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

호텔 창문

by 양아치우먼


거실에 대자리를 폈다. 몇 년 만이다. 나가지는 못하고 집안에서 견뎌야 하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기로 했다. 성큼, 바람이 분다. 집어 든 스토리가 바람결에 잠시 펄렁인다. 추운 나라에서 왜 대문호들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지 실감하는 지금의 여름, 나는 일주일 동안 이 책으로 더위와 맞섰지만 고루하게 책장을 넘겼다. 눅진한 바람이 내 등 뒤를 맴돌았다.



운오는 결코 형이 죽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간혹 형은 두려워하고 미워했지만, 그럴 이유가 충분했지만 죽기를 바라진 않았다. 자기를 죽일 줄 알았던 형이 자신을 살린 것을 알고 운오는 구역질을 했다.

-호텔창문 중 일부분




동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름이면 저수지로 갔다. 경사면이 얕은 아래 저수지는 주로 여자애들이 놀고 깊이가 깊은 저수지는 남자애들이 놀았다. 그날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두 살 위인 오빠를 따라

깊은 저수지에서 헤엄을 쳤다.


동네에서 가장 패거리가 많았던 오빠네 또래들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퍼런 저수지를 아무렇지 않게 건너고 친구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으며 놀았다.

푸우...푹.

강제로 물속에 박힌 사람들은 입안에 들어간 물을 뱉어 내느라 허연 침까지도 뱉어냈다. 오빠만큼은 아니어도 물에서는 나도 자신이 있었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저 무리들을 괜히 따라왔다며 뒤로 고개를 젖힌 배영을 하다가 다리를 저었을 때 갑자기 차가운 섬뜩함이 몰려왔다.



쥐가 났는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끝없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 멀리서 오빠가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아.. 푸.... 어푸, 나는 필사적으로 물에 뜨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럴수록 뭔가 잘못되었는지 아래로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이 나를 잡기 위해 내 몸 주위를 어지럽게 다녀갔다. 더 이상 기운이 없었다.


세상은 적막했다. 수만개의 물방울들이 내 머리 위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물을 껴안은 노란색 티셔츠가 크게 배를 불렸다.


.

무언가 우악스러운 손길이 나를 확 잡아끌었다.

끄억....켁!

멈추었던 숨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오빠네 무리들이 달려들어 나를 끄집어 올렸고 오빠는 내 뺨을 세차게 때렸다. 겁에 질린 여러개의 눈동자들이 나를 내려다봤다. 더 겁이 난 나는 그 눈동자들을 향해 팔을 내둘렀다. 누군가가 말했다.

"살았다."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살린 건 수영을 겁나게 잘하는 오빠도 아니었고 오빠보다 수영을 잘한다고 폼나게 저수지를 건넜던 오빠 친구도 아니었다. 수영을 못해 저수지에 오면 얕은 곳에 허리만 담근 채 앉아 발장난을 치던

종달이 오빠였다. 오빠의 무리들이 나를 건져내려고 물가로 밀어낸 덕택도 있었지만 종달이 오빠가 땅에 발을 디딘 채 나를 끄집어 올린 것이었다.


"집에 가서는 암말도 하지 마라."

오빠는 나를 향해 다짐했다. 종달이 오빠는 나보다 더 놀란 얼굴이 돼 먼저 신을 신고 달아나버렸다. 그 뒤로 종달이 오빠가 수영을 배웠는지는 모른다. 그때 고마웠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네 덕에 살았지만 그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은 조금만 고마워도 그 말을 놓치기 싫어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산다



어쩔 수 없는 일과 어쩔 수 있는 일들이 번갈아 가며 삶을 우롱하는 일이 있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일은 어제 놔둔 우산을 깜박 잊고 다음날 가져가는데 마침 소나기가 오는 것처럼 우연찮게 닥쳐오지만, 가끔 그런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확률은 말하고 있다.



"이쑤시개 때문에 죽는 사람이 번개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많아요."





[ 단편소설]

호텔 창문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은행나무



수록된 단편들을 모두 꾸역꾸역 읽었다. 매미가 울지 않았고 그 글들 중에서 오타를 발견했다. 딕션을 옮겨 적는 중에 끈적하게 올라붙는 종이가 귀찮아 글자를 크게 말았다. 짠 것이 고소해지는 갈치젓 같은 소설을 꼽으라면 최은미의 <보내는 이>를 들겠다.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했을 때 가졌던 착각들을 가지런히 차려낸 작품, 그 정갈한 맛으로 책을 덮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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