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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an 23. 2021

시샘하는 곳에 가까이 가라

나의 치장이 머무는 곳, 여기



앤 해서웨이가 런웨이를 하는 줄

동대구에서 마산으로 오는 기차 환승을 위해 에스킬 레이터를 타고 있을 때 옆으로 아름다운 여성 한 분이 우아하게 스쳐갔다. 키가 최소 170cm는 돼 보였다. 앤 해서웨이가 했던 짧은 커트와 짙은 코발트블루의 롱코트. 살짝 꼬은 허리 벨트, 쭉 뻗은 다리로 드러난 검은색 스타킹, 도도하게 온몸을 받친 오렌지색 하이힐.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를 쫓아갔다. 곁에 가보니 오뚝한 콧날까지. 걸음걸이조차 세련되고 패션너블함이 넘쳤다. 살짝 들어 올린 손목에 간달거리는 토트백까지. 어떤 브랜드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카멜 브라운의 토트백은 분명 명품 중 명품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아 올린 눈썹의 선명함이 드러난 화장, 풀 세트의 완벽함. 빛나는 비주얼의 끌림. 앤 해서웨이가 동대구에 온 줄 알았다.


기차가 들어와 좌석을 확인했다. 이런. 일반석인 줄 알았는데 급하게 예매하느라 특실을 끊었다. 완벽한 그녀가 저 앞쪽에 앉았다. 특실 또한 라인 하나에 한 좌석밖에 예약을 안 한다. 물을 가지러 이동하는 사이 그녀를 힐끗 봤다. 조심스럽게 하이힐을 벗어 옆에 가지런히 두었다. 7cm 이상의 굽 높이를 스틸레토힐이라 부르는데 얼핏 보기에 그 정도는 돼 보였다. 약간의 연민이 들었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없구나. 경외심이 돋던 그녀에게 야릇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운동화인 내 신발이 투박하지만 다행스러웠다.




노란 핸드백의 배신

40대를 넘어서자 한 번은 나도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싶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난 뒤 아이 셋을 양육하느라 맨날 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아이들 짐 때문에 에코백, 천가방만 들고 다녔기에 외출에서 자연스레 아이들이 떨어지자 느닷없이 나도 있는 척하고 싶어 졌다. 치장의 욕구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낸 40대 어느 날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다.


땡숙이는 루이***를 남편이 사줬데.

그게 뭔데. 명품가방. 하나에 76만 원 하는.


그해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나를 데리고 백화점을 갔다. 가방을 사러. 매장을 들어간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매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난감한 상황. 사준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지르기엔 너무 비싸고. 조르기는 했지만 이렇게 비쌀  몰랐던. 그냥 오기에는 비루함의 무게를 매달고   같은. 침묵한 채 매장 바깥을 돌다가 우리는 매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는 노오란 핸드백을 만났다.


28만 원. 디자인이나 컬러가 딱히 맘에 들었던 것이 아니라 상황을 모면해줄 수 있었던 노란 핸드백. 출근하는 날 그 백을 들었다. 청바지에 티를 입고 비비크림만 바른 얼굴에 운동화를 신고. 노란 핸드백이 붕붕 떠 다녔다. 출근할 때 들고 온 가방은 내내 사무실 책상 밑에 쓰러져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각이 진 부피에 비해 화장품 파우치와 휴대폰 하나가 들어가면 안성맞춤이었다. 출근할 때 비가 왔다.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비를 맞고 뛰었다. 하필 하얀 셔츠를 입다니. 핸드백에서 우러난 노란 컬러가 셔츠의 옆구리를 물들였다.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계속 신경이 써였다. 가방에서 묻어 나왔다고 할 수도 없고.


너는 진짜 명품이었을까. 옐로의 배신.


노란 핸드백은 그 뒤로 서랍에 몇 년 동안 방치되었다. 얼마 전 당근 마켓의 물품으로 등장했다. 중고 가격 5만 원. 가방을 사용한 횟수는 채 10번이 되지 않았다. 옐로우의 배신은 시크릿이다. 일단은 당근에서 팔아야 하니까.




치장의 욕구가 향한 곳

사람들은 내가 꾸미지 않는 이유가 페미라서 그렇다고 오해들 한다. 내가 만난 페미 여성들은 자아존중감이 강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대로 자신을 꾸밀 줄 안다. 빈티지나 미니룩에 빠지거나 혹은 어느 아이템이나 굿즈에 몰입하거나. 뚜렷한 개성은 숨겨지질 않는다. 맹탕인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화장이나 치장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다. 아이라인 그리는 시간에 더 자고 싶고 마스카라 지우는 시간에 책을 더 보고 싶다.



여기에는 브런치도 한몫을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알게 되는 것, 내 안의 지식과 사유의 용량이 쉬이 바닥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섭렵했던 깨달음이 편향적으로 치우쳤음을 인식하게 된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채우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갈증처럼. 내가 가지지 못한 지식과 감정을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내는 다른 브런치 작가들을 만나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차원이 달라. 그들의 직업은 대부분 에디터이거나 혹은 기획자, 기자나 방송작가들이다. 역시나 글로 밥을 삼는 사람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어떻게 저런 표현들이 슝슝 튀어 오르는 거지. 말하고 싶은 맥락이 씨줄과 날줄처럼 완벽하게 이어지다니. 심지어 쫘르륵 잘 읽히기까지 해. 나는 도저히 쨉이 안돼.



글쓰기에서 어쭙잖게 치장이란 걸 한다. 브런치 북 대상의 글을 소리 내 읽어보기도 하고 따라도 써보고 글감의 주제도 자주 검색한다. 주어를 앞으로 보냈다가 삭제했다가. 하고자 하는 말의 밑그림을 이리저리 그리며 색깔을 입힌다.  지금 글쓰기로 흠뻑 치장하기에 빠져있다. 어떤 내면의 색깔을 갖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뻐지는 것만큼 채워지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하면 할수록 매력 있는 일이다. 지식과 사유의 치장에 몰두 중이다. 시기심을 생산적으로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중. 읽고 쓰고 고치고. 글을 치장하는 맛에 폭 빠졌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없다.

외모도 글쓰기도.




나보다 잘나가는 브런치 작가들을 시샘한다.


시기심을 인정하거나 곰곰이 생각하고 싶은 감정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에게조차도 자신이 품은 시기심을 감추고 싶다. 시기심이 동기가 되어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결코 알고 싶지 않다(생략)


비교하는 성향을 생산적으로 바꾸는 요령은

- 당신이 시샘하는 것에 가까이 가라

-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 미트프로이데(함께 기뻐하라)

- 시기심이 아닌 본보기의 대상으로 삼아라

- 인간의 위대함에 경탄하라

<인간 본성의 법칙 중 억압의 법칙 중에서>


당신이 시샘하는 것에 가까이 가라.

그래서 그들의 글을 가까이 한다. 브런치를 자주 읽는다.



나를 배신했던 노란 핸드백




#아줌마가 쏘아 올린 공동체 글쓰기 모임인

<위아더언니> 두번째 글감입니다.

나를 치장하고 싶을 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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