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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an 23. 2019

작은 일상과 여행에 감사하며

프롤로그 - 평범한 맞벌이 부부와 아기의 특별한 여행

올해로 직장인 12년 차가 되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면 손도 대지 않는 편식쟁이 기질 보유자라 아마 1년도 못 버티고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회사원 체질이었는지 회사의 모든 일이 재미있었다. 연구원 시절엔 사람들과 밤새워 일하다가 우르르 나가서 저녁을 먹고 (술도 마시고) 다시 우르르 들어와 일을 했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분석 결과를 내기 위해 밤을 새분석 결과가 나오면 너무 신나서 또 잠을 못 잤다. 연구원 생활 2년 후 대학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 팀을 옮겼는데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던 터라 얼마나 즐거웠는지, 밤낮으로 회사일 생각만 했다. 회사 밖에서 우연히 우리 팀과 관련된 일만 접해도 심장이 쿵쾅 거리곤 했다.  과거는 늘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이 시절은 다시 돌아보아도 참 좋았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결한다는 말을 전하러 상무님께 갔더니 우리 상무님은 마시던 물을 뿜으셨다. 사람들은 왠지 내가 일도 실컷 하고 더 대차게 놀다가 늦게 결혼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때 결혼한다며 놀라워했다. 결혼 후에도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일이 즐거웠고 일한 만큼의 인정과 고과를 받았다. 거칠 게 없었다.    


그리고 수순처럼 축복과도 같은 아이를 임신하고, 팀장님의 배려로 조직에서 최초로 1년 반의 육아 휴직 기간을 보내고, 감사히 휴직 중에도 승진까지 시켜주어 장 과장이 되어 회사에 복귀했다. 3년 전 봄이다. 아,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결혼 전,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여자 선배들을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박사까지 밟고 왜 그만두는 거지? 왜 저렇게 나약한 걸까? 역시 결혼하고 집에서 편하게 살려고 들어가는 건가? 그동안 투자한 것들이 아깝지도 않나?  "나는 저러지 않을 거야. 저 선배,  인생 참 불쌍하다."



역시 경험하지 않은 일을 그 어떤 오만한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작은 주먹으로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나와 엉엉 울며 택시를 타던 날, 창문에는 8년 전 팀 선배 (지금 우리 팀장님)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늘 OO 이가 현관문 앞에서 내 가방과 구두를 안고 펑펑 울었어. 가방을 자기가 들고 있으면 내가 회사에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 철없던 젊은 아가씨는, 아이 참 속상하셨겠어요, 라는 표면적인 위로를 건넸다. 이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담담히 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아렸을지. 문자로만 보아오던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이렇게 마음이 무너지는 일상이 지속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늘 인생이 모두 내 맘대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 언제나 열정이 넘쳤고 원하는 것은 모든 노력과 운을 동원하여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일이 좋았고 언젠간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당연히 예견된 인생이었을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도 내가 아이를 낳아도,  아이를 시터 혹은 기관에 맡기는 생활에 꽤나 멀쩡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이를 사랑했고 그만큼 나는 한없이 약해졌다. 늘 가던 회사였는데, 이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모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제 좀 괜찮을까 싶은 순간,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마음이 바스러졌다.  회사 선배가, 팀장님이 건네는 "힘들지" 한마디에 속절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로 놀랍고 행복했지만 매 순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지구 끝까지 슬펐다.   정말 즐겁게 하던 일이었는데 이젠 내가 직장을 다닌 다는 사실이, 일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그러다가도 평생 후회할까 봐 그만둘 수도 없었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도 육아도 결국 되는 것 하나 없이 지치던 시절, 1년 동안 시간에 질질 끌려다니며 마음은 바닥을 뚫고 내려가던 어느 날, 비로소 깨달았다. 육아휴직은 잠시 pause 일 뿐이고  복직하며 다시 start 버튼을 누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전 생활은 휴직과 함께 완전히 stop이라는 걸.  이제 두 번째 트랙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모두들 워킹맘의 삶은 버텨내는 일이라 했다.  많은 선배들이 버티다 보면 아이는 자라고 시간이 간다고 위로해주었다. 누군가는 독해 지거나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버틴다고 주저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알아서 자라길 바라며 자라는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는 일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인생에 한가지 모습만 있지 않으리라. 내게 주어진 새로운 세상엔 알지 못했던 비밀이 있으리라. 우리의 새로운 세계를, 아이의 태몽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로 했다.  1년 간의 방황을 마치고 나는 나를 자라게 해 준 고마운 30여 년의 시간들에 인사를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4년이 지났다. 시나브로 시간이 지났다. 이전의 나는 언제나 익숙했던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바뀐 삶의 형태에 힘들어했었지만, 인생에는 내가 알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고, 한없이 비틀거리던 시간을 지나 지금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깊은 슬픔과 한없는 기쁨을 함께 느끼며 지경을 넓혀갔다.



 

새로운 시작


후의 시간동안 우리는 꽤 많은 여행을 했다. 새롭게 시작된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지냈는지 돌이켜보면 5할은 여행 덕이었음이 자명했다. 녹록지치 않은 현실은 계속되었지만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힘을 얻는다.


여행지에서 제3자 처럼 현실의 내 삶을 바라보니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던 지난 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행복한 일은 계속 있었고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저 깔깔대고 웃을 뿐인 아이를 보며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를 마주하면서 나의 이전 삶이 소중했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내가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영장에서 실컷 놀다가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그간 정말 최선을 다했지,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나는 알지, 앞으로도 잘 해낼 것 같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여행에서 얻은 힘으로 일상을 잘 살아갈 방법을 알아가고 그렇게 또 다시 애써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나도 아이도 자랐다. 우리의 관계도 단단해졌다.


빅아일랜드의 마우나케아에 올라 아이를 안고 쏟아지는 별을 보던 날 이 순간들을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힘든 순간에도 잘 버텨보고자 애썼던,  작은 순간에도 행복했던  그 일렁이는 일상과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번드러지게 1 달씩 훌쩍 떠나거나 세계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문득 지치는 어느 날 여행을 계획하고 그 날을 기대하며 다시 일상을 소중히 살아내고 그러다 떠나는 평범한 여행자지만,  셋이서 함께 길바닥에 앉아 함께 바람을 맞는 것 만으로 특별했던 우리의 모든 순간을 나중에 꺼내어보고 싶었다.  여행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성장한 나의 이야기를 남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고 글을 남긴다. 지금의 우리가 좋아서. 내가 좋아서.


당신의 마음에도 울림이 있기를.



많은 가족의 첫 해외 여행지- 괌, 사랑의 언덕
빅아일랜드, 천국 같은 곳
아기와 마우나케아, 구름 위 일몰
아기와 마우나케아, 별 보러 가는 길
자전거 타고 뜨거운 누사두아 해변, 발리
아가 바다 거북이를 바다에 돌려보내고, 발리 꾸따
발리, 스미냑
오키나와 해변
오키나와, 비오스의 언덕
슈퍼트리쇼 가든 랩소디, 싱가포르
셋이 함께 바닥에 누워 슈퍼트리쇼를 보았지
너와 함께여서 더욱 즐거운 모든 순간 , 싱가포르
센토사섬 루지 타기, 싱가포르
일상, 어느 평일 저녁





너는 이렇게 쑥쑥 자라
이내 이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기억할게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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