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쏭쏭 Sep 27. 2019

인생의 호시절

다낭, 이토록 즐거운 여행지

2019년 5월, 다시 낯선 공항에 내렸다. 그 전엔 여행의 횟수를  세어보지 않았는데, 비행기에 앉아 셋이 함께 국외로 떠난 여행을 세어보니 어영부영 7번째 여행이었다. 아이가 25개월일 때 여행을 시작했으니 이제 2년이 조금 넘은 시간. 왠지 숙련된 가족 여행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그 7번째 여행지는 바로  베트남 다낭. 다낭은 몇 년 전부터 영유아 동반 가족뿐 아니라 부모님 세대의 패키지여행으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베트남 남부의 도시였다. 사실 그간 다낭을 매번 여행지 후보로 올려왔지만 모두들 가는 동남아 휴양지 뭐 다를 것 있을까 싶은 마음에 청개구리 같은 심보로 심드렁했는데, 작년에 지인들이 무더기로 다낭에 다녀온 뒤 찬사를 늘어놓았던 것에 마음이 흔들,  TV의 여행 프로에 여러 번 노출되는 것에 마음이 흔들거려 나도 한번 가보자 싶어 여행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기대는 없었다.  다낭은 나에게 그저 동남아 어느 도시일 뿐. 지금은 뜨고 있지만 언젠가, 늘 그렇듯이 다른 신흥 휴양지에 의해 대체될, 냉정하게 말해 이제 한철이고 그 철이 얼마 남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저 가성비 좋은 리조트에서 놀고먹는 것이 목표로 이 곳에 왔다.
 
다낭은 북반구에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계절을 공유하지만, 여름이 오는 속도가 빨라  5월에도 굉장히 덥고 뜨겁다. 도착한 날엔 저녁에 도착해서 더위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사방에서 열기를 뿜어댔다. 50보 남짓을 걷는데도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황급히 걸음을 재촉해 조식당에 들어가니 세상 맛있는 쌀국수가 있었다. 두 그릇이나 먹었다.
 

이제 다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시간이다. 바로 수영하기. 우리 하마뿐만 아니라 나도 남편도 수영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리조트를 고르는 데에는 룸 컨디션이 아닌 풀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꽤 고심한다. 규모는 큰지, 바다에 연결되어 있는지, 풀바는 맛있는지, 슬라이드가 있는지, 대형 튜브를 가지고 갈 수 있는지 등등. 우리가 갔던 다낭 하얏트는 모든 요구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인공 모래사장과 커다란 수영장, 너무 빠르지 않은, 그래서 유아에게 적합한 슬라이드까지 꽤 좋았다. 게다가 이 규모의 리조트가  GDP 가 높은 다른 도시에 있다면 그 가격은 3배쯤 되었을 텐데, 이런 가격에 이 리조트라니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동남아야! 한껏 수영을 하다가 리조트 수영의 꽃인 햄버거와 새우튀김을 먹었다. 가격표를 보고는 다낭과 사랑에 빠졌다. 다낭엔,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았다. 그간 정신노동의 대가로 받은 나의 알량한 월급이 여기선 좀 더 가치 있구나! 신난다! 많이 먹고 가야지! 다낭 정말 좋다! 완전한 여행객으로 다낭에 흡수되었다. 이 곳엔 오로지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다낭 하얏트


다낭 하얏트
다낭 하얏트







아이가 5살이 되니, 여행이 이렇게 술 풀리는 것처럼  일상이 기가 막히게 편안해졌다. 고민과 좌절 속에 들썽였던 지난 4년을 생각하면, 문득 이런 상황들이 굉장히 생경하게 느껴진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 시절에는 시터와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지낼지 노심초사했다. 어린이집을 보낸 뒤에는 선생님이 하루의 일과를 공유해주는 2시 만을 기다렸는데, 혹시 표정이 좋지 않으면 왜 그럴까 흐트러지는 마음을 겨우 잡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의 괴로움은 두 가지에서 나왔다. 하나, 일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조언은 지천에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둘, 엄마로서의 내가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것펐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고 아이는 그보다 더 빨리 자랐다.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 실린 한 시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기 때문에 그  아인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는다고. 그 모든 것들은 어제의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고.  아이가 내 품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걸, 세상으로 나가는 그 순간이 예상보다 금방 오리라는 걸 뜻했다. 나는 한 순간도, 괴로움의 근원을 무시하지 않으려 애썼다. 밀려오는 갖가지 감정에 무뎌지지 않으려했다. 네가 일하는 엄마를 두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 두지 않았고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든 순간들을 최대한 힘들게 살아보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힘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더 행복했다. 마치 카페인이 가득 들어있는 피로 회복제를 단숨에 마시고 피로를 잠시 잊는 것처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주말과 지금까지 쌓여온 여행들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꾹꾹 눌러온 나의 모든 아쉬움과 애틋함을 모두 담았다. 얼마 전 이런 글귀를 보았다. "고통은 언젠가 사라지고, 사랑은 끝내 살아남는다."  시나브로 내게 기쁜 순간만이 남았다.


평생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편한 여행과 일상을 마주하다 보니 이런 물음이 든다. "마땅히 때가 되었기 때문에 편안해진 걸까. 나는 단순히 온순한 성정의 아이를 만나 운이 좋았을 뿐인가. 아니면, 어려운 시간을 성실하게 버틴 덕분에 지금처럼 소중하게 행복한 시간이 온 걸까."


답은 알 수 없다. 나의 이런 호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할 일은 내가 선택한 이 길을 어떻게 잘 걸어갈지 꾸준히 생각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길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을 테다. 또다시 인생의 과제가 내 앞에 수북이 쌓이게 되는 날에도 그곳에서 애써 빠져나오려 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다 보면 한 발짝 더 나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전 14화 우리가 가족이라서 다행이야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여행에는 별빛이 내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