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면 사람 노릇 못한다

넌 쉽게 말했지만

by 양아치우먼


잠에서 깨자마자 휴대폰으로 뉴스를 터치한다. 천안 아파트 주차장 화재로 차량 666대가 피해를 입었다. 불에 탄 차들 중에서 오늘 고향집을 방문하기로 한 사람이 있을 테다. 어머니, 갑자기 일이 생겨 못 가겠어요,라고 급히 전화하는 사람. 사고가 났다고 말하면 어머니가 걱정할게 뻔했으므로 일이 생겼다고 말했을 테고 자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어머니는 속으로는 그놈의 일은 맨날 많냐고 한탄을 하면서도 신경 쓸 것 없다며 혼자 맹물에 김치를 말아먹으며 전화를 끊을 것이다.


그 식탁 옆에는 새벽, 밭에 가 따온 것들, 깻잎이나 빨간 고추나 물 오이와 가지 같은 것들이 이슬을 채 말리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을 테지.


아니, 어쩌면 아들이 좋아했던 전어를 사 와 비늘을 치다가 그 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 전어를 잘근잘근 쓸어 넣고 양파 마늘 초고추장에 버무려 엄마가 아니면 절대 낼 수 없는 매콤하고 신맛이 혀를 톡 쏘는 전어무침을 하려다 반나절 동안 대야에 방치된 전어를 늦게 발견하고는 대충 소금을 뿌려 검은 기름때가 앉은 프라이팬에 구워 먹어 버릴지도 몰랐다.


차를 수리하고 보상을 알아보느라 차를 가진 남자의 등은 땀에 젖을 것이고 밤이 일찍이 내려앉은 어머니의 젖가슴 속으로는 사랑의 콜센터에서 나오는 트롯만이 웅성거리다 혼자 불빛을 깜박거릴 것이다.

늘 바쁘고 난데없는 일들은 생긴다고 아침에 뜻밖의 상상을 한다.


바쁘면 사람 노릇 못한다.


거꾸로 사람 노릇을 못하니 바쁠 수밖에. 기계처럼 돌아가는데 익숙해지면 고민이란 것, 생각하는 것도 잊어 먹게 된다. 우연한 일들이 뺑소니치고 가버리면 끝에 손해를 보는 것은 생색내지 않는 기다림이거나 무심히 지나치는 관계다. 모든 것은 바쁘다는 것으로 무마된다. 바쁜 건 시간도 마찬가지다.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

이주란 작가/

2019 올해의 문제소설/ 푸른 사상



<넌 쉽게 말했지만>을 다룬 이유는 평범한 일상의 힘을 담쟁이처럼 뻗어 올린 묵묵한 시선 때문이다.

부박한 호기심에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탄탄한 기본기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자몽차를 담그고 고향에 돌아온 친구를 만나고 무례한 대화에도 묵묵히 곁을 지키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무관한 이웃들에게 가벼운 관심을 주고 시간이 란 것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일상의 힘을 바라보게 한다.



조금 지쳐있다면 이 소설을 따라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세탁조 클리너를 사기로 했다. 무엇이든 가벼워지는 건 좋으니까. 먼지는 세탁조에만 있지 않고 시간에도 감정에도 있다는 걸 알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한다. 일상의 위대한 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배운 단어]

부박하다: 부박한 호기심

천박하고 경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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