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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an 07. 2021

고상한 전투(Noble battle) 중입니다

밀려드는 사람들, 견디는 힘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는 현재 업무 폭탄에 휩싸였다. 작년 연말로 실직자가 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신설된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하려고 고용센터가 문을 열기도 전에 영하의 날씨속에 줄을 서있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취업지원제도(이하 국취)가 코로나 위기상황에 갑작스럽게 만들어지다 보니 매뉴얼 자체가 완벽하게 세팅되지 못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신청속에 여러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다가 곧 긴급재난지원금 3차 지원이 시작된다. 인력은 고정, 업무는 거의 5배 정도가 늘었다.

오, 존재하는 모든 god과 모든 교주님들이여. 저희에게 해답을....


무너진 생계전선의 사람들이 고용센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국민 취업지원제도는 한시적인 사업이 아니라 한국형 실업부조사업으로 쭈욱~ 계속 진행되는 사업이다. 영하 추위 속에 줄을 서 긴급하게 신청할 필요가 없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학습된 사람들은 신청만 하면 모두에게 지원이 되는 줄 알고, 혹은 빨리 신청해야 돈을 받을수 있다는 생각에 마구마구 밀려든다. 그나마 내가 있는 센터는 중소도시라 다행이지만 수도권은 센터 문을 열기도 전에 북적댄다. 직원들은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한다. 어떤 직원은 꿈속에서도 국민 취업지원제도를 설명한다고... 웃픈 (웃음+슬픈) 현실이다.


코로나 1년, 그만큼 힘든 사람이 많다.

취업지원 서비스를 받으며 6개월씩 50만 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는 국취가 그만큼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코로나는 점점 생계 경쟁력, 생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경쟁력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낮은 학력과 저소득에 있는 사람, 면역력은 아슬아슬하게 저소득층 위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나마 버티고 있던 계층을 턱,주저앉게 만들고 있다. 동네 커피숍은 문을 닫았지만 별다방의 테이크 아웃 라인은 길다. 젊은 층은 휴대폰 주문을 넣고 차에서 기다린다.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50대 후반~70대까지), 흔히 말하는 중장년층의 베이비붐 세대들의 몰락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생계 경쟁력과 생활 면역력이 떨어지는 그들의 공통점은 인터넷의 접근성이 낫다는 것이다. 영국 실업부조 정책의 관료주의를 비판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영화 나다니엘 브레이크에서도 실직자가 된 다니엘이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커서를 위로 올리라고 하니 마우스를 자기 머리 위로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지금 고용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처지다.

못나서 그런 게 아니리 그들은 컴퓨터가 없는 시절에 청춘을 보냈고 인터넷을 다루는 일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언텍트의 가속화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소외계층.


가장 많은 인구의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 붐 세대, 노년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빈곤의 가속도가 심해졌다.




고용센터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21년 첫 연휴에 나가 사무실 이사를 했다. 공사 냄새가 났으나 어쩔 수 없이 1월 4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창구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딩동을 눌러 한번 창구에 앉은 사람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설명을 요구하고 나는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대기인원 숫자는 줄지 않고, 많이 기다린 사람은 또 짜증을 내고,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밤 10시까지 받은 신청서를 전산에 등록하느라 컴퓨터만 쳐다보다가 퇴근하면 집에서는 녹초가 된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목과 턱이 아파 음식물을 씹을 수가 없다. 긴장한 어깨는 근육이 뭉쳐 풀어지지가 않는다. 사무실 야경은 너무 좋은데, 그 야경을 보지 못했다.


실업급여 수령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신청 대상자

안됨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시며 가시는 분, 가족 등본에 부모님이랑 같이 등재가 돼 있는데 부모님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와야 한다니 부모님이 치매고 요양원에 있는데 어떻게 이걸 받아오냐고 화를 내시는 분, 구직신청을 해야 되는데 인터넷을 못한다고 안 가시고 눈만 껌벅거리고 앉아계시는 분, 휴대폰으로 화면 하나하나 터치할 때마다 물어보며 다른 대기자는 전혀 신경 안 쓰시는 분..... 이건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나 간디님을 창구에 모셔다 놔도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압권은 공무원 연금 3백 받으시는 분, 자기는 왜 신청 대상자가 안되냐고. 자신도 자식들에게 도움이 좀 되려면 취업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냐고 물으시는데 기절할 뻔. 땅도 있으시다는 데.  울컥 치미는 걸 겨우 참았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났지만 다행이다. 마스크가 코로나도 입냄새도 막아준다.



