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제과점
소설가 김연수에게 <뉴욕 제과점>과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부끄러움이 있었다면 내게는 남해와 <거짓말의 처음>이 있다. 지난 시간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채 현재를 살고 있는 건 누구나 같다. 우리는 추억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생명체니까.
마을 회관 옆에 있었던 점빵(상점)을 기억한다. 쫀드기와 뽀빠이와 네모난 카라멜과 아폴로를 팔았던 조잡한 점빵, 각성냥이나 빨랫비누가 떨어지면 심부름을 갔던 점빵은 나무판자로 벽에 진열대를 만들고 가운데 플라스틱으로 된 계단식 진열대에 천을 뒤집어 씌운 채 뽑기 사탕을 팔았다.
태권브이 만화가 그려진 종이에는 조그마한 원이 점선으로 그려져 있어 그중 한 개를 골라 뜯어 내면 뒤에 꽝이라든지 사탕 1개, 혹은 캐러멜 1개가 써져 있던 종이 뽑기는 10원을 들고 헐레벌떡 쫓아간 일곱 살 계집아이에게 설레는 순간이었다.
알사탕, 입에 넣으면 달짝지근한 침이 한가득 고이게 하는 마술 사탕. 입안에서 굴려 먹는 한나절의 달콤함, 그날 내가 뽑기를 하려 갔을 때 주인아저씨는 부산했다. 심각한 내 뽑기는 꽝이었다. 실망한 내 눈밑으로 누군가 버리고 간 사탕 1개의 종이가 보였고 재빨리는 그것을 주운 나는 아저씨에게 가져가 사탕 1개를 뽑았다고 했다.
일곱 살이면 내년에 학교를 갈 텐데 거짓말을 하면 되냐고 아저씨는 나를 나무랐다. 아저씨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분명히 아저씨는 내가 뽑기를 할 때 부엌 쪽으로 가고 없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이 뻔한 거짓말이 되다니, 꽝으로 날아가버린 10원이 너무 안타까웠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또 부엌 쪽으로 휑하니 가버리는 아저씨를 등지고 나는 진열대 통에 담겨 있던 카라멜 한 개를 들고 냅다 도망쳤다. 숨이 목구멍에 차도록.
일곱 살보다 두배, 세배, 네 배, 기하급수적인 나이를 먹는 동안 자신이 뽑은 것이 꽝이라도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꿔치기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내게 일곱 살이니 그런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는 덜 어리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몰랐다. 아저씨는 내내 점빵을 지키다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생애 최초의 거짓말에서 혼쭐이 난 나는 다시 거짓말을 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뽑기는 절대로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다는 룰을 아는데도 시간은 한참 걸렸고, 꽝은 그들이 만든 함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제야 적절한 거짓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 흐뭇하다. 가기 싫은 약속에 몸이 좀 안 좋아서 따위의 거짓말, 그리고 주목받는 거짓말을 하고는 싶지만 고만고만한 평타 인생에는 그 따위가 거짓말의 전부다. 권력의 그늘에 있는 사람은 거짓말의 무게도 무겁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뉴욕 제과점이 있었던 그 거리에서 사라진 상점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상점과 함께 동네를 떠나버린 사람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나란 존재는 그 거리에서 배운 것들과 그 거리 밖에서 배운 것들로 이뤄진 어떤 것이다.
Y자로 난 길 중간에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상치나 배추를 가져와 씻고 쌀 대야를 들고 밥할 준비를 하던 곳, 걸레를 빨기 위해 내가 수없이 드나들었던 우물가에는 반들반들한 사각 테두리가 양 사방으로 둘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그 위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바로 우물 안으로 빠져 들었을 텐데 그렇게 천방지축 뛰어다녀도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가 없었다는 게, 지금 신기할 따름이다.
5학년 때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담임으로 왔다. 방한칸이 전부인 우리 동네에서 자취를 했다. 더운 여름 제대로 씻지 못한 선생님은 나를 우물가로 불렀다. 캄캄한 밤이어서 우리 둘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서로의 몸에 부어주며 시원한 밤 시간을 보냈다. 아휴, 시원하다. 너무 좋다야. 옷을 벗은 채도 아니고 옷을 입은 채 물을 껴 얹으며 선생님은 너무 시원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보조개 들어간 하얀 얼굴의 선생님이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신났다.
다음날 동네 소문이 돌았다. 망측하게 여선생이 우물가에 나와서 목욕을 했데. 여선생이 체신머리도 없이 어쩌자고. 아줌마들의 수군거림이 날개를 달아 퍼졌다. 덕분에 선생님과의 우물가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여름 내내 선생님은 골방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그런 동네가 지겨웠다. 하나의 사실에 백가지의 억측을 만들어 내는 동네,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일들이 벌어지는 동네가 싫었다.
얼마 뒤 우물은 자연적으로 입을 닫았다. 집안으로 수도가 들어섰다. 공동의 것이 각자의 몫으로 자리 잡으며 의도치 않게 감춰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우물가에서 공개되었던 반찬과 남편의 험담과 해야 할 모내기들이 담안으로 숨어들었다. 아이들도 더 이상 우물가 사각 테두리를 뛰지 않았다.
동네는 잠잠해졌고 우물은 더 이상 우물이 아니다.
고유어로 <우물>은 사라질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달라지고 쓰는 언어가 다르면 사라지는 보통의 언어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그런 것이 아닐까
나보다 먼저 세상에 온 것들은 대개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정상적인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정상적인 일이다.
고향인 남해를 미친 듯이 떠났다. 발목이라도 잡고 늘어진 것 같아 허둥지둥 떠났고 떠날 곳이 없는 늙은 노모들이 우물가에 하염없이 앉아 있다. 그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는 노인들, 정지되어 있지만 흐르고 있는 시간을 정지된 채 보내는 사람들.
스쳐 지나던 돌 창고를 예술가들이 손을 대어 핫플로 재탄생시켰다. 고무신 신고 뛰어다니다 돌 창고 앞에서 공기놀이했던 장소가 공방과 카페로 탈바꿈되었다.
도시 사람들은 남해의 바람과 바다와 냄새를 좋아한다. 덜 세련된 순수의 빛깔과 느린 것들의 시간이 그들에게 쉼의 기적을 주었는지 모른다. 방법과 돈을 가진 그들은 내 추억의 공간을 주무르고 있다. 덕분에 내 기억 속에 방치했던 장소와 공간들을 다시 의미하게 된다. 과연 그런 것들은 괜찮은 일 일까?
흡사 뭐랄까. 나와 결혼했던 형편 없는 여자를 버렸는데 버린 여자가 성공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느낌, 그냥 그대로 그것들이 보이지 않고 어딘가 배가 사르르 아픈, 질투가 고향 남해를 바라보는 맨살의 감정이다.
한 가지 위안은 그들에게 그것은 현재이지만 내게 그것은 모든 것이었다는 사실, 사랑할 뿐이다. 쇠락하는 인생들이 모여 있더라도 그것이 내 전부였기에 연민할 뿐이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처음에 좋아하지 않다가 작가의 사사로운 것들을 알고 난 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차가 김천역에 서면 나도 모르게 뉴욕 제과점이 있는지 눈을 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