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하는 정신

달빛

by 양아치우먼




전에 다녔던 사무실 과장이 유별났다. 회식이라 함은 보통 고깃집을 예약해 적당히 잔을 돌리고 건배사를 하면 술을 마시는 척 흉내만 내면 될 일이었으나, 이 과장은 종이로 꽃만든기를 한다거나 비누공예 땨위를 섭외해 왔다. 그것도 재료비는 각자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남자 직원들은 뭉텅이로 빠졌고 과장을 비롯한 여직원 대부분이 마주 앉아 이런 건 생전 처음 만들어 본다고, 하기는 싫었으나 막상 해보니 또 그럭저럭 재미는 있는. 여직원들 끼리 설핏 웃기만 했다.

몸집과 손이 큰 과장은 술 마시고 노는 것보다 이런 게 백배는 낫다고 잘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좀 좋냐고 우렁차게 말했다.



낮은 수확물을 익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비는 그것에 물을 뿌리려고 만들어졌고, 저녁은 잠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은 잠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때 남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홀가분하게 술을 마시며 과장의 험담을 했다. 저녁시간에 잡혀 비누를 만들고 있는 우리를 동정하는 척하며 평범하지 않는 친목을 시도하는 과장의 눈치 없음을 안주거리 삼아 쫙쫙 뜯어먹었다. 그럼에도 다음날 과장이 직접 만든 비누를 하나씩 나눠주면 역시 과장님 손이 금손이라며 헤헤거리는 아부를 마음껏 했다.


남자들은 여자 과장이라서.

여자들은 눈치 없는 과장이라서.

썩 내켜하지 않았다. 설레발이 심한 편이었다.



여자란 그에게는, 어떤 시인이 말한 바와 같이 열두 번이나 더럽혀진 어린애였던 것이다. 여자는 최초의 남자를 유혹하고 또 저주의 일을 영원히 계속하는 유혹자이며, 나약하고 위험하고 신비스럽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였다. 그들의 타락한 육체보다도 더욱 그가 증오하는 것은 그들의 상냥한 영혼이었다.



봄날이었고 한 달에 한번 있는 회식이 폐교를 개조한 **공동체에서 개최된다고 공지되었다. 시골이었다. 학생수가 적어 폐교된 초등학교를 누군가 인수해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어렵다는데 도와줘야지."

취지는 좋았지만 조건은 최악이었다. 술부터 시작해 고기와 안주 등을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 했다. 사무실과 거리도 멀었다. 그 동네가 고향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사원들 하나씩 역할을 맡았고 나는 파전을 부쳤다. **공동체가 준비한 손두부 외에는 모두가 셀프였다.



숯불을 피우고 40명이 먹을 고기를 굽느라 여기저기서 연기가 쭉쭉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접시에 손두부를 담고 또 누군가는 겉절이를 했다. 우리가 온다니 동네 유지인듯한 분들이 슬그머니 주저앉는 바람에 회식은 동네잔치로 변했다. 가까이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대접을 해야 한다고 젊은 친구들은 음식을 인근 집으로 갖다 날랐다. 과장은 흡사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처럼 여기저기를 챙겼다.



당연히 나는 전을 부치느라 고기는 제대로 먹지 못했고 맥주 한 잔이 전부였다. 직원들이 지나가다 한입씩 넣어주는 두부와 고기쌈 몇이 전부였다. 어느 귀퉁이에서 불만이 스쳤다. 이게 무슨 회식이야. 동네잔치에 몸 대주는 거지. 꼭 저 과장은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생색내는 곳에 우리를 이용하더라. 그런 말은 집게만 들고서 제스처만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온다. 노동에 몰두한 사람은 그런 곁가지 생각을 할 새가 없을 텐데, 역시 그 언니였다.



아이가 어린 여직원들은 하나둘 폐교를 빠져나갔고

파전의 이용량이 떨어지자 나도 슬그머니 옷을 챙겨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약간의 두려움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런!!! 달이 가출 나왔나? 내 코앞에 말갛게 동그란 얼굴로 시침미를 떼고 있었다. 애무하는 듯한 이 달빛에 잠긴, 청명한 밤의 부드럽고도 나른한 이 매혹적인 아름다움 속에 잠긴 온 벌판을 바라보았다.



저런 달은 처음 봤다.

세상과 나와 그렇게 가까운 달은 처음이었다.

배웅을 나온건가, 아쉬운 건가.



왜 신은 이것을 만들었을까? 밤이 잠을 위해, 무의식 상태를 위해, 휴식을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의 망각을 위해 예비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밤은 낮보다 더 매혹적이고 새벽이나 저녁보다 더 감미롭게 만들어졌을까?



양손을 조금 위로 뻗었다. 내가 달을 든 모양이었다. 달려가 헤딩을 했다. 달이 나를 튕겼다. 달에게 발차기를 했다.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달에게 뽀뽀를 했다. 달이 내 얼굴을 꼭 껴안았다. 보드랍고 따습고 은은했다. 누런빛이 도는 검은 솜 뭉탱이들이 동그란 원안에 엉겨서 한쪽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듯했다. 내 머리 위에 꼭 붙어서.



뒤돌아보니 술 먹는 남자들의 등이 아슴푸레 멍울졌다. 건물 밖에 전등하나가 없는데 사람들은 달빛에 취했는지 뭉그수레 했다. 순하고 순해 보였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그 시인처럼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 어스름은 세상에 빛을 발하는가? 어째서 마음은 이렇게 떨리고 영혼은 이렇게 감동되며, 육신은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저녁 시간을 빼앗긴 회식이, 전을 부치던 내 손목이아깝거나 아프지 않았다. 심장 안으로 파도쳐 오던 그 달빛 때문에 목마를 탄 아이처럼 울렁거렸다. 양손을 뻗고 달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돌았다. 달빛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서툰 사랑은 그런 달빛 아래 고백하기를. 설익은 용서도 그런 달빛 아래 구하기를. 완전한 오해도 그런 달빛 아래서 풀어가기를. 그런 달빛 아래.....



'신은 인간들의 사랑을 이상적으로 가리기 위해 이런 밤을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300여편이 넘는 모파상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에 관한 서술을 읽노라면 작가는 틀림없는 플레이보이였을 거라고. 여성들에게서 모파상은 삶의 구원과 신의 섭리를 찾았던게 아닐까. 종종 그것이 완벽해지려면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야 하므로, 모파상의 단편은 여성들의 시선을 저격하는 것이다.



[단편소설]

달빛

모파상 지음/이정림 옮김


"이봐, 언니. 우리 여자들은 흔히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사랑하곤 하지.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저 달빛이었던 거야."

<모파상의 소설중>



* 제목과 민트색 부분은 단편소설에서 빌려온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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