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아.... 하고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by 양아치우먼



고추와 맹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그녀는 얼마 전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더 입양했다.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다섯 살 고추의 라임을 따라 새끼 고양이는 맹추로 이름을 지었다. 우동 면발이 젓가락을 빠져나간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맹추 이야길 하느라 번진 웃음이 그녀 얼굴에서 가시지 않는다.

"있잖아요, 내가 간식 넣어 두는 곳 근처를 가면 맹추가 쓰윽 따라 나와 내 발끝을 건드린다니까요."

"고추는?"

"그럼 고추가 엉기적 일어나 맹추를 건드려요."

우동 면발이 불고 있다.

"남편은?"

"몰라요, 그 인간은..."

그때서야 그녀는 공중에 뜬 젓가락을 움직여 우동 몇 젓가락이라도 건져 입으로 가져간다. 고추나 맹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녀와 고추나 맹추보다는 나도 알고 있는 그녀의 남편 근황이 더 궁금하지만 늘 이야기는 그놈의 인간이라는 대목에서 마무리된다.



"근데 고양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아?"

어느 날, 된장찌개를 먹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녀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어떻게 알지?"

"부르는 톤이나 어감으로 알죠. 고양이가 얼마나 똑똑한데요?"

고양이를 무시하는 무식한 여자라는 눈초리로 그녀가 나를 째려봤다.

"그럼 고추야~ 하고 부르면 고추가 오니?"

"하하하... 언니가 그렇게 물으니 더 웃긴다."



신나게 웃은 뒤 그녀가 말했다. 새끼 고양이는 지금도 고추야 하고 불러도 꼬리를 말며 일어나고 맹추야 하고 불러도 일어난다고. 그런데 고추는 정확하게 자기 이름을 알아 들어서 고추야 하고 부를 때만 일어난다고.

"고추가 똑똑하네."

"맹추도 곧 그렇게 될 거예요."

"그래도 고와 맹을 알아듣기가 고양이가 얼마나 어렵겠니? 이름을 좀 다르게 짓지. 뭐..., 테스나 안나... 아예 다른 이름으로 말이야."

"우리 애들인데 이름이 같아야죠."

"부모가 다르잖아."

"그래도 우리 아기들이잖아요."



졌다.

옷 하나 안 사 입으면서도 그놈들 간식까지 챙기고 매달 고양이 몫으로 적금까지 넣는 걸 보면 그녀는 전생에 고양이었거나.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성애 과잉증이 아닌지. 고추나 맹추가 복이 많은 녀석들이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걷고 그녀가 움직이면 슬쩍 몸을 움직여 따라다닐 때는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들러붙었다.

(이정임 -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중에서)



어느 날 그녀는 조퇴를 했다.

"병원 갈려고요."

"아파?"

"네, 고추가 밥도 잘 안 먹고 간식도 안 먹어서요."

심각한 표정의 그녀를 보니 네가 아니어서 다행이네 라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다음날 그녀의 표정이 밝았다. 의사 말로 맹추 때문에 고추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고. 고양이는 영역 다툼에 강한 동물이라 일시적인 현상이니 괜찮다고 했다. 묻지 않은 말까지 친절히, 고추를 더 안아주었다고.



"고양이도 그런 게 있나?"

"아휴, 언니는 맨날 고양이도 고양이도...그러는데 살아 있는 건 다 똑같아요. 고양이만 있겠어요? 개도 있어요!"

으... 엉. 무안해져 그냥 하던 일을 묵묵히 했다. 하긴 아이들도 동생 생기면 안 하던 어리광도 하고 샘을 내는데, 사람도 동물이 아닌가.

"미안해. 안 키워봤으니 그러지."

"그럼 키워봐요."

"아.... 아니, 고양이보다 몇 배 어려운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들다."

사무실 밑 문방구에 분양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몇 마리 남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녀가 틈새를 치고 들어왔다.



그녀는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과정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언제고 헤어질 수 있는 것은 함부로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고양이라니.

(이정임-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어림없다. 책임을 덜어 내는 일을 하고 싶지 얹는 일은 하고 싶지않다. 생명에겐 뭐든 책임이 따른다는 걸 절절이 아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를 책임지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 나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고양이라니.



그럼에도 가끔 고추와 맹추 안부가 궁금하긴 하다. 에너자이저한 맹추는 이제 제 똥을 모래 위에 누고 잘 덮는지, 고추에게 대들지는 않는지.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뻔한 사이에 고추와 맹추 이야기가 없었다면 우리 대화가 얼마나 건조했을지. 그녀가 사람에게 질리는 일을 하며 고추와 맹추에게서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고추야~

맹추야~

고양이를 부르는 그녀 목소리는 아마 가장 달콤하고 따뜻할 것 같다. 나도 그냥 고추야, 맹추야 하고 입언저리에서 낮게 불러본다.






[단편소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이정임/ 해성

2012년 계간 <우리 시대 좋은 소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김춘수의 시구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글에 BGM을 입힌 듯 달짝지근한 라임이 안성맞춤 등장한다. 특히 그녀의 이름(미영)을 잃어버린 고양이 이름으로 착각한 남자가 미영아--하고 낮게 부른 뒤 어두운 골목을 응시하는 할 때 따뜻함이 어둠속로 번진다.

최근에 나를 그렇게 불러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혹은 나는 누군가를 다정하게 부른 적은 있었을까.



부른다는 것에 응답하는 일은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홀로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다만 속물적인 부름과 다른 포근한 질감의 부름만이 <너와 나> 혹은 우리로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작가는 고양이를 낮고 따뜻하게 부르며 우리를 돌아서게 만든다. 누구 이름이든 다정하게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나는 다정하게 엄마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질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제목과 민트색 부분은 소설에서 빌려 온 문장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