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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an 31. 2019

빅아일랜드, 우리가 천국에 왔구나

3살 꼬맹이와 함께 20시간을 날아 빅아일랜드에 왔다

 

드디어 하와이를 가야 할 때가 되었어


가을 휴가로 하와이에 왔던 신혼 시절, 오아후의 리조트에 누워 사방에서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중에 우리도 아이가 생긴다면, 이 곳에 같이 오면 참 좋겠다.” 고 이야기했다. 하와이 이름 자체가 주는 이미지처럼 그곳의 상쾌하고 달뜬 분위기에 매료되어 아이를 낳은 뒤에도 막연히, 함께 하와이를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봄날, 우리는 정말 하와이에 왔다. 3살이 된 우리 꼬맹이, 하마와 함께.




빅아일랜드 여행을 마음 먹게 했던  빅아일랜드의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리조트라고 한다


하와이가 어디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우리 하마는 자신이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 만으로 신이 나서 출발 며칠 전부터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제대로 발음도 안 되는 꼬물꼬물 한 입으로 본인이 엄마 아빠와 하와이에 간다며 어린이집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의 여행은 빅아일랜드에서 5일, 오아후에서 5일을 보내는 10일간의 일정. 그리고 출발편 항공 일정은 성인으로서도 다소 부담이 되는, 일본까지 2시간을 타고 가서, 일본에서 2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6시간을 날아 호놀룰루에 도착한 다음 또 2시간을 기다려 하와이언 항공을 1시간 타고 빅아일랜드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이동 시간까지 모두 고려해보면 집에서 빅아일랜드의 리조트까지 대략 20시간이 예상되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하와이쯤은 문제없다고, 직항표가 없어 경유 티켓을 예매하면서도 잠시 쉬어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한껏 합리화하며 여행을 계획해 놓고는, 막상 출발일이 되자 길다면 긴 10일 동안 일어날 만한 온갖 변수가 걱정되어  심신이 시들어다. 다행히 우리의 두통과 상관없이 우리 하마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인천 공항과 호놀룰루 공항을, 그리고 빅아일랜드 코나 공항을 여기저기 누비며 뛰어다녔다.

 

그렇게 빅아일랜드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오후 3시. 잡다한 걱정들로 급격히 피로해져 쉬고 싶었는데 거의 하루를 꼬박 새운 하마는 우리 몰래 철인 열매라도 양껏 먹었는지 이제 도착했으니 수영장에 가자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다시 나왔다. "이건 여행인가 극기훈련인가, 괜히 온 것인가!"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곳에 가서야, 호놀룰루 공항에서도, 그렇게 자연 친화적인 빅아일랜드 공항에서도, 지구답지 않은  광경들이 펼쳐졌던 도로에서도 긴장으로 보이지 않았던 하와이의 하늘이, 나무가, 공기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 와, 우리가 드디어 하와이에 왔구나! 우리 셋이! 그 긴 비행시간을 해냈구나"


한참 모래놀이를 하고 놀다가, 근처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구입한 뒤 리조트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던 우리 하마는 마트에서도, 호텔에 돌아와서도 걱정이 될 정도로 흥분해 있더니만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집떠난지 15시간째, 호놀롤루 공항
자연친화적이면서 고속버스터미널스러운 빅아일랜드 코나 공항/ 마찬가지로 고속버스같은 빅아일랜드행 하와이언항공
힐튼 와이콜로아빌리지 킹스랜드 풀장







빅아일랜드, 천국 그 어딘가



우리가 있던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는  25만 평방미터 부지에 몇 개의 호텔과 리조트가 있는 거대한 리조트 단지다. 리조트 안에 보트와 긴 트램이 다니고 그 정류장이 몇 개가 될 정도로 크고 광활하다. 4개의 수영장은 하나하나가 웬만한 리조트보다 더 큰 수준인 데다 돌고래가 있는 풀장도 있고 수영장 옆으론 마찬가지로 광활한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다. 



둘째 날, 트램을 타고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는 풀장에 와서 놀다가 볕이 너무 뜨거운 것 같아 메인 풀이라는 라군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리고, 라군을 본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라군 쪽으로 가는 길
빅아일랜드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의 메인 라군,  바다와 연걸되어있어 실제 물고기와 바다거북이가 산다



이 당시 나는 이제 막 복직 1년을 넘은 시점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집으로 회사로 뛰어다니는 생활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삶을 이런 식으로 계속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혹여나 서운함이나 부족함이 있을까 봐 늘 마음이 아팠다. 이런 나에게 하와이 여행이란 그 타이틀 자체는 설레었으나 지난 1년 간 깊게 자리 잡은 고민들 때문에 마음으로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라도 여행을 오지 않으면 숨통이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라군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속에 남아있던 모든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와. 여기는 천국이구나. 우리 정말 잘 왔구나.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세계였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모리셔스도 “신이 천국을 만들기 전 모리셔스를 만들었다 (마크 트웨인)”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곳에선 좋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넘어 천국 같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빅아일랜드에, 이렇게 어린 꼬맹이 양손을 잡고 셋이 라군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2달 전 떠났던 괌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이 기분은 여행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빅아일랜드는 너무나 웅장한 대자연인 데다 일부 주거지 외엔 사람도 살지 않아 황량하기도 하고 곳곳에 있는 오름과 작은 분화구가 현실이 아닌 듯한 기운을 더해주었다. 내가 어디서 무얼 하다 왔는지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여기로 날아와 대자연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느낌, 달랑 우리 셋이 태평양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작은 감정들이 지나갔다.  그래도 그간 정말 최선을 다했지,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나는 알지,  앞으로도 잘 해낼 것 같아,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순식간에 빅아일랜드와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는 실컷 수영을 한 뒤 선베드에 누워 한껏 자다가, 노릇노릇 구워진 몸을 끌고 풀사이드 바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바로 옆에 돌고래가 있는 수영장이 있어 돌고래가 노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마침 돌핀 퀘스트 시간이었는데,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돌고래가 다가오자 기겁을 하며 뒤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저게 얼마 짜린데 (30분에 300불) 돌고랑 손잡고 노래를 불러도 아까울 돈인데 도망가면 어쩌냐며 부모 마음에 빙의되기도 하고, 돌고래가 점프하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 아기도 나중에 크면 돌핀 퀘스트 해주면 좋겠다 이야기 나누며 햄버거를 먹었다. 




빅아일랜드 힐튼 와이콜로아의 돌핀 퀘스트



한낱 풍경 하나 보았을 뿐이었다. 흔하게 지나갈 여행과 경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활한 대자 때문이었는지, 빅아일랜드의 뜨거운 햇볕이 그리했는지, 아니면 깨달을 때가 되어서였는지 나는 모든 것이 감사하고 매 순간 모든 문제에 초연해졌다. 우리 하마는 여행 내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던 모양인지  "엄마 여기 어디야?"라는 말을 거의 쉬지 않고 했고, " 좋다"는 말을 그다음으로 많이 했다.  15개월을 붙어있던 엄마가 갑자기 출근을 하니 제 스스로도 시간과 상황에 적응해가며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오래 긴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해했다.




빅아일랜드, 정말 오길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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