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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Oct 04. 2019

수영으로 다이어트는 할 수 없지만

떡볶이 먹을 힘은 내어 볼 수 있지

물개의 역사


 물개 인생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YMCA의 스포츠단 같은 것을 꽤 오래 다녔다. 늘 집 근처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더운 여름날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쳐서 친구들과 당시엔 있지도 않았던 접이식 의자 같은 것을 상상하며 그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며 버스를 기다리면 좋겠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YMCA에 가서 갖가지 체육활동을 하고 물놀이를 배웠다. 자유형-배영-평영-접영 순의 영법보다는 물에서 노는 법 (물에서 빨리 달리기, 수구, 바닥치고 빨리 올라오기 등)을 배웠던 것 같다. 3m 깊이의 어두운 물속에서 잠수를 배웠던 날, 깊은 물속에서 공포감보다는 아늑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온 뒤로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문 수영센터에 다니며 영법을 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남들처럼 학교 학원 외에 수영 같은 취미 활동 따위를 할 시간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뒤에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세상천지 별천지 구경하느라 워터파크쯤이나 가보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사 후 1년 뒤쯤. 갑자기 시작된 사회생활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스트레스에 아찔하던 어느 날, 수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좀 들어가면 살겠어. 마치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회사 셔틀버스 정류장 근처의 쇼핑센터 8층에 위치한 수영장 회원권을 끊고 퇴근 버스에서 내려 매일 수영장으로 향했다. 자유 수영으로 4년 정도를 다녔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나쁜 놈 죽일 놈 하면서 전투 수영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욕할 힘도 없어서 그냥 배영을 하며, 수영장 천장만 응시하며 물에 떠있기만 했다. 그렇게 수영을 하면 어느 날이나 기분이 좋았다. 세상 고민 떠안고 있는 날도 수영을 하면 고민들이 물속으로 흘러나가 풀어 없어지는 듯했다. 6년 전, 라섹 수술을 한 것도 오로지 수영 때문이다. 부작용이 걱정되어 결정을 미루다가 수영할 때 도수 있는 물안경을 쓰는 것이 불편해서 수술을 했다. 물안경을 벗으면 뿌옇던 수영장이 선명하게 보이니 광명을 찾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수영 덕분에, 결혼 준비를 위해 드레스 샵을 둘러볼 때마다 사람들이 "어머! 신부님 어깨 좀 봐! 수영 좀 하셨나 봐요!"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체격에 비해 떡 벌어진 어깨 덕분에 옷 고르기가 쉽지 않을 정도인데 드레스에 참 잘 어울리는 어깨라며 위로를 받았다.



결혼 후, 임신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엔 육아에 바삐 사느라 정기적으로 수영을 할 기회가 없었다. 여행을 가서 수영장에서의 가벼운 물놀이 정도나 즐겼을 뿐이다. 그러다 복직을 하니 체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져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간편히 다닐 수 있는 필라테스와 요가를 다녔다. 이 운동들은 수영을 하는 동안에도 3년 이상 꾸준히 해왔어서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운동을 해도 뭔가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 것이다. 하면 할수록 지쳤다. 결국, 꾸역꾸역 1년을 다니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또 바쁘게 살다가 5년 만에 제대로 된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이 올봄, 더 이상 체력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집 앞 스포츠 센터를 큰 맘먹고 등록했다. 몇 년 만에 수영장에 몸을 던지고 꼬르륵 물속으로 들어가니 머릿속에 번득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신난다! 너무 신이 난다!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던 몸이 물속에서 갑자기 가벼워져 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역시, 나에겐 수영이었다.





물개의 수영 예찬

 


이렇게 전투적으로 수영합니다 (출처:pixabay)

 

수영은 참 유익하고 이상한 운동이다. 처음 물속에 들어갈 때는 물이 너무 차가워서 온몸이 굳어지는데, 몇 바퀴만 돌고 나면 "수영장 물 온도가 미온수 정도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던 마음이 참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영은 전신 운동이라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을 모두 써볼 수 있다. 몸의 쓸데없는 지방 덩이들이 발열하며 태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처럼 어릴 때부터 수영을 해온 사람은, 물만 보면 빠질까 두려운 마음보다는 빠지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물에서의 응급상황에 대한 자신감도 기를 수 있다. 신나는 해양스포츠도 거침없이 즐길 수 있다.  큰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폐 발달에도 좋다. 강습 같은 것을 받을 때는 단체 운동 같지만, 물속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여느 스포츠처럼 공이나 라켓 같은 도구도 필요 없다. 내 몸뚱이 하나로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속에서 자세와 호흡법을 개선해보면 그에 따라 나가는 속도나 물의 저항을 받는 정도가  달라지기는 것을 즉각 느껴볼 수 있다.  




