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
여든다섯인 엄마는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고 있다. 5개월째다. 코로나로 요양원에 계시면 면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급적 병원에 계시도록 조치했다. 코로 넣은 삽입관으로 영양제를 넣고 소변줄을 달고 누구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다. 치매가 온 터라 어느 때는 자식들을 알아보고 어느 때는 낯선 눈빛으로 가만히 쳐다보다 스르륵 잠드는 일도 많았다.
"할머니! 눈 떠봐! 딸이 왔잖아!"
어머니를 병간호하는 간병인들은 엄마의 가슴께를 두드리며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우리가 그토록 불러도 뜨지 않던 눈을 간병인의 부름에는 반응했다.
"할머니가 보통 때는 말도 잘하고... 우리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잘하시면서 꼭 자식들만 오면 이렇게 주무신다니까."
간병인은 자동으로 올라가는 침대를 올려주며 어설프게 웃었다.
"정말요? 저희가 없을 땐 말도 잘하세요?"
"그럼요. 기저귀도 갈아 달라고 하세요!"
"오늘은 그냥 상태가 안 좋으신 거네요?"
"네에, 아마 어제 잠을 못 주무시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병실 문 앞을 나서는 우리의 말은 엄마 잘 부탁드려요, 기저귀 좀 자주 갈아주시고요,였다. 커피나 음료수를 사드리다 그런 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많이 줄 것 같아 그래 돈이 최고지 싶어 봉투 담은 용돈을 드렸다. 괜찮은데 하면서도 날름 받는 손길이 못마땅했지만 부모의 병시중을 맡긴 죄인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간병인의 그런 손길은 예사로 받아넘겼다.
기저귀를 찬 사타구니 쪽은 말도 못 합니다. 그래도 이쪽 어머니가 가장 심한 것은 말을 못 하니 호소를 못해 그렇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병원엘 다녀왔다.
볼은 더 홀쭉해졌다. 손을 잡고 엄마라고 부르자 엄마가 가늘게 눈을 떴다. 옴팩 패인 볼 사이로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딸을 알아보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내 엄마는 기운이 달리는지 눈을 감았다.
"할머니, 눈 떠봐!"
간병인이 엄마 가슴을 쿵쿵 쳤다.
"할머니, 밥 주는 사람 말 잘 들으라고 했지!"
나도 모르게 간병인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하세요, 힘드시다잖아요."
당황한 간병인이 나를 보고 웃었다. 엄마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는 게 좋지 않냐고.
"어제까지 말씀도 잘하시고 하루 종일 눈 떠서 여기저기 보셨는데 오늘 또 잠만 주무시니까."
"어떤 말을 하시는데요?"
"그냥.... 뭐...."
간병인은 다른 환자가 움직이는 걸 보고는 급히 달려가버렸다. 엄마가 하지 않는 간병인의 모든 말은 거짓말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엄마 허리에는 지금까지 없던 욕창이 꽃을 피웠고 자신의 육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죽음과도 같은 잠을 잘 뿐이었다. 어떤 수순인지 모른다.
N은 예전의 가증스러운 간병인을 떠올렸다. 잡급직들은 작급직답게 잡스러워야 한다.
봉투를 주지 않았고 커피나 음료수도 사다 주지 않았다.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가치 없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이 슬플 뿐이었다. 어떤 배신감이 불꽃처럼 터져 나와 오랫동안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진하게 간병인들의 말만 믿고 헤벌레 웃었던 멍청한 나를 위한 자책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치사하고 비겁한 일인지 이건 도대체 삶인지 죽음인지. 그리고 엄마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아직은,
그녀의 이야기들은 음습하다. <너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와 약자를 이용하는 강자와 약자를 우롱하는 약자가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이야기다. 제목 [너머]가 왜 너머가 되었는지 한참을 곱씹어야 했다. 그건 생각의 너머가 되기도 했고 죽음의 너머, 혹은 경계의 너머이기도 했다.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너머, 삶과 죽음의 너머 우리가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 인간다움, 사람다움에 있다. 부당한 일 앞에 나 스스로도 부당하게 무너져 내리지 않고 끝내 자신을 붙잡는 일, 자신을 버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시궁창이 속으로 자신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존엄을 버리면 결국 삶은 이런 것이라고 그녀가 말한다.
우리가 어떤 심원한 고통에 붙들렸다 해도, 어떤 말도 안 되는 악폐에 몸부림치는 중이라 해도, 그조차 살아 있음의 의미로서 여전히 아름다워야 할 생의 몫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 백지은(문학평론가)
*제목과 민트색 부분은 소설에서
빌려온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