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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08. 2020

너의 외로움이 탐난다

오롯이 혼자가 된 친구에게


1. 예상했지만 어쩔수 없이 허한 일

친구가 얼마 전 같이 살던 아들을 기숙사로 떠나보내고 혼자 머물게 되었다. 남편과는 10여 년 전에 이혼했으니 2인에서 1인 가구로, 온전히 일상이 혼자로 되돌아 간 것이다.

"부럽다, 부러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괜찮아? 괜찮겠어?"

그렇게 묻는 이유는, 그녀와 나는 50대 초반이고 완경기의 한가운데 있으며 워낙 기숙사로 떠난 아들이 살가운 면이 많았던 탓이다. 하루에 2~3번은 꼭 전화해서 엄마의 움직임을 묻고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그 녀석이 소화해 아들 같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씩씩한 척하는 그녀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짐작한다. 그녀의 허한 마음을. 캄캄한 거실의 불을 켤 때, 곰돌이 같던 녀석의 운동화를 볼 때, 혹은 초라한 밥상을 혼자 대할 때,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 줄 사람이 없을 때. 그녀는 어쩌면 많이 허할 것이다. 온 우주가 텅 빈 것처럼.... 아들이 엄마 걱정을 해 전화가 매일 온다. 둘 다 덩치는 산만한 사람들이 똑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익숙하고 적응할 때까지 친구 노릇을 해야 할 텐데.....



2. 과도하게 꽉 찬 나를 보시라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 허함이 부럽다. 내게는 그런 허한 공간과 시간이 너무 없다. 7인 가족,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연어 떼처럼 많은 하루의 일과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짐작되는 음식 냄새부터, 세 녀석들의 대사가 스파크를 튀기며 쏟아진다.

"오늘 오렌지 마트 아저씨가 어린 늑대가 무슨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지 물어봤어."

"근데 엘리스가 천 원짜리를 사고 카드 결제를 했는데... 양심 없지 않아?  그 정도는 현금으로 결재해야 는 거 아니야"

또 엘리스가 반박을 한다.

"요즘은 천원도 다 카드 결제해! 그게 뭐 어때서?"

왕왕 이런 식이다.

사소한 것에 대한 입장 차이가 7인의 가족 안에 발생하면 서로의 의견에 대해 말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다가 어떨 때는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 투쟁하고 마는 식의 흐름들.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은데 자꾸 묻고, 화장실까지 졸졸 따라와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하니 나의 허함은 어디서 찾을 것인지. 매일 가는 산책 운동을 빠지려고 하면,"배를 보세요 지금 운동을 안 갈 처진가?"

관습형의 착한 늑대는 나에게 쌍칼의 레이저 광선을 쏘아 댄다. 제발 나는 허하고 싶다. 그나마 요즘은 브런치 글 쓴다는 핑계를 대고 슬쩍 빠지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의 틈이 너무 없다.


어제는 착한 늑대의 양복을 세탁소에서 찾아왔는데 넥타이 핀이 없어졌다고 온 집안을 뒤지는 행사를 치렀고, 30년 된 의자가 삐거덕 거리자 착한 늑대는 그걸 고쳐보겠다고 전동드릴을 가져와 왱~왱~거렸다. 나는 그걸 보고 그만 좀 버리지, 또 고치냐고, 가구회사도 좀 먹고살자라고 잔소리를 했고...

엘리스는 그게 바로 환경보호다. 자꾸 물건을 버리면 지구는 누가 보호하냐고  아빠 편을 들었고, 봉여사는  이 의자는 우리가 처음 집을 사서 이사를 했을 때 식탁의자로 산 거라고 의자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왱~~~ 왱~~~ 거리며 착한 늑대는 결국 의자를 고쳐 놓았다. 그 옆에서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나는 태권도하며 노래 부르는 나태주 보다 더 어려운 묘기를 부리고 있는 거다.

...... 끙, 읽었던 곳이 어디더라.

"10년은 더 쓰겠다."

착한 늑대가 드릴을 챙겨 넣으며 흡족하게 말했다.

엘리스는 아빠의 실력에 왕 멋져를 연발하고 나는 그래 봐야 또 고장 난 다고 한소리 하고 봉여사는 또 의자를 처음 살 때의 가격에 대해 그때 이만 원 줬나?라고 말하고, 이런 식이다. 두 놈이 독서실을 갔으니 망정이지 안 갔으면 한 놈은 분명히 의자에 앉아 끄덕거려 봤을 테고 또 그 위에 한 놈이 엉겨 붙어 같이 끄덕거리다 의자가 또 고장 나면 착한 늑대가, 제대로 안 고쳐줬네 라고 다시 드릴을 박을 테고...


3.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나는 너의 풍만한 허함이 부럽다. 퇴근하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공간과 시간이 부럽다. 춤을 추든 방귀를 뀌든 맘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부럽다. 고로 승자는 너다. 그러니 한라산 같은 외로움이라도 즐기시길. 개미 콧구멍만도 못한 외로움도 못 가진 내가 있으니. 허한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고 채우는 일, 혹은 허함을 친구삶아 혼자 오롯이 버티는 힘을 너는 나보다 일찍 가지게 되었으니 너는 나보다 진짜 어른이 일찍 된 셈이다.


외로움을 잘 다룰줄 아는 사람이 진짜 어른 같고 아직 나는 그 대열에 발도 못담군거 같아 초조하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이 흘린다는데,  가끔 그렇게 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눈물은 슬퍼야지만 흘리는 건 아니니까. 때론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할 때도 있으니. 그것마저도 온전히 너의 것으로 보듬어 안기를...


나는 언제 이 7인의 소동에서 탈출해 우아한 내 허함의 시간을 가질 것인지. 가끔 그녀의 허함을 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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