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단지 비누 거품일 뿐

by 양아치우먼



대학교 때의 일이었다.

데모를 하다가 수배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시위를 하다가 사진이 찍히거나 학생회 간부를 하면 그냥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거물급은 아니었지만 정보과 형사가 불러 준 수배자 명단에는 내가 있었다.



추석이었다.

수배 명단에 이름이 올랐음에도 추석이라고 집에 왔다. 갓방에서 배를 깔고 텔레비전을 보며 희희낙락 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숙모님과 제사 음식을 하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 안으로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났고 곧 마당으로 건장한 아저씨들이 들어섰다. 경찰이었다.

"여기가, *숙이 집 맞지예?"

온몸에 기름 냄새를 묻힌 엄마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는 것을 금새 알아챘다.



" 숙이는 지금 집에 없는데..."

"그래에?"

"일단.. 들어 오이소. 숙이는 집에 없어도 대목 앞에 손님이 왔는데 그냥 보내믄 되나?"

엄마는 맨발로 나가서 그들을 안 방으로 끌어 들었다. 언니 오빠가 나를 이불로 뒤집어 씌웠다. 숨 죽인 나는 경찰을 내쳐도 모자랄 판에 안방으로 경찰을 끌어들이는 엄마가 이해되지도 않고 쿵쿵 뛰는 두려움에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



"동서. 문어도 좀 썰고...."

거하게 술상이 차려졌다. 제사상에 올리려고 장만해둔 문어와 과일과 식혜, 새우, 오징어 튀김에 엄마가 담가 둔 오미자 술과 산딸기 술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아그들이 데모한다꼬 까불어사도 뭐를 알고 하것나? 젊은 혈기에 그란다 생각하고 살살 구슬려야지. 문디 가스나가, 추석 때 집에도 못 오고 내가 속이 상해 죽겠고만."


걸쭉한 목소리가 이불 너머로 들려왔다.

"아짐매, 속상해하지 마이소. 우리도 위에서 시킨 게 그라지. 요새 대학생들 중에 데모 안 하는 아가 오데 있습니까."


되레 엄마를 위로하는 경찰들이었다.

매실주까지 나가고 1시간 30분이 지나자 경찰들은 미안하다, 잘 먹었다, 추석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올 때 처럼 부릉 부릉 큰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갔다. 갔어."

나를 지키느라 갓방에 모여 있던 언니 오빠는 경찰들이 가고 나자 가슴을 쓸어내렸고 엄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상을 치웠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간을 졸였던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술을 마시다가 금방이라도 그들이 내가 숨은 갓방으로 쳐들어 올까 가슴을 졸였으나 경찰들은 집을 살피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엄마는 그러고 몸살을 앓았다.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딸을 무사히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 몸을 탈 날게 한 것이었다.


추석이 끝나 갈 때 언니가 말했다.

"근데, 니 신발도 있었다."

"내 껀지 몰랐겠지."

엄마가 나를 한심하게 보며 말했다.

"진짜로 그 사람들이 니를 잡을 생각이었시모 그래 요란하게 오토바이 타고 왔겠나?"

맞다. 마을회관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살금살금 왔겠지. 닭을 낚아채 가는 오소리처럼.....



그들은 명절에 부모 앞에서 딸을 잡아갈 정도로 비정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사람 된 도리를 아는 경찰들이었다. 학생운동의 젊은 혈기를 눈감아 준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1년 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사면되었다. 시위에 참가한 것외에 특별한 잘못이 없기도 했다. 30년이 지난 일이다.



그 사건이 글을 몰랐던 엄마를, 아무것도 모르는 촌부라 여겼던 엄마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혜는 지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어디서든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조금씩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

에르난도 테예스(Hernando Te'llez)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사내들만의 미학) 중에서




이 소설을 찾고 있었다.

단편의 정수로 여겨지는 첫대목이 여러 군데서 인용되었는데 나는 메모를 하지 않는 바람에 누구의 어떤 소설인지 알지 못해 여러 해를 찾고 있었다.



뮤파 클래식 수업에서 선생님이 이 소설을 이야기하는 순간, 원하는 것이 예상치 않는 곳에서 오는구나 싶은 뜻밖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 소설의 전문을 컴퓨터로 따라 옮겼다. 6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임에도 단편이 품어야 할 알맹이를 찬란하게 보여준 작품이다.이문열 작가가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챕터에서 에르난도 테예스의 <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을 소개하고 있다.



이문열 작가의 해석에 반해 나는 다른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이것은 심약한 이발사와 강건한 악당의 이야기가 아니라 죄의 심판에 관해 <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이라고,



제기랄!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자가 되는 희생을 치르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무슨 소득이 있는가? 아무 소득도 없다. 사람들은 자꾸 바뀌고, 처음 온 사람들이 두 번째로 온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은 또 다음 사람들을 죽이고.....

-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이라고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 후다닥 사라지는 비누 거품일 뿐인 것은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 혹은 죽음과 같이 사라지는 삶을 뜻한다고. 누구나 비누 거품처럼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적군인 이발사에게 면도를 맡긴 악당 토레스의 마지막 말이(단편의 반전은 매혹적이다)섬뜩 하기는 했지만 두고 두고 생각해도 이것은 사내들만의 미학이라기보다는 한낱 비누 거품에 지나지 않는 존재를 향해 허황된 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충고가 아니었을까.



그럼 이것이 다 무엇일까?

살인자냐? 영웅이냐?

....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일을 해내는 중이다.....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비누 거품, 그것이면 그만이다.

- 단지 비누 거품일 뿐 중에서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기록하기 위한 에피소드에서 내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던 그때를 떠 올린 건 어떤 이유일까.



비누 거품처럼 그 시간은 사라졌지만 조금 더 어른이 조금 더 어린 나를 눈감아 주었듯이 나도 그렇게 눈감아 주는 사람이 되고프기 때문이다. 샅샅이 캐는 사람 말고 적당히 알고도 넘어가는 그런 사람..., 그 곁에서 무엇인가 자라리라 믿는다.

나처럼. 우리 모두처럼.





* 단편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필사를 권하고 싶은 플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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