수영인들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바로 다이어트 효과다. 수영은 단시간에 가장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수영을 배운다. 그런데 살은 전혀 빠지지 않는다. 되려 체중이 늘어난다. 나도 오랜만에 수영을 시작하면서 이 점을 조금 기대했는데, 역시 빠지기는커녕 유지만 해도 성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요즘이다. 보통 다른 운동은 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입맛이 뚝 떨어지는데, 수영은 똑같이 힘든데도 하고 나면 입맛이 너무 돈다. 보통 밤에 수영을 가는데, 그날 밤은 바로 잠에 들지만  그다음 날엔 배에 구멍이 난 사람처럼 종일 허기를 채우려 먹게 된다. 이를 동반하지 않은 다이어트는 효과 없다는 것은 명제이지만 수영을 시작한 이상 그 명제를 지키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그렇게 수영인들은 쉽게 근육 돼지가 된다. 



그러니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수영보다는 다른 운동을 추천한다. 그리고 혹시 나처럼 수영이 좋아 시작했다면, 다이어트는 포기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길에 들어섰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운동 별 칼로리 소모량 (출처:Pinterest)/ 영법에 따라서도 칼로리 소모 차이가 많습니다
휴양지에선 수영할때마다 극도로 하이텐션이 되서 가족들이 감당을 못하는 수준






비록 다이어트 효과는 없지만


나는 원래 소문난 식탐러. 스트레스를 받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떡볶이, 튀김, 순대를 양껏 먹으며 치유한다. 그런데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기력해질 때, 나의 식탐은 한순간에 뚝 끊긴다. 남편의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내가 "먹고 싶은 것 없는데"라는 대답을 했을 때가 남편에겐 가장 당황스럽고 걱정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런 날은 떡볶이도 소용없다. 먹어도 그냥 빨간 양념이 발린 찰진 식용 고무를 씹는 느낌이다. 회사 생활 12년 차, 리고 이름 그 자체에도 고난이 묻어있는 듯한 워킹맘 타이틀을 달게 된 지 5년 차인 나에겐 세상 대부분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아이에 대한 일은 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며 회사와 집의 중간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 속상하고 억울한 날들이 시시때때로 찾아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여유를 부리다가 어느 순간 "요건 몰랐지?!" 하며 튀어나오는 새로운 문제들로 휘청이는 날도 많다. 그럴 때면 마음이 참으로 괴롭다. 아무것도 하고 싶어 지지 않는다. 슬픈 기운에 빠져 소중한 날들을 그냥 날려버리고, 떡볶이는 내게 다시 고무 따위의 존재가 된다.


럴 때면 마음을 다잡고 수영을 간다. 발차기 하나에 내 몸에 추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던 스트레스가 하나둘씩 풀어진다. 영을 하면서 고민거리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봐야지 마음 먹지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에 고개를 넣고 다시 고개를 내빼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고개를 넣으며 '내가 오늘 문제가 (어푸) 이걸 해결을 해야 되는데 (어푸)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데 (어푸)', 하다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엔 오로지 숨쉬기와 발차기만 남는다. 평영을 좀 더 개구리처럼 해볼까, 발 뒤꿈치가 몸에 닿아야 할 것 같은데, 자유형에선 숨을 4 턴 정도 참아볼까, 그럼 속도가 더 나오려나, 수영에 대한 기능적인 생각만 하느라 고민 겨를이 없다. 얼마 전 하정우의 <걷는 사람>을 읽고, 작가가 걷기에 대해 비유한 자리에 수영을 대입하고는 맞는 말이네 무릎을 탁! 쳤다. 책의 문구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고민과 고통을 비워낸 자리에 허기가 슬쩍 끼어든다. '걷고 나서 뭘 먹을까?' 하는 생각만 집요하게 파고든다

집에 돌아오면? 고심해서 고른 오늘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한 다음 밥을 먹는다. 먹으면서 문득 깜짝 놀란다. ' 나 방금 전까지 고뇌했던 사람 맞나? 왜 이렇게 밥맛이 좋지?' 밥 먹은 뒤엔 한숨 돌리고 샤워를 한다. 문득 또 떠올린다. '고민, 아, 그래, 낮에 고민을 했었지. 그런데 씻으니까 이상하게 상쾌하네?




수영을 하고 오는 길에는 슈퍼에 들러 삼각 커피 우유나 내가 좋아하는 과자 같은 것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편이다.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 같던 문제는 어렴풋이 그런 것이 있었지 흐릿하고, 고민의 자리엔 소파에 기대앉아 차가운 삼각 커피 우유 끝단을 가위로 살짝 자르고 얇은 빨대를 꽂아 쪼르륵 마시며 행복해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다음 날엔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허기진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나에게 남아있지만 일단 떡볶이를 먹어보면서 힘을 낼 여력 만들어본다.




나에게 수영은 안식처 같다. 무슨 일이 있든 일단 물에 들어가 수영장 벽을 발로 탁 치고 나아갔던 그 순간들이 나를 잡아주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수영은 생각만 해도  늘 신난다. 우리 하마가 조금 더 크면 같이 수영을 가르쳐서 수영 시합을 해봐야겠다. 양양에 가서 함께 서핑을 배우고 발리에 가서 서핑을 타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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