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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팔라 Mar 19. 2019

이마트 순희네 빈대떡

[서사의 분말상자] 2018.9.30.

추석 전에 이마트에서 사 놓았던 순희네 빈대떡을 추석이 끝나고서야 부쳐먹게 됐다.
연휴 때 전이나 동그랑땡을 실컷 먹어서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광장시장에서 종종 먹던 순희네 빈대떡은 늘 맛있었고, 집에 마땅한 다른 요리도 없었으니. 사실 냉동식품에 크게 기대는 안했고, 그냥 적당히 점심을 해치워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해동하지 말고 바로 프라이팬에 중불로 익히라는 설명을 보고, 뜯어서 올리고는 조금 깜짝 놀랐다.
'어, 이거 꽤 두꺼운데?'


순희네 빈대떡의 큰 특징이긴 하다. 굉장히 두꺼운 반죽에서 오는 장점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열기를 꽤 오래 머금고 있어 맛이 비교적 오래 유지되고, 다만 커서 입 천장이 까지기 딱 좋은 광장시장의 그 두꺼운 빈대떡. 광장시장에 있는, 수많은 양산형 순희네 빈대떡 중에서도 한가운데의 노점상에서만 느낄 수 있던 그 두께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몇 년 전에는 그 외의 집들은 눈에 보일만큼 확연히 두께가 달랐다. 내 눈 앞 프라이팬을 가득 채운 이 빈대떡은, 그 양산형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심지어 그 원조 빈대떡집보다도 두꺼운 것처럼 느껴질 수준이었다.


냉동으로 파는 제품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다니. 세상은 1인 가구를 공략하기 위한 연구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대기업의 기술력이란 정말 원본과 복제품 사이의 메울 수 없는 아우라의 간극 따위는 깨부수어 버릴 정도에 이른 것인가 하며 놀라움과 기대를 품고, 동시에 이 두꺼운 빈대떡이 5분 만에 다 익긴 하는 것인가 약간의 의구심을 품으며, 4분 정도 중불로 익혀 적당히 익은 빈대떡을 뒤집었다.


그 순간 빈대떡은 그 자신의 위도선을 따라 정확히 두 갈래로 갈라졌다.


?


????


내가 산 것은 순희네 빈대떡 400g a.k.a. '200g×2개입'이었다.


;; 급하게 접시를 꺼내서 안 익은 하나를 올려두었다. 이걸 어쩌지. 이미 약간은 익어버린 상태라 다시 냉동보관하기도 애매하고 심지어 당연히 하나짜리인 줄 알고 봉투도 버렸다. 뭐 어쩔 수 없이 두 개를 다 구웠다. 그래도 두 번 굽다보니 스킬이 약간 늘어서, 첫 번째 빈대떡보다 두 번째 빈대떡이 더 잘 구워지긴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너무 양이 많았다.
심지어 밥 반찬으로 먹을거라서 뚜기두밥 오뚜기밥도 전자레인지 돌렸고, 간장 종지도 없어서 종지로 쓸 겸 김도 한 팩 뜯어둔 상태였다.
그럭저럭 맛은 있어서, 아니 정확히는 있었어서 1과 1/3개 정도까지는 적당히 먹었다. 그 쯤에 밥과 김은 다 먹었고, 남은 2/3팩은 순전히 나와 빈대떡과의 대면이었다. 맥주라도 좀 사두었으면 좋았으련만. 배부른 것도 배부른건데 이 쯤 먹으니 너무 느끼했다. 집에 있던 콜라 1.5L와 매실 반 병을 같이 먹었더니 느끼함은 좀 가셨고, 배부름은 왕창 늘었다. 지금도 배불러서 오늘 저녁은 자동으로 패스다. 심지어 뒤에 먹은 빈대떡이 명백히 더 잘 구워졌는데도, 아까 말한 그 장점 뭐시기들을 다 갖추고 있었음에도, 당분간은 먹고 싶지 않다.


나를 배부르게 만들어 줄 풍요롭고 감미로워 보이던 그것은 사실은 두 겹이었다. 각각의 양식들은 따로 존재할 때는 충분하게 그 풍미를 느낄 수 있지만, 같이 모아두면 어쩔 수 없이 한 쪽은 대충 우겨넣을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럼에도 감당이 안 되는 양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따로 즐길 수 있었을까? 사실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반쪽짜리 빈대떡은 냉동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잊혀져갔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야 그래도 어떻게든 먹는게 낫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이전에 얼어서 곪아 문드러진 냄새나는 계란이나, 소중하게 사두었다가 잊혀진 채 냉장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더치 커피 원액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정말, 좀 더 크게 써있지 않았던 제품 설명 문구에 핑계를 대야 할지, 아니면, 그냥 끌리는 대로 골라서 직접 넣어놓고도,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 믿고 지금의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멍청한 스스로를 질책해야 할지.
하여간, 이중전공이란 참으로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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