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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May 18. 2021

아파트 분양의 세계로 부터

본연의 집을 찾아서



순진한 좌절은 서툴어서 아프다

집에서 십 분을 내려가면 철길을 포장한 도로, 임항선 산책길이 나온다. 양팔을 벌리면 충분히 길이를 잴 정도로 좁은 철길이지만 딱히 산책할 공간이 없는 터라 사람들은 양방향으로 미어터진다. 얼마 전,이 도로 끝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림막이 세워진 순간부터 괴물 같은  철골구조물이 제 살을 입는 과정까지, 남의 집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무덤덤한 일이었다. 그런 일, 어릴 때 본 아이가  어쩌다 마주쳤는데 너무 대견하게 쑥 자라 있는 일처럼 그 아파트는 어느새 훌쩍 자란 건물이 되어 우리 앞에 불빛을 내비쳤다.



봄이 오기 시작한 어느 날,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는 친구를 따라 강남이 아니라 부동산을 갔다. 산책을 할 때마다 지나쳤던 그 아파트는 피 8천 이상을 주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쳤군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굵은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살구색 원피스를 입은 부동산 아줌마는 이런 순진한 언니들이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창원이 전매 지역으로 묶였잖아요. 그니까 인근 지역인 마산으로 다 몰리는 거죠.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총알만 든든하면 어디든 투자하셔야죠."


"총....... 알.....?"

친구와 나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보다 친구의 대응력이 빨랐다. 총알이야 은행 가면 천지삐까리고, 집이 투자해볼 만해야죠. 부린이의 늪을 유연하게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부동산의 신세계로 발을 들이다

집에 오자마자 부동산 카페에 회원가입을 했다. 최근 신축한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찬사와 피(p)에 관한 전설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투자하기 좋은 아파트에 대한 족보들이 넘쳐났다. 이런, 부동산 세계를 무시하고 그동안 부자가 되겠다고 발버둥을 치다니.

그보다 당장 내년에 이사 하기로 마음을 먹고도 이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넋을 놓고 있다니.... 내가 한심하고 미련해 보였다. 이슬 먹고 사는 공주냐, 우아하게 이 세계를 외면하고 살다니, 참 대책이 없구나. 늦은 만큼 나를 닦달했다.



한 달 뒤 그 단지 옆으로 다시 아파트 하나가 분양을 했다. 재개발 조합원 인가 과정이 연기되어 늦게 공사가 시작되었다. 위치도 안성맞춤이다. 새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나에게도 그런 애틋한 욕망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들끊어 올랐다. 부린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공부했다. 분양조건, 분양방식, 부동산 카페를 밤마다 탐색했다.



특공은 특별공급을 말하는 건데, 생애최초 특공, 신혼부부 특공, 장애인 특공, 노부모 부양 특공....!! 노부모 부양? 잉... 우리잖아. 아뿔싸, 무주택이어야 한다. 고전적인 아파트가 하나 있다. 그 안에 지금 살고 있는데 그럼 특공이 안된다. 마음이 쓰렸다. 가점을 매기니 42점이다. 욕심이 생기자 모든 것이 다 내게 유리하게만 작동되었다. 될 거야, 그럼.



모델하우스(모하)를 갔다. 안방 침실 옆에 세탁기가 있는 게 거슬렸지만 새 아파트라니 괜찮았다. 팬트리 공간이 넉넉했고 베란다 확정공사로 34평인데도 넓어 보였다. 내가 살 집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황홀했다. 싱크대 문과 전시용으로 나온 화장대까지도 열어보며 사랑을 할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 인생에도 환한 빛이 스며들것 같았다.



분양이 시작되자마자 선착순이라도 되는 것처럼 청약 홈에 분양신청을 넣었다. 물론 그전에 청약 홈에 들어가 모의 청약도 해보았다. 사람들의 흐름에 같이 끼어든 것 같은 안도감이 나를 만족시켰다.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인터넷 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별로 어렵지도 않구만....



분양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을 지루하게 참아내었다. 부동산 카페에는 내가 신청한 분양아파트에 대한 여러 가지의 추측성 정보들이 날아다녔다. 예상 피는 얼마일까요? 경쟁률은? 가점제 점수는? 모든 것들이 내가 궁금한 사항이라 분양신청자들 중심으로 하는 톡방에도 참여해 익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도 84평 신청했는데... 실거주라 당첨되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실거주라고 같이 이웃이 되면 좋겠다고 의미 없는 답장들로 지루함을 견뎠다.



