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 부풀어 오른다
집으로 올라오는 조그마한 공터, 사람들이 근처 고깃집을 가거나 치킨가게에서 술을 마실 때 주차하는 자갈밭 공터에는 요란하고 자글자글한 글들이 쓰인 트럭이 매일 서 있다. 트럭 위에 조잡하게 사면으로 처진 패널 위 글자들을 요약하자면, 50년 된 누수 전문가, 집안의 모든 누수는 막아드립니다, 누수의 달인, 누수로 고생하시는 분은 망설이지 말고 연락 주세요, 라는 말이었다.
그 트럭을 애틋하게 눈여겨본 것은 여백 없이 빼곡히 들어찬 홍보 문구에서 트럭 주인의 팍팍한 삶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늙었을 것이고, 담배를 피울 것이며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가 묻은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모든 누수는 징조를 동반한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분명히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누수, 물이 새는 일. 그 단어를 떠 올리면 물에 젖은 벽지가 생각나고 쥐오줌처럼 얼룩진 천정, 낡은 쓰레트 지붕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잘 지어진 아파트는 누수를 경험하기 힘들지만 내가 살았던 자취방은 누수가 흔한 일이었다.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내리는 날이면 꼭 어딘가 구석진 곳으로 물방울이 맺혔다.
물이 새기 전,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천정처럼. 반드시 징후를 동반하는 것들이 있다. 징후는 보통 사실과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다.
오빠가 겨우 구입한 낡은 집의 누수를 막아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아저씨, 막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것이 확연한 그에게 공사를 맡겼다. 돈 4백만 원을 주었다. 처음 조그만 곳에서 시작된 누수는 한 달 새 온 벽면으로 번져서 결국 곰팡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런 건 일도 아니다.
곰팡이의 습격에 곤란한 표정이 된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조무래기 앞에서 거만한 폼을 잡는 중학생 같은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공사는 일주일째 진행되었고 그의 검은 낯빛과 우악스러운 손과 기름때가 묵은 장비들을 신뢰했다. 공사 마지막 날 곰팡이가 피었던 벽면은 산뜻하게 연둣빛 세로 막대 무늬가 있는 벽지로 마무리돼 있었다.
옥상에서 누수된 곳을 찾았다며 특수 제작한 페인트로 잘 마무리해서 앞으로 집이 무너지지 않는 한 누수가 되는 일은 없다고. 옥상은 시멘트 색깔을 벗고 녹색 페인트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말에 어찌나 안심이 되든지 가게에서 시원한 커피까지 대접했다.
비가 왔다. 진짜 아무렇지 않았다. 또 비가 왔고,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다.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본색을 드러낸 누수는 내 눈물샘을 건드렸다. 그 아저씨의 연락처를 지워버린 것이 신뢰의 누수였다.
형의 숨소리가 우리가 사는 여기,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어디서 무엇이 조용히 흔들렸다.
무엇이든 흔들리는 것은 조용히 흔들린다. 조용한 흔들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결국 무너지는 일 밖에, 나는 그들의 투박함을 믿는 일을 조용히 거두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무슨 생각이든 골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누수 트럭만 보면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한동안은 괘씸했다가 세월이 흐른 지금, 누수를 막는 일은 거짓말이라고 여겨진다. 새는 것을 완벽하게 막는 일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비는 언제나 내리고 사람은 언제나 물과 함께 산다. 몸의 7할이 물이라는데 사람의 누수를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끊어 오르는 슬픔을 기반으로 두 눈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인간의 누수는 곧 눈물이다. 울지 않고 자라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어느 땐가 감당할 수 없는 현상이 누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슬픔도 삐죽삐죽 새어 나와야지만 용기가 된다.
"저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무 배가 고파졌어. 허기가 사라지지 않아."
천정완의 단편소설 <팽-부풀어 오르다>는 체조선수였던 형의 자살을 다룬다. 10년 동안 자신이 연마한 기술을 마침내 완성한 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징조로 누수가 등장하며, 누수는 결국 형의 자살을 상징한다.
사막 속에 오아시스 놓여 있었더니
물에 비친 모랫길을 제 길인 양
생이 다하도록 잘 걸었다는 낙타
(천양희의 자화상 중에서)
이 소설을 읽은 뒤 생각 난 시였다. 형은 어쩌면 사막 속 오아시스를 제 길인 양 평생 걷다 간 게 아닐까.
20년을 하루같이 출퇴근 하며그 길이 제 길인 양 살아가는 남자의 등은 낙타가 아니었을까.
의미없는 성공은 결국 슬픈 결말을 가져왔다. 무엇을 성취한다는 것, 성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소설이 내게 물었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것에 인생을 걸고 보잘것없이 죽는다. 살아가는 어디에도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슬픔에 빠질수 밖에 없다고.
물에 비친 모랫길을 제 길인 양 걸어도, 오아시스를 찾는 일이었다고 삶에 가치를 매다는 것. 산다는 것은 걸음 하나 몸짓 하나에도 그 이유를 변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동작들은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었다. 숨 막히게 고요한 체육관은 형이 매달린 철봉이 진동하는 소리로 작은 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지상에 발이 닿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철봉을 오가던 형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사뿐히 철봉에서 손을 놓고 바닥에 내려섰다.....
그가 조용히 내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그 손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오랜 가뭄을 겪은 땅처럼 균열로 가득 찬, 단단해서 더 연약해 보이는 손이었다. 내가 좋았다고 말했을 때 그의 미간이 움직였다. 찰나, 내가 형의 동생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포착하지 못할 어떤 것이 지나갔다.
팽-부풀어 오르다
천정완 지음/ 2012년 젊은 소설
작가의 추천 문장
얼마나 복잡한 생각을 해야 저런 등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