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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un 07. 2021

클래식에 풍덩 빠진

오십이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게 되는 일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맞추는 것을 우리는 적응이라고 부른다. 코로나로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사람은 남편, 착한 늑대이다. 그는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삶의 재미가 없다고 궁시렁 대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였으며 가정 경제 부양을 위해 소비를 지양하는 초초 미니멀 라이프 맨이었다.(단순하게는 스크루지)



그가 매일 산책을 다니면서 000에 퐁당이 아니라 아예 폭삭 젖어버렸다. 내가 질투 날 정도로,

클래식이었다.

화장실에서도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 때문에 모든 외출이 30분씩 연기되는 마땅치 못한 현상이 벌어져도 나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클래식 때문에 행복해."

갱상도 50대 후반의 남자 입에서 이 정도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정말 아주 매우, 퐁당퐁당 빠졌다는 소리다. 색맹 때문인지 좋은 경치에 감동하지 않던 그가 어느 날 우연히 팟캐스트의 클래식 방송을 듣다가, 단번에 버즈를 구매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내질렀던 잔소리, 이어폰은 청각에 해롭다는 대 명제를, 이왕 사용해야 한다면 좋은 이어폰을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딜을 아이들에게 제시하며 거금 백만 원으로 세 아이에게 에어팟을 선물하는 용기를 지르게 한 것은 결혼해 25년째 살고 있는 내가 아니라 <클래식>이었다.



성능 좋은 이어폰으로 자유롭게 클래식을 듣고 싶다는 욕망이 불러온 획기적인 변화 때문에, 아들은 지금까지 살면서(19살이다) 아빠에게 받아 본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말했고, 에어팟을 자신의 신으로 대접하는 둘째 딸과 안 사줘도 되는데 라고 시크하게 의사를 표현했지만 앙증맞게 온 에어팟을 닦고 챙기는 큰딸까지, 모든 것은 <클래식> 덕분이었다.


착한 늑대는 나름 양심은 있는 소비자인 셈, 내 것 까지 사준다는 걸 매우 강한 액션으로 막았다. 나는 전혀 불편함 없이 저가의 이어폰을 사용 중이므로.



완벽한 시스템을 장착한 착한 늑대는 운동 중에도 산책 중에도 클래식을 듣는다. 듣는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아는 걸 말하고 싶은 건 갱상도 남자 본능일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인간에게는 자의식에 기반한 한 개의 옵션 욕망이 있다고, 자신이 아는 걸 옆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 그걸 미처 몰랐던 내가 여보, 당신 차르다시 들어 봤어?라고 버턴을 누르고 말았다.



이게.... 집시음악인데, 헝가리랑 프랑스랑 약간 느낌이 달라. 한마디로 흘러들어온 음악이 그 나라의 정서와 결합하면서 약간의 뉘앙스가 달라진 건데...

보헤미안적인 음악부터 찌고이네르 바이젠부터, 프랑스와 헝가리의 지리적 위치까지 30여분을...

(오갱끼데쓰카, 니시파누마, 시바스키루나....)

참고로 착한 늑대의 톤은 다른 사람보다 0.5초 스피드가 느리다. 우왕~ 대박! 하던 내 눈빛이 점차 어떻게 그늘졌는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로지 나는 화장실의 볼일이 급했다고만 말하겠다.




일요일 둘이서 등산을 갔다. 클래식 들을 거제. 내가 미처 고개를 끄덕거릴 사이도 없이 오른쪽 내 귓구멍에 대고 확 바람을 불었다. 이 뭐야? 밖에서? 섹시한 상상을 했던 내게 버즈를 청결히 하려면 귀 청소를 해야 한다고, 그러고 버즈를 내 귀에 얼마나 세게 쑤셔 넣는지. 이건 떨어뜨리며 안돼. 허술한 내게 몇 번 당부를 하는지 모르겠다. 슈베르트의 가곡 < 물 위에서 부르는 노래>, 오케스트라 악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란히 들으며 산을 올랐다.


나와 발란스를 맞추며 등산하느라 부러 속도를 낮추었다. 이런 케미는 거의 신혼 때도 없던 닭살 돋는 수준이다. 클래식이 좋으니 내게도 감동을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흥흥하고 같이 따라주었다. 거들기도 하고 들어도 주고, 치켜세워도 주고. 부자가 아닌 평범한 50대 머리 빠지는 남자가 이것 때문에 행복하다잖아.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를 위해 내가 선물을 준비했다. 클래식 음악클럽인 뮤직 파라디소의 귀띔을 통해 6월 17일 창원시립예술단을 무료 공연을 예매했다. 예매한 사진을 보내주니 아주 흡족해한다. 사전에 곡에 대해 들어야 하다면 사하르트 슈투라우스 <죽음과 변용>을, 로드리고의 아랑헤즈 협주곡 제3장 까지를 들려주며 설명해준다.





https://brunch.co.kr/@gwangdo

클래식으로 인연이 된 뮤파지기님의 브런치




클래식에 빠진 착한 늑대는,

"청각이 더 예민한가 봐. 시각보다 청각이 주는 것에 더 마음이 움직여. 어떤 음악은 눈물도 흘렸다니까." 그렇게 좋은가 싶어 요즘은 나도 관심을 더 가지게 된다. 등산할 때의 그런 케미도 나쁘지 않고 경상도 남자의 이런 제스처가 싫지는 않다. 착한 늑대는 길을 갈 때도 내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면 남사스럽다고 팔을 빼는 사람인데 이어폰 나눠 끼고 등산하는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 아닌가.



음악은 모르고 들어도 좋지만, 알고 들으면 또 다른 감동이 있다고. 아직 더 들어야 할게 많아. 어느새 이 남자는 클래식을 찬미하는 꽉 찬 남자로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새삼 더 멋있어 보이는데....!!



코로나가 빼앗아 간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무엇인가 남긴 것도 있다. 그 이득을 알뜰히 챙긴 일인, 착한 늑대에게 클래식은 요즘, 행복이다. 그 행복이 오래오래 하길... 밥 먹을 때는 음악보다 대화에 집중하기를 바라며, 클래식의 또 다른 명제는 지금 행복이다.








클래식의 명품 클라쓰,

뮤직파라디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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