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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Oct 12. 2019

달물결 아래에서

다낭 여행, 호이안의 밤

다낭에 오기 전부터 호이안을 기대하고 있었다. 다낭 여행다녀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호이안을 칭송해서다. 다낭 여행 마지막 날 방문했다가 마지막 날에야 온 것을 후회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첫째 날 저녁, 날씨가 참 좋다. 고민할 것도 없이 호이안으로 향했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의 소도시. 오랫동안 항구로서 무역도시로 이름을 날렸고, 일본 상인들의 잦은 왕래로 일본인 마을까지 생겨날 정도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양문화를 기반으로 서양의 문물이 어우러져있는 호이안 올드타운은 199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그 거리 자체에 이색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외국 자체도 참 이국적인데 올드타운이란 웬만하면 좋기 마련이다. 옛 시절의 영광과 변화를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다.






투본강 소원초 띄우기


호이안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투본강에 소원초를 띄러 가보았다. 투본강 위에서 이른바 소원 배라고 불리는 조명이 주렁주렁 달린 나룻배를 타고 강을 지나가다가 중간 지점쯤에서 소원초라고 불리는 것을 강에 띄우는 것이다. 소원초를 수백 개 띄운다고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늘 속는 셈 치고 보게 된다.


이미 투본강 초입부터 호객꾼 반 관광객 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호객행위가 시작되는데 이들은 자신이 제시한 금액에 조금이라도 눈빛이 흔들리는 자가 있다면 절대 놓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몇 명의 호객꾼을 지나친 끝에 우리가 생각한 금액을 받 눈동자가 네 개가 흔들, 순대로 호객꾼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강어귀에 놓인 나룻배로 걸어갔다. 에 오른 뒤 5분 정도 지나자, 노를 젓고 있던 아저씨는 수줍게 웃으며 우리에게 초 3개를 건네고 한 사람에 한 개씩 할당된 그 초는 모두 우리 하마 조막만 한 손을 통해 투본강으로 흘러갔다. <하마야, 소원 빌었어?> <응, 배 잘 타게 해달라고> 시간은 어스름 저녁이었다. 강물은 쪽빛을, 하늘은 그보다 좀 더 밝은 하늘빛을 내고 있었다.


 초를 흘려보내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진다. 좀 더 주위를 떠돌다가 우리에게 주어진 30분의 시간이 끝나갈 때쯤 다시 강어귀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뱃사공의 성격에 따라 갖가지 묘기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말 그대로 서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배도 있다. 우리 배는 후자였다. 우리는 그저 우리끼리 이야기하며 사진 찍으며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우리 뒤쪽에 있던 다른 배에서 뱃사공 아저씨가 노를 공중에서 휘젓는 묘기를 부리며 배를 흔들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하마는 그 모습을 굉장히 부럽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우리 배의 뱃사공 아저씨는 아까 우리에게 초를 건넬 때와 마찬가지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몸을 움직여 배를 흔들었다. 우리 하마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번지고, 그 모습을 본 아저씨도 다시 환하게 웃었다. 저녁은 더 깊어가고 배는 어느새 강어귀에 도착했다.


투본강에서 소원초를 띄워본다. 한명에 초 하나씩 띄우는 거지만 내 초도, 남편의 초도 모두 하마의 몫이 된다



콩 카페


배를 타고 오니 밤이 되었다. 다낭에 여행 온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었는지 거리에 사람들 머리가 빼곡했다. 호이안 올드타운을 찾는 사람들의 방문 목적 중 하나엔 이 곳의 콩 카페 방문도 있다고 들었다. 베트남 내에 콩 카페 지점이 여러 개 있는데 호이안의 콩 카페가 단연 제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또한 인파를 헤치며 콩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전 주간은 한국의 연휴였어서 사람들이 살갗을 부딪히며 이 거리를 걸었다는데 이 바람 한점 없이 숨이 턱 막히는 곳에서 그렇게 붙어 다닌다면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이르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웠다. 맛없으면 가만 두겠다며 전투력이 상승했다.


