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물마중

수고했어, 정말

by 리솜

잘 쉬고 잘 먹고 드디어 복직을 했다. 쉴 때는 그 나름의 여유가 좋았는데, 막상 복직을 하고 보니 또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번에 담당하게 된 업무는 처음 해보는 종류의 업무였고, 복직하자마자 새로운 업무를 잘 해내고 싶은 생각에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바쁘게 보냈다. 사실 새로운 업무를 잘 해내고 싶었던 이유는 휴직해서 구멍이 생겼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이것 또한 강박인 것 같기도... 강박의 노예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바쁜 두 달을 보내는 동안 새로 만난 동료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졌고, 새로 만난 학생들과도 제법 가까워졌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시간이 그래도 즐겁고 기대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교직은 나에게 천직인 것 같다. 사실 교직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18년 동안 한 번도 없다.


교직에 있으면서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늘 생동감 넘치는 10대의 청소년들과 일상을 보낸다는 것.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잘 성장시키고 싶은 생각에 의욕이 넘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이를 들어가지만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의욕이 생기는 나 자신을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교사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또 많이 배우기도 한다. 혹자는 교사는 공무원이라 철밥통 직업이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아도 임용고시 한 번 본 것으로 퇴직할 때까지 먹고살 수 있어서 편한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사라는 직업의 진정한 매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는 그 매력을 한껏 느끼면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이 기분과 행복함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곧 스승의 날이다. 스승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승이기보다 아이들의 친구일 때도, 아이들에게 엄마가 될 때도, 어떤 때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스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나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 쓰는 ‘샘’이라는 단어가 친숙하고 좋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물마중”

오랜 시간 물질을 하던 해녀가 해삼이나 전복 등을 캐서 망사리에 담아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올 때쯤을 기다려 그 앞에서 그 망사리를 같이 끌어주는 것을 물마중이라고 한다. 해녀들은 물마중이 없으면 바다에서 해변으로 나올 때 몸에 힘이 완전히 빠진 상태라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서운함인 것 같다. 서운함이라는 이 감정은 평범한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특히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느끼는 감정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는 힘든 일을 맡아서도 아니고, 그 힘든 일을 나 혼자 해내야 해서도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끝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인 것 같다. 물론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물마중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고 또 열심히 일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어도 동료 교사에게 “수고하셨어요.”라는 한 마디를 건네려고 노력하며 지낸다. 학생들에게는 더 자주 물마중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노력하다 보니 나중에는 의식하지 않고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물마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어떤 때에는 아이들이 나에게 물마중을 해줄 때도 있다. 세상에... 이게 위로가 될 줄이야.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나의 일상이 안녕한지를 묻고, 나의 안색을 보고 걱정해 주고, 추억을 곱씹으며 나에게 웃음을 주는 모든 일이 나에게 물마중이 된다. 단순히 학생이기보다는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서로에게 물마중이 되어주는 동행자라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는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나와 인연을 맺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마중이 되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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