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모두 10억이라는 데
오른 집 값, 오른 땅 값.
고향집 남해를 가니 땅 값이 난리가 났다.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해저터널 공사가 예비타당성 검사를 통과했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친구 누나가 6억에 내놓았던 땅이 여태 팔리지 않다가 얼마 전 10억에 즉시 팔렸다고 한다.
남해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니.
바다 뷰가 좋은 곳에는 풀빌라 호텔이 들어섰다
하룻밤에 최저가 55만 원, 내 친구가 살았던 동네였다. 중학교 등교를 위해 30분을 걸어 다녀야 했던 가난한 동네가 돈을 펌핑하는 곳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우리도 바다가 근처였다면 떼부자가 되었을 건데."
집으로 돌아오면 차 안에서 몇 번을 되뇌었다.
안타깝게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가 아니었다. 빈집이 수두룩한 적막한 동네였다.
10억을 만원처럼 입에 올리는,
부산 해운대 친척을 둔 친구들이 모두 현타를 맞았다. 10억 이상이 올랐다고 한다. 그런 말을 전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중국 갑부들이 해운대 아파트 값을 부채질했다는 소문도 도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해운대 사는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은 소문을 풍기니 해운대 아파트 가격이 엄청 오른 건 사실인 것 같다. 해운대 사는 언니의 시누도 무리해서 아파트를 샀는데 최소 7억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10억이란 단위를 만원인 것 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30년을 일해도 현금 1억이 없는데, 10억이라니. 정말 살 맛 안 나네."
친구 말에 나도 그렇다고 했다. 살 맛은 안 나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을 그만둘 수는 없고, 주변의 10억 타령에 기운이 쫙 빠진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내 자리가 가난할 빈의 자리로 옮겨진 기분이 든다.
"우리가 가난하잖아. 그러면 우리 애들도 가난할 수밖에 없어. 출발이 다른데... 애들이 어떻게 10억 모아 집을 사니?"
친구의 말이 트리거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한 동안 제쳐 두었던 부동산 카페를 들어갔다. 딱 마음에 드는 게시글, 집 값은 빠집니다, 라는 글이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126개의 댓글을 읽었다.
- 너 현금 육천도 없지.
- 구축 살지.
- 또 헛소리 한다....
온갖 조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는 말 자체가 비정상적인 언어, 공격의 대상이었다.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그냥 카페 창을 닫아 버렸다.
내가 비정상적인가. 집 값은 떨어지면 안 되는 건가. 한편으로는 재개발 소문이 도는 허름한 집 하나라도 사지 못한 게 후회되기도 했다.
승자는 결국 신축 아파트를 빚내 산 그들, 10억을 거머 쥔 그들이었다. 내가 한 푼도 쓰지않고 22년 을 모아야지만 가능한 금액, 배가 너무 아프다.
10억의 희망을 버리지 못해 뒤늦게 주린이가 되어봐도 현재 파란색 14%, 머니는 정말 뭐니다. 10억 있음 파이어족처럼 살고 싶다는 남편의 꿈은 그냥 꿈으로 묻어야 할까. 쉰 살에 뱃살처럼 붙어버린 돈에 대한 욕망이 나를 불면으로 몬다.
후배가 툭 건넨 말이 또 사람을 후려친다.
"언니, 요즘 10억은 부자에도 안 들어가요."
절망이 우수수 낙엽처럼 쌓인다.
에라 잇! 책이나 읽자. 물욕에 헤엄치는 짐승이 되지 말고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되자.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다가 이분은 얼마나 돈을 벌었을까 궁금해진다. 10억은 넘게 벌었겠지? 노벨문학상 후보라든데 상금이 얼마나 될까? 나도 그럼 작가가 되어 노벨문학상을 타면 한 방이네... 그럼 작가가 먼저 되어야지... 브런치를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한참 소설을 쓰다가, 푸욱....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