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
벚꽃이 왕성한 토요일이었다. 구복 수제비를 먹으러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오른쪽에 농협 마트를 끼고 좌회전을 했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여자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내 차를 막듯이. 속도를 줄였고 차문을 열었다. 저기까지만 좀 태워주세요. 차 안에 있던 시엄니와 딸이 그냥 가자고 작게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를 태웠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보다 그녀가 가야 할 동네는 더 멀었다. 버스를 놓쳤다고 약간 어눌하게 그녀가 말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시엄니는 대놓고 툴툴거렸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히치하이킹, 그녀는 운전사가 여자라는 사실에 마음껏 히치 하이킹을 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날 내가 입은 옷은 개나리보다 더 노란 잠바였다. 남자들이 노란 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히치 하이킹을 하면서 그녀도 마음을 졸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르는 사람을 차에 태우는 우리도 무섭지만 모르는 사람의 차에 타는 그녀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들고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일은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가져다준 것이고, 그런 행운도 가져다준다.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은 언젠가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 지나치게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친하게 지냈던 선배, 우리가 형이라 불렀던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둘이 나란히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 미숙으로 커브길에서 속력을 줄이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같은 서클이었던 우리는 일주일 동안 전라도와 충청도로 여행을 다녔다. 7~8명이었던 것 같다. 가다가 자주 서는 봉고차를 누군가 빌려왔고 숙소나 행선지를 따로 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는 대로. 밤마다 모여서 세상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훌라를 쳤다. 훌라를 몰랐던 나는 수도 없이 인디언 밥을 당하며 훌라를 배웠다. 이틀째가 되어 훌라를 완전히 마스터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포카를 배웠다. 포카는 심리게임과 같아서 노름 판의 예민함을 읽는 것 까지 배워야 했다. 상대방의 패를 읽어야 했기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밤마다 바다를 옆에 두고 포카를 쳤다. K형은 잔머리를 잘 굴리는 스타일이라 얍삽하게, S형은 순진해서 매번 꼴찌를 했고 초급인 나에게도 패를 읽혔다. 그러다 지치면 우리는 어딘가에 앉아서 쓸데없는 아무런 말들을 하며 밤을 보냈다.
여자들은 또 여자들끼리 밤새도록 수다를 떨다가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곯아떨어졌고 남자들은 다음날 행선지를 정하느라 다투기도 했다. 대학교 선후배인 우리는 그때 누구보다 가깝고 누구보다 허물없었다. 내가 방귀를 뀌면 어디선가 내 머리통을 갈겼다. 창문 안 열고 버티면 내가 소주 한 병 사준다. 그러고 정어리떼처럼 몰려다닌 사람들이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머리가 어지럽고 핑 돌았다. 주저앉고 말았다. 공기가 붕 떠다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텔레비전에서 끔찍한 혹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넋을 잃은 사람들이 흔히 중얼거리곤 하는 상투적인 대사가 자기 입에서 흘러나온 것을 믿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안 돼"
하루를 굶었든가.
장례식장 앞에 있는 식당으로 선배 언니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기름이 둥둥 뜬 벌건 육개장을 보는 순간, 죽은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육개장을 보고만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이 무거웠다. 둘 다 육개장을 처음 본 사람처럼 멀거니 오랫동안 바라만 봤다. 빨간 앞치마를 한 주인아주머니가 그런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다 식은 육개장을 데워서 다시 우리 앞에 내주었다. 따끈한 보리차가 함께 왔다.
"죽은 사람 잘 보내 주는 것도 좋은 덕이제. 잘 먹고 잘 보내주라고 이런 걸 먹는 거여. 숨펑숨펑 먹어. 지나가면 또 잊히는 겨."
당신들 뭘 좀 먹는 게 좋을 것 같소. 제과점 주인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만든 핫롤을 좀 들어 보지 않겠소? 일단은 든든히 먹어둬야 견뎌낼 수가 있는 법이오. 뭔가를 먹는다는 건 아주 사소하지만 이런 때는 그보다 더 도움이 되는 일도 없을 거요.
레이먼드 커버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은 도움이 되는 일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이란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놓쳐버린 사소하고 따뜻한 것들을 그립게 만드는 이야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비슷한 스펙트럼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또 다른 시작을 시작하게 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가난하고 투박하지만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위로가 숨겨져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고, 꺼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위로는 거창할 필요는 없고 화려할 이유도 없고 실은 사소하지 않다. 장례식장 앞 식당 아주머니의 그 담담한 한마디가 그랬다. 막 오븐에서 꺼낸 빵을 대접하는 제과장의 행동이 그랬다.
"뭔가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이오."
먹는 행위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의미와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끝내 수긍해야 하는 고통은 타자가 완벽하게 헤아릴 수없지만, 같이 시간을 묵묵히 견뎌 주는 것. 그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지금을 사는 것이다.
먹을 수 없는 꽃을 가꾸는 일보다는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빵 냄새보다 더 좋은 꽃향기는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
레이먼드 커버 지음/ 안종설 옮김
얼마큼 도움이 되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대신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문득 빵의 온기가 손에 남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중에서)
*민트색과 제목은 단편소설속 빌려온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