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훈보다 초심을 걸어야 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by 양아치우먼




돌아가신 지 10년째가 되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외출은 이발소였다. 차가 있어야지만 이동이 가능한 탓에 가끔 고향집을 내려가면 아버지를 모시고 이발소를 찾았다. 빨강 파랑 흰색의 원통은 돌아가지 않고 왼쪽 밑이 별 모양으로 깨어져 있었다. 뿌연 새시문을 밀면 코끼리처럼 거대한 이발의자가 시멘트 바닥 위에 썰렁하게 놓여 있었다. 이발의자 앞에는 널따란 거울과 농협 달력이 전부였다. 왼편으로 하늘색 타일이 오밀조밀 붙은 세면대가 허름하게 있었다.



아버지를 부축해 이용의자에 앉히면, 이발사는 나와 같이 아버지를 부축해주며 착한 딸이 왔다고 자기 딸이 온 것처럼 멋쩍게 웃었다. 그의 나이는 팔순의 아버지보다는 젊었지만 나처럼 큰 딸이 있을 법해 보였다. 체구가 작고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시골이었지만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말끔한 흰가운이 낡은 이발소와는 달리 세련된 이미지를 풍겼다.



아버지의 목에 가운을 두른 뒤 어떻게 깎을까요 라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기존의 스타일을 따라 능숙하게 가위질을 했다. 물을 뿌릴 때는 어르신, 좀 차갑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대충 깎아도 될 법한데 목덜미라든지, 귀 옆머리까지 깔끔한 라인을 만들어 주었다. 가위의 서걱거리는 소리는 바람을 뚝뚝 가르는 것처럼 야무졌고 그의 가위질에 비하면 손님이나 가게가 너무 초라하다고 여겨졌다.



주인이 내 앞머리를 한 움큼 잡고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흔들었다. 보일락 말락 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리 전체를 골동품 항아리라도 다루는 듯한 손길로 쓰다듬기 시작한다.



이발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건 면도였다. 이발사는 나무색 탁자에 놓여 있는 때 묻은 전기밥통에서 김이 나는 수건을 가져와 아버지의 얼굴을 덮었다. 그때 이미 반쯤 두러 누운 아버지는 김이 폴폴 나는 수건이 얼굴을 덮자마자 곤한 잠을 잤다. 수건이 조금 식으면 이발사는 아버지의 수염을 만져보고는 또 전기밥통을 열어 수건을 교체했다. 수염이 부드러워 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이발사의 행동을 바라보지 않는 척 소파에 널브러진 오래된 잡지책을 넘겼다. 더 할 수 없는 따끈한 시간이 세 사람 사이에 떠 다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면도의 시작을 알렸다.



후드득 내렸다가 지나가는 여우비 소리처럼 수염이 깎여나가는 소리 사이로



그리고 신문 앞에 가지런히 모아둔 카드 명세서 봉투, 수신자 이름이 드러나는 쪽에 투명 비닐이 입혀진 봉투에 이발사는 능숙하게 거품이 묻은 수염을 닦아냈다. 내가 뜯지도 않고 버렸던 편지봉투의 비닐이 이발사에게 그렇게 적절하게 쓰이는 모양새를 보고 사람은 창조도 하지만 활용에 능숙한 존재임을, 면도를 도우느라 아버지는 사슴 모양 고개를 쭈욱 늘어뜨렸다.



실은 제가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목에 닿은 면도칼의 감촉이 싸늘해졌다. 주인의 그 말이 우연히 그때 나온 것이 아니라, 목에 면도칼을 댈 때를 가늠해서 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아니, 그가 자기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손님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고 싶어서



면도가 끝나면 이발사는 브러시로 머리카락을 쓸어 낸 뒤 세면대 앞으로 아버지의 팔을 부축해 머리를 감겼다. 샴푸가 아니라 세숫비누였다. 처음 내가 기겁을 했을 때, 이발사는 오래 감지 않은 머리는 샴푸보다 세숫비누가 더 기름기를 잘 벗겨낸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주 머리를 감지 못하는 아버지 같은 노인네들에게는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몰랐다. 샴푸를 쓰면 안 되나요. 샴푸는 거품이 많아서 머리를 감기기도 어렵고 어르신들 눈에 들어가 불편하더라고요.


직업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가 있다는 사실은 신뢰를 갖게했다. 이발사는 세숫비누로 아버지 머리를 쓱쓱 밀고는 손가락으로 두피를 누르며 머리를 감겼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아버지는 다소곳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뒤 이발사는 다시 아버지를 요모조모 뜯어봤다. 그리고 마구 뻗친 눈썹을 가위로 잘 정리해주었다.



돈을 조금 더 얹어 드리라.

매끈한 얼굴을 한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깊은 피로를 잘 만져준 대가에 대해 아버지는 그렇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근처 늙은 중년들이 도시로 나갈 때 꼭 들러야 했던 낡고 작은 면사무소 옆 이발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거기에 이발소가 있었는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전갈도 남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나는 당신 덕분에 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아버지란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전쟁과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의 늪을 살아낸 인간의 회한이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세월을 건너는지.


일이란 결국 타인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머리 하나를 자르는 것에서도 고객의 일과 마음을 읽는 기술을 논하는 장면은 일본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 시간 동안 청년이 이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발사의 담담한 고백을 통해, 다양한 시선이 교차한다. 손님과 이발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처연한 그리움은 누구의 몫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발사의 것이었는지, 결혼을 앞두고 이발사를 찾아온 청년의 것이었는지. 어느 대목에서는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왼손잡이와 머리 흉터가 오버랩된다. 그리움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힘이라는걸 알게 된다.



당당하려고만 발버둥 쳤던 서툰 남자들을 어루만졌던 이발사가, 아직도 필요한 건 아닐까. 자신의 수염을 따뜻한 수건으로 덮어주고 거품으로 거친 수염을 잠재운 뒤 최상의 휴식을 제공했던 시간이 사라져 버린 지금, 이해받았던 시간들이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 서로가 서로를 더 가까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의 몸에서 여우비 같은 소리들이 사라지는 일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리움을 통째로 쏟아 놓는다.



받으려 하지 않은 이발 삯을 간신히 지불하고, 나는 낡은 앨범을 덮듯이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주인의 목소리가 등 뒤로 날아왔다.


저, 얼굴을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앞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는지 신경이 쓰여서.





[ 단편소설 ]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2016년 155회 일본의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


*민트색과 제목은 소설에서 빌려온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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