분양 결과는 그날 밤 12시에 공개된다고 부동산 카페가 알려주었다. 11시만 되면 넉다운이 되는 내가 컴퓨터를 켜 놓고 주먹을 쥐며 기다렸다. 결과는, 매몰차게 탈락이었다. 몇 번을 아이디로 재접속 해도 당첨되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쟁률 18대 1, 가점 점수 58점.

불타는 경쟁률에 가점점수도 예상치를 훌쩍 넘었다.

과열의 배경에는 창원의 전매제한이 있었다. 뭐야, 하나 막으면 옆으로 줄줄 세잖아. 정책을 만든 정부에 대한 원망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부동산 카페에는 당첨자와 탈락자의 환호와 아쉬움이 뒤범벅이 되었다. 허탈함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부동산 카페에 피와 관련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떨어진걸 부동산들은 어떻게 아는지 결과 발표를 하기 전에 그렇게 많이 쏟아져 오던 분양 문자는 한통도 오지 않았다.



분양권 매도와 매수의 줄다리기는 부동산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오고 갔다. 피 1억까지가 거래되었고 다운계약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투기 목적으로 아내와 남편이 같이 넣었는데 두 사람 다 당첨되었다는 해피한 소식도 올라와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군요, 라는 축하 멘트가 올라 와 있었다.


"띠..... 벌, 니네가 전생에 이순신 부부냐?"

일하면서도 자꾸 욕이 나왔다. 이제는 자꾸 문자가 온다. 피 3천에 84평, 피 8천에 43평, 마지막 기회! 부동산 카페에는 분양가에 피 얹어주고도 3년 뒤에는 무조건 본전 뽑고도 남는다며 매수를 독려하는 글이 빼곡하다.  허탈함이 정신을 차리자 이상한  다짐이 치솟는다.


"피 주고는 절대 안 산다. 부동산 투기에 발꼬락 하나라도 절대 안 얹는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나는 이생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사람처럼 당당해진다. 나까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절실함, 사명감이 올라왔다. 아무리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도,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사회적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건 물거품이다. 부동산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학습효과는 어쩌면 모기지론 같은 극단의 경험뒤에나 정신을 차릴수도 있다. 나만이라도 흔들리지 말자고 마음을 꽁꽁 싸맨다. 씁쓸함이 오래도록 가슴에 고였다.

산책을 갈 때마다 가림막으로 가려진 채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높은 타워크레인의 꺾어진 목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저기 어디쯤은 내 자리였을까. 공사현장을 스칠 때마다 <내 삶의 본연을 집에서 찾다>라는 문구가 안쓰러워 눈을 돌린다.



그래, 본연을 찾자.

본래의 집을 찾자.

내 가족이 얼굴을 맞대는 곳, 내 가족의 냄새가 범벅이 되는 그곳이 내 본연의 집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늙은 개를 닮은 우리 집을 닦고 쓴다. 화장실에 끼인 곰팡이를 쓱쓱 문대며 곰팡이 제로 성능은 언제 이렇게 좋아졌냐고 환호하고, 늦은 밤 건조기를 돌려도 한 번도 싫은 내색않는 이웃을 만나기가 싶냐고 만족해하며 포근한 잠을 청한다.


자고 나면 들끓던 욕망이 한소끔 식어 있을 것이다.

오래된 벽돌은 바람에게도 관대해 내 욕망을 식히러 오는 시간을 열어 둘 것이다. 낡은 공간이 주는 헐렁함도 위안이 된다. 오랜만에 양철 대문 집을 찾아가는 꿈을 꿀지도 몰랐다.





어릴적은 양철 대문이었다. 맨 얼굴을 한 허연 양철 대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밑부분은 찌그러져 곤궁함을 티냈다. 비바람이 치는 날 양철대문은 어찌나 방정스런 소리를 내던지 돌로 여러번 드잡이를 해야했다. 농사가 많고 자식 여섯이 쥐방울처럼 드나들때 양철대문은 닫힘보다 열림이 많았다.

- 수필 <대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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