뉴욕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순간에도 숨이 턱 막히게 덥던 싱가포르 길거리에서 각자 휴대용 선풍기 하나씩을 손에 들고 전날 보았던 레이저쇼를 얘기하면서 깔깔거리던 순간을 그리워했다. 그곳을 울렸던 우리의 웃음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혼자서 보내는 그 한 달의 시간 동안 깨달았다. 내가 예전에, 아이를 낳기 전에 알았던 완벽하다는 그 감정은 사실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고. 사람의 인생에는,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한층 더 나아간 무언가가 있었다고. 엄마가 되어서야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정이 있다고. 홀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이 완벽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미혼인 친구들이 결혼한 뒤 혹은 아이를 낳으면 어떤 점이 행복하냐고 묻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힘든 점 투성이다. 자유시간도 없고 특히 엄마가 되니 삶의 형태가 너무 다이내믹하게 변해서 혼돈에 빠지기 일수였다. 일까지 하려니 앞으로 어찌 사는 게 옳은지 알 수 없다. 매일 갈팡질팡하며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끝까지 내려갔다 온다. 내가 이전에 이렇게 슬퍼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 자리에 멈춰서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럼 행복한 게 아닌가? 아이를 낳은 후 힘든 점이 이렇게 100이라고 한다면, "형용할 수 없이 기쁜 일"이 "형용할 수 없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 기쁜 일들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밤하늘에 당연히 떠 있는 달을 보며 오늘 달이 엄청 크네! 하고 소리 지르며 함께 꺄르륵 웃을 수 있어서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어서 메롱 하는 모습에도 웃겨 자지러질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렇게 단순한 것에 아무런 대가 없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건 내 인생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그 자체로 완벽하게 행복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며 온종일 마음을 나누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일로 기가 막히게 행복해진다. 이런 삶을 두고 누군가 말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더 기쁘고 더 슬퍼지는 일이라고.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된다고. 나는 이 말의 순서를 바꿔 적으며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건 더 슬프지만 그보다 더 기 일이라고. 이 전의 삶에는 있는지 조차 몰랐던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싱가포르에서 때때로 느꼈던 그 벅찬 기분은 아이가 우리와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기 때문에, 그리고 싱가포르는 즐기고 나눌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땐 화려한 풍경과 놀거리가 우리를 사로잡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선명하게 남은 것은 그곳에 흩어진 우리의 말들, 밤하늘에 가득했던 즐거운 웃음들, 그리고 해사하게 빛나던 아이의  얼굴이었다. 함께 나누는 사소한 이 순간이 이토록 완벽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빠 머라이언 보러 가는 길, 우리 하마 여행 역사상 제일 늦게까지 놀던 날
덥고 습한 싱가포르에선 1인 1 아이스크림
센토사 섬에서


리버크루즈
리버크루즈
가든스 바이더 베이
주룽새 공원에서
DNA  다리
마리나베이 쇼핑몰
가든 랩소디, 슈퍼트리쇼
리츠칼튼 싱가포르 수영장
레이저쇼
싱가포르에서 4살의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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