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아치우먼 Mar 05. 2021

조우의 씨앗은 <존중>이다

핑크 칼라&돌봄 노동에 대해



다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201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독일에서는 여성들에게만 지하철 요금 21%를 할인했다. 이 수치는 독일에서 이루어진 남녀 임금격차의 데이터였다.

독일 국민들에게 임금격차의 현실을 그대로 알린 일이었고 기업들은 사회적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1908년 여성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던 함성이 지금은 무의미한가?



빵은 터무니없이 낮았던 저임금을 의미하며 장미는 참정권을 말한다. 간단하게 참정권(서프러제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미국 여성들은 1920년이 되어서야 참정권(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1870년 남성 노예들이 참정권을 가진 지 72여 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이마저도 상류층 여성들보다 하류층(일하는 여성들)은 10년이 더 지나서야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중




핑크 칼라& 돌봄 노동

21년 여성들의 일에 대해 질문한다.

여자들의 일자리는 안녕한가?



코로나는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최우선시되면서

<대면>이 새로운 불평등의 요소로 등장했다. 그 대면은 서비스직 등 여성적 노동의 구성 요소라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 일자리 위기와 노동안전 위험은 곧 여성적 위기로 연결된다.(일다 중에서)



핑크 칼라

:) 비대면은 핑크 칼라 여성노동자를 옥죄였다

저임금으로 서비스업에 종사했던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영업제한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4대 보험의 영역에서 비켜난 젊은 여성들의 일자리는 어느 귀퉁이에서도 통계로 잡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보상방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생계의 주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파트타임이라는 이유로.



그녀들은 이렇게 특정지 어진다.

그녀들은 젊다.

다른 곳으로 향하기 위해 잠시 생계를 의탁한다

감정노동을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로 그녀들의 노동을 한 번쯤 해볼 만한 고생으로 치부해도 좋은 걸까?

젊다고, 잠시 머문다고, 전문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녀들의 노동은 하찮게 대우받아도 좋은가?



다행히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드라이브 스루의 핑크 칼라, 그녀는 하소연한다. 마스크를 쓰고 주문해 달라는 최소한의 예의 조차 손님들은 나에게 건방지다고 한다.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는 나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종업원일 뿐이다. 미트칠리미프버거 세트를 주문할 때 이름을 잘못 말해 놓고도 주문이 틀렸다고 계산을 물러 달라고 떼쓰는 사람도 있다. 윽박지르고 점장을 불러오라고 호통친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해결하는 것이

존엄한 일인 듯 행해지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 시대 핑크 칼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혹은 살아남았더라도 무시당하거나. 그녀들이 저임금으로 아르바이트라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범한 가정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핑크칼라,

그녀들은 투명인간이어도 괜찮은가?




돌봄 노동

집이 가장 안전하다, 집에 머물러야 한다라고 했을 때 일하는 여자들은 이중의 무게를 지녀야 했다. 자녀 돌봄과 노인 돌봄의 무게. 알파로 가족 돌봄의 확장, 삼시 세 끼에 대한 가사노동의 증가.



이 때문에 급성장한 밀 키트 시장.

(코로나 시대에도 자본은 지속적으로 자본을 축적한다. 가난은 더 악랄한 가난으로 밀린다)



2008년 국민건강보험법중 노인장기요양법이 시행되었다. 우리의 급여에서 장기요양보험료가 공제되기 시작했다. 노인 돌봄은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부담에서 공적이고 국가적인 영역으로 넘어왔다.

더불어, 간병인(요양보호사)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중년 여성들의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일터가 되었다.



돌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돌봄 노동은 저평가되어 '여성에게 적합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시킨 부분을 변화시켜야 한다.(일다 중에서)




대학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그녀들을 관찰했다. 환자가 있는 병실의 간이 의자에서 식사를 하며, 주로 점심은 컵라면이나 컵밥을 이용했다. 환자들과 동일한 샤워시설을 사용해야 했다. 누군가 사용하고 있으면 차례를 기다리거나 밤늦게 혹은 새벽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24시간 간병인이 머무는 곳에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으며, 휴게공간 조차 없었다. 간병인의 영역은 사적으로 치부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고용주와 간병인의 개인적인 계약관계인 듯. 병원의 공적 영역에서 제외된 듯했지만 간병인이 병원의 공간 머물고 이를 공식적으로 병원이 허락했다면 최소한의 인권적인 공간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들의 식사할 권리와 안전하게 씻을 권리,

잠시 휴식할 권리, 안전하게 옷을 갈아입을 권리, 공간을 통해 보장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어머니의 바지를 벗긴다고 끙끙대자 간병인이 와 살며시 힌트를 준다. 바지 대신 윗도리를 가져와 양팔에 다리를 넣으라고. 그러면 바지를 벗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고.



돌봄 노동은 하찮지 않다. 전문적이지 않지만 전문적이다. 서로의 영역이 다를 뿐이다. 그녀들에게 사람으로 마땅히 제공되어야 하는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어서? 그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조우의 씨앗은 <존중>이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한 사회의 가치관이나 제도로부터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제를 한층 더 뛰어넘어 가치관이나 제도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도는 충분조건이 아니지만 필요한 조건일 수 있다.



핑크 칼라는 감정노동자로 존중되고 그녀들의 위기도 공적 영역에서 보상받아야 한다. 돌봄 노동은 필요한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녀들과 조우(encounter)했을 때  우리는 마땅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 제도나 법이 사람의 평등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인식이 확장될때 평등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닐까?



​http://movie.daum.net/moviedb/grade?movieId=8470​9




 <참고자료>


페미니즘 앞에  그대에게

강남순 지음/ 한길사





작가의 이전글 2. 발칙한 프레임, 심리학을 겨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