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시의 흰 달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리가 날씬하게 긴 은주가 4학년땐가 우리 마을로 불쑥왔다. 은주는 서울말씨를 썼다. 돌맹이처럼 투박하고 시커먼 언어를 우리가 툭툭 던졌다면 은주는 백사장에 깔린 모래처럼 부드러운 언어를 바람에 날렸다. 우리가 직선이었다면 은주는 공기를 요리조리 가르는 나선형의 목소리였다.
아부지라고 부르던 사람을 은주는 아빠라고 불렀다.
아빠. 아빠. 은주처럼 불러보고 싶어 이불을 쓰고 연습하다가 나도 모르게 귓볼이 따가워져 그만두었다. 은주가 아빠하고 달려가 안긴 사람은 자주 오지 않았지만 가끔은 도시 냄새를 풍기는 어여쁜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분홍색 머리띠, 꽃모양의 머리핀, 빨간 색 운동화.
은주 할머니는 은주가 온 뒤로 생기가 돌았다. 방에 오래도록 불이 켜져 있었고 시장도 자주 다니셨다.
시큰둥하던 동네 조무래기들이 은주 할머니에게 은주의 행방을 묻기 시작했고 우리는 은주 할머니 방에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인형 옷입히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 은주랑 잘 놀아라.
은주 할머니가 나에게 사탕을 주며 당부했기에 아침마다 은주네 집을 들러 학교를 같이갔다.
6학년이 되던 해 은주는 아빠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 올 때처럼 불쑥 떠났다. 제대로 인사할 새도 없이 은주는 갑자기 사라지고 없었다. 감쪽같아서 나는 학교가는 길에 은주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축담을 오래도록 보았다. 뒤축을 구겨 신었던 누런 은주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뒤죽박죽이던 축담에는 하얀 고무신만이 가지런히 있었다. 쓸쓸함이 집을 포박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은주할머니 집은 다시 캄캄해졌다. 빛나던 보석하나가 빠진 듯 생기를 잃었다. 말끔하던 마루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괜히 말을 걸었다.
-은주한테서 연락은 옵니까?
-전화는 매일 오제.
그 뒤로 내가 마을을 떠날 때까지 은주는 한 번도 할머니 집을 찾지 않았다. 그런 시간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살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와 한 번도 스쳐간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를 지워버린 것처럼.
은주를 말끔히 보살피던 할머니는 머지않아 돌아가셨다.
- 주야! 주야!
은주 할머니가 은주를 부르던 나지막하고 달짝지근한 목소리를 은주는 기억하고 있을까.
은주는 자주 시그르르 웃는 아이였다.
오후 다섯시의 흰 달 / 은주의 영화 중에서
제목이 왜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이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오후 다섯 시는 흰달이 잠시 보였다가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짧은 시간이다. 주인공 윤이 고향집에서 만난 아이를 입양하려고 마음먹으며 보낸 들뜬 시간들을 일컫는 게 아니었을까. 은주와 함께 살았던 짧은 그 시간이 할머니에게는 오후 다섯시에 보인 흰달이 아니었나. 희망이 잠시 솟았을 시간.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시간.
하도 김밥을 많이 먹어 단무지 냄새가 밴 중년 남자의 삶과 보드라운 손아귀, 말그름 한 눈초리를 담은 아이가 대비되는 서술에 휘말려 가면 둘이 아웅다웅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가, 생명력이 가진 힘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애처롭게 알게 된다. 혼자 살지 말고 우리 같이 살아요,라고 손 내밀고 싶어 진다.
공선옥, 그녀의 이야기는 멀리서 출발하지 않는다.
친구, 삼촌, 언니, 잃어버린 어느 날의 기억까지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순박하지만 가볍지 않다.
더구나 도회적이지 않아서 호박 된장국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읽는다. 느끼함을 가시게 하는 개운함이 있이 있다. 그러나 삶의 근원은 슬픔인것처럼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을 휘휘 뒤적인다. 부러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게 그녀가 가진 재주인것 같다.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소설'로 밖에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 작가의 말 중에서(공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