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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Apr 07. 2021

트롯 닮은 사람을 만나는 일

별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스테이플러 아저씨

45번 번호포를 뽑아 든 아저씨는 오른쪽 귀에 손을 갖다 대고는 스테이플러를 달라고 요청했다. 의아했지만 유리막 사이로 스테이플러를 건네자 나를 등지고는 한참을 꿈쩍거렸다.

"마스크 끈이 떨어졌네요.ㅎㅎ"

다시 스테이플러를 내게 건네는 아저씨의 오른쪽 귀에는 스테이플러 침이 낯설게 박혀있었다. 회색빛 추레한 모자, 마스크 위로 굵은 주름이 가득한 눈매,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의 흰머리들. 스테이플러를 건네는 두툼하고 거친 손. 네이비색의 윤기 없는 체육복 자락. 딱 봐도 부티나는 계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말없이 서랍을 열어 Kf마스크를 꺼내 아저씨에게 건넨다.


"선생님, 그냥 이걸로 쓰세요."

아저씨는 내가 건네는 마스크를 받으며 못내 황송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에게는 업무시간에 사용 가능한 마스크가 지급되며 엄밀하게 말하면 그 마스크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낸 세금으로 내게 온 것이라 그가 그렇게 황송할 일은 아니다.


역시나 그의 노동 이력은 생산직 회사였다가 몇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는 일용직으로 머무는 상태였다. 무엇인가 도움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 중 남자들은 두 분류로 나누어진다.


도움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나 묻는 말 외에는 잘하지 않는 자존심형. 한마디로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는 타입이며 상담하는 우리에게 약간의 반항 기질을 갖고 있다. 안정적인 우리에게 가지는 적대감을 유리벽 사이로도 느낄 수 있다. 나머지 다른 분류는 적극적인 형이다. 자신의 어려움을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길 가다 만난 친구처럼 허물없이, 여유 있게 어려움을 호소한다.

"쇠주 한잔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친구한테 얻어먹었소." 능글맞고 차라리 적대감 같은 건 없다.



물론 대하기는 후자가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마음은 왠지 자존심형에 더 간다. 그 이유는 능글형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자존심형은 어려워도 어렵다고 말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스타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존심형일 경우 더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스테이플러 아저씨는 능글형이었다. 혼자였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원이 가능한 범위에 들어갔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일회용 마스크 몇 장을 더 챙겨드리며 호주머니 속에 일회용을 예비용으로 챙겨다니라고 당부했다. 아저씨는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고쳐 쓰고는 고맙다며 자리를 떠났다.



촌사람이라서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아이디나 비번을 만들지 못해서 쩔쩔매는 아주머니를 보면 그냥 무시하지 못하고 내 창구로 오시라고 한다. 아이디와 비번을 만드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상담자의 이름 약자와 날짜를 아이디로, 아이디+@@를 더하면 비번이 된다. 이메일을 적어야 하는 경우는 내 이메일을 적는다.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잠시 5분 하면 되는 일을 아주머니는 어쩔 줄 몰라 헤매다가 내가 단숨에 해결해주면 회원가입을 할 줄 모르는 일이 아주 부끄러운 것처럼 말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이런 거 못하는 게 당연하죠."


그리고 동영상 시청 화면을 누르고 꼭 여기 다음을 터치해야 한다고 안내해준다.



나는 연민 지수가 높은 사람이다.

촌사람이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고 사람의 어려움에 쉽게 공감하는 편이다. 헤매는아주머니를 보면 그냥 인터넷 모르는 내 언니 같이 여겨진다.


촌에서는 동네 골목의 누구 집이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하는 걸 보고 자랐다. 가족은 아니지만 동네 언니 오빠들이 딱히 타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마을 공동체가 사람에 대한 경계를 많이 가지지 않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일상이었다.


우리 집 마늘을 다 심었는데 옆집 마늘이 아직 덜 심어졌다면 그냥 쑥 들어가 그 집 마늘을 같이 심어 준다든지. 다른 집 경운기가 지나가다 우리 집 짐이 많으면 멈춰서 실어다 준다든지. 딱히 도와준다는 느낌 없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도움들. 그런 것들을 몸으로 익히고 살아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도 다른 사람의 곤란함에 관여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그리고 내 나이보다 많은 사람들이 곤란함을 겪을 때는 육체적인 번거로움 보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누는 것이다.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내 맞은편 유리벽 너머로 앉은 사람은 내가 하지 못하는 미장질을 나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내가 하지 못하는 요리를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나의 선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고.


연민 지수가 높은 것은 또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너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촌사람이라서. 자라온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일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살면서 이런 특징 때문에 크게 피해를 본 적은 없다.


사람에 대한 경계를 허물며 그냥 타인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은 사람, 비슷한 사람이 되면 벽이 없어진다. 벽이 없어지면 어느덧 편안함이, 그리고 부담감이 없어진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큰오빠, 언니, 혹은 동생 친구 정도로 여겨 지기 때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많은 서비스들을 그냥 슬슬 풀어놓게 된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당연히 나의 친근함을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 정신적 피로감보다 말을 많이 해서 오는 육체적 피로감이 문제일 뿐이다.




트롯을 닮은 사람들

먹고살만한 사람들은 내 앞에 마주할이 없다.. 한 달에 50만 원을 받으러 7장의 신청서를 작성하러 오지 않는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국비 지원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있는 사람들은 봄날에 골프를 치러 가거나 백화점에 가 쇼핑을 하거나 인터넷 맛집을 찾아 브런치를 먹으러 가겠지. 젊은 친구들이 검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여기 오지 않는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 노량진에서 공무원 공부를 하거나 헤드헌터에게 월 300을 주고 대기업 입사를 코칭 받겠지.



천년을 살다가 리요,  년을 살다가 리요~ 세상은 가만있는데 우리만 변하는 구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사람들의 울림 벨은 대부분 트로트다. 그리고  벨이 울리면 거창하게 큰소리로 말한다.  여기 센터거든,  무신 카드 만들러 왔지. 끊어. 이따 내가 전화할께.



내가 일하는 곳은 트로트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클래식이나 힙합이나 세련된 음악보다 미스트 트롯의 인기몰이에 빠져 사랑의 콜센터를 애청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트로트가 수준이 낮거나 저급한 음악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4분의 4박자에 다양한 레퍼토리안에 들어 있는 삶의 애환이 진부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의 삶이 하찮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돈은 스펙트럼의 차이이지 품격의 문제는 아니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가 품고 가는 보물이 있을 뿐이며 누구의 보물이 더 값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생은 비교 불가능한 신의 영역이니까.



제목을 물어보니 부초 같은 인생이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검색해 들어본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냐. 웃으면서 살아가 보자. 가수의 광활한 음량에 마음을 맡겨둔다. 오늘 하루 만났던 사람들의 잔상을 모두 지운다. 맺힌 것도 담아 올 것도 없다. 가사처럼 내가 선택한 일을 웃으며 가는 것. 홀가분하다. 그녀 때문에 멋진 노래를 선물 받았다. 부초 같은 인생, 그보다 더 훌륭한 철학이 또 어디 있을까.





사람앞에서 똥폼 잡지말고

그들과 같이 좀 허물어져 살자.

잘난 놈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살자.

부초같은 인생, 그래봐야 백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별 보다 사람이나 사랑하며 살자.

트롯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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