우리 셋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을 무렵 도착한 콩 카페. 호이안의 콩 카페가 유명해진 건, 유독 호이안의 콩 카페가 맛있는 이유는 바로 이 습도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게 확실했다. 이렇게 더운 끝에 에어컨 바람 아래서 달달하고 시원한 코코넛 커피를 마신다면 맛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의 코코넛커피를 받아들고 헥헥거리며 명수처럼 마셨다. 와, 역시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천국의 맛.  내가 일전에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마셔본 적이 있었던가?  콩 카페를 오기 위해 걸었던 걸음은 금세 잊고 그렇게 쉽게 다시 한번 베트남과 사랑에 빠진다. 창밖을 보니, 비로소 투본 강의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까매진 하늘과 그보다 더 까만 강 위에서 마음을 담아 초를 띄우는 사람들, 이렇게 더운 와중에도 추억을 위해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베트남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 각양각색으로 호아인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는 코코넛커피를 우리 하마는 초코음료를 쪼르륵 마셨다. 에어컨 바람 아래  신선놀음다.



공산당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콩카페
맛있을 수가 없는, 에어컨 바람 아래서 마시는 코코넛 커피
호이안의 밤, 길거리에서 쌀국수 등을 즐기는 사람들






호이안의 씨클로


이안 거리 곳곳에는 씨클로를 탄 사람들이 돌아다다. 씨클로는 1~2명이 탈 수 있는 등받이 의자에 사람을 태우고 뒤에서 자전거로 밀어 움직이는 이동수단으로, 우리나라의 인력거와 비슷한 것인데, 이 씨클로가 호이안의 관광상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후기를 찾아보니 내원교 앞에 씨클로들이 모여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보니 한 대도 없었고, 다른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씨클로 기사분께 얘기하니 그 자리에서 다른 동료들 불러주었다. 흥정을 하고, 나 그리고 남편과 하마가 각각 씨클로에 올라탔다.


더운 중에 자전거에 올라 내 힘을 들이지 않고 밤거리를 달리니 몇 배로 시원하다. 예쁘다는 호이안 거리는 사람들에게 치이고 우리 하마 신경 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앉아서 보니 비로소 탐실탐실 소담스럽게 달린 등들과 상점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인다. 인파도 두렵지 않다. 기사님 삡삡 삡삡 입으로 내는 경적소리에 사람들이 갈라졌다. 이렇게 일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험을 하면 문자 그대로 뼈속 깊은 곳까지 내가 여행 왔음을 깨닫게 된다. 낯선 공기가 시원하다. 남편과 함께 탄 우리 하마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렸다.


상황에 따라 느끼는 기분은 다양하다.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느 날은 감동을 받고 어느 날은 별다른 감흥이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우리 하마의 큰 웃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순간 바보가 된 것 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느 때나 행복해진다. 그러면서 그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이렇게 이국적인 곳에서 하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콩 카페에서 느꼈던 천국의 느낌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이건 꿈일 것 같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호이안 밤거리에 탐실탐실 등이 매달려있다
씨클로 타기




씨클로를 타고 호이안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내리니 시간은 어느덧 밤 9시가 되었다. 이제 우리 하마 잘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그랩을 불러 타고 호이안 밤거리를 빠져나왔다. 이 전엔 판에 박힌 여행, 빤한 여행, 관광상품을 따라가는 여행을 싫어했다. 그래서 다낭이 가족 여행에 최적의 여행지로 인기를 끌었음에도 왠지 다낭 여행은 너무 패키지스러운 여행 될 것 같아서, 우리만의 이야기는 없는 여행이 될 것 같아오기 싫었던 것 같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우리가 베트남에 함께 오는 것 자체가, 여행지의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모두 처음인데. 여행에서 이렇게 잘 꾸며진 밤거리를 돌아다녀보며 남들처럼 밤을 즐겨본 것도 처음이었다. 리는 이 곳에서 꽤 자주 아주 크게 웃었다. 5살이 되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데 앞으로 우리의 하루가, 여행이 얼마나 더 풍성해까.


별이 빛난다. 베트남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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