솔직히 민원이 맞은편에 앉으면 대충 짐작이 온다.

취약계층의 부류에 속하는지 아닌지. 이 분은 대상자가 되겠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숨기고 있는 소득이 있는지 아닌지. 요즘 숨길수 없는 것은 많다. 상담할 때 그 모든 것은 느껴진다. 컴퓨터만 보고 있는 줄 알지만 실은 맞은편에 있는 사람의 비언어적인 몸짓이 바로 캐치된다. 증거가 없을 뿐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인터넷 접근성이 한계가 있다고 여러 번 나는 말했다. 최대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학 졸업예정자들 조차도 온라인 신청이 까다롭다고 할 정도면 어쩌란 말인가? 물어보는 게 너무 많아요, 샘님.... 워크넷에 구직신청이 되어야지만 가능하다면 구직신청 탭 자체를 간소화해서 입력이 가능하도록 세팅해야 한다. 이런... 현재 구직신청서는 너무도 물어보는 게 많은데요, 어차피 나중에 취업알선 상담하면 다 물어볼 건데 이렇게 사전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하다니. 구직신청은 현재 마구잡이로 대충대충 하고 있다. 민원인도 짜증, 우리는 전산입력하며 띠바, 디바....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을 잘 세팅하는 고위직 공무원이 겸손해야 밑에 있는 우리 같은 말단 직원이 개고생을 안 하고, 국민들이 불편을 덜 겪는다. 그들이 취업 취약계층을 디테일하게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하는 생각, 모르면 잘 아는 사람들을 불러 구체적으로 자문을 받아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몇십 명에게라도 테스트를 거쳐봤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씩 만들어지겠지 하는 안일함보다 민원인들의 어려움을 먼저 염두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든다.



고위직 공무원은 똑똑하다. 똑똑한 사람은 너무 많다. 지금 필요한 건 잘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며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 그들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현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보신주의, 이렇게 하면 문제가 생겨서 나의 공직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공직자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행정을 기획하는 고위 공무원이 필요한 시기다. 그만큼 현장을 잘 알기 위한 노력이 절실할 때다.





물론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 코로나.

그래도 누군가가 한 말이 있다. 우리 집의 대들보가 무너져도 그건 국가 책임이고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그만큼 공직의 책임성이 막중하다는 의미다.


고용센터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현재 고용센터의 모든 직원들은 민원 파도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우리들에게도 가정이 있다. 집은 현재 개판 오 분 전이지만 출근한다. 선생님, 혹시 인터넷 도와주실 자녀분이나 아시는 분 없으세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지자체 어디라도 pc데스크를 만들고 인터넷 도우미라도 있으면 좋겠다. 인터넷 검색되시는 분들 제발 전화부터 하지 마시고 검색 후 신청해 주시길. 자녀들은 부모님들 인터넷 신청 좀 도와주시길. 그래 주시길.... 결국 우리는 함께 버티고 견뎌야 하니까.



기운이 빠져 겨우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오늘 확진자는 몇 명이니. 코로나는 언제 끝날 것 같니. 끝나기는 한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고상한 전투(noble battle)이다. 혹은 고상한 전쟁이다. 피를 흘리거나 총격전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멈추었고 문을 닫았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하고 거리두기를 시작한 코로나, 이것은 고상한 전투가 아닐는지.


전쟁에서도 인간애는 발휘된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원망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힘을 다해 버텨 보는 것도 인간애의 방편이라고. 그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발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독일 노인들처럼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것(독일에서 이웃 청년이 한 달 만에 완벽한 주차를 했을 때 이것을 쳐다보던 옆집 노인이 박수치며 같이 기뻐했다는 일화), 주변의 어려운 지인들에게 로또의 손길을 내미는 것(로또를 사주는 나눔) 아무리 뛰어난 국가라도 이웃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감당해 낼 수는 없다. 혹은 그런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인간애가 아닐까.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민원신청 줄에 서지 않을 양심, 혹은 조금 늦게 올 권리.


오늘은 눈이 내렸다. 와~~ 양가감정이 든다. 오늘은 민원이 덜 오겠지와 나이 든 분들이 오면서 미끄러지지는 않아야 할 텐데. 나도 사람인지라. 또 전쟁의

시작이 방아쇠를 당긴다, 탕!!!




백성은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불공평함에 분노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난도 불공평함도 모두 분노할 듯하다. 바짝 긴장하여야 하는 시기, 존버 신을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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