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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1. 2021

우리에게도 약음기가 필요해

비발디 사계의 가을에서



약음기
악기의  진동이나 전파를 제어하여 음질에 변화를 주는 기구. 바이올린족에는 빗 모양의 기구를 덧대고 관악기는 관의 나팔에 술병 모양을 넣고, 피아노는 왼쪽 페달에 설치해 해머의 타현거리를 줄인다

(네이버 지식 검색에서)





비발디 사계의 가을을 분위기있게 들었다.

사계의 모티브가 된 가을 소네트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농부들이 누리는 수확의 기쁨과 잔치,

제2악장은 잔치가 끝난 뒤의 느긋한 잠자리,

제3악장은 동이 트면 사냥꾼들이 엽총과 피리를 불며 개를 거느린 채 사냥을 떠나 짐승을 뒤쫓는다.



2악장, 마을 사람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잠잔다라는 부분에서 바이올린이 약음기 사용해 연주한다. 최대한 소리를 줄여 사람들이 느긋하게 자는 장면을 비발디는 고요하고 나긋나긋하게 묘사했다.

반복되는 선율 속에서 술주정을 부리듯 교묘하게 음을 꼬아가다 한결 낮아진 음역대바이올린 소리는 느긋한 잠을 충분히 연상케 했다.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악기가 제가  소리를 줄여 다른 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약음기가 악기마다 있는  보면 고의 파장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가 주는 음질도 연주에 필요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약음기, 전파를 제어하고 음질에 변화를 준다.

갸름한 얼굴에 유난히 잘 생글거렸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같은 과였다. 후배가 하는 일은 과잉진료를 환수해내는 일이라 민원인의 반발이 자주 들끓었다. 특히 대상자에는 노령층이 많아 고함을 지르거나 억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화가 난 할머니들은 삿대질을 하며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아무리 어르신들이 고함을 질러도 후배는 첫마디가 어머니, 속상하지요,였다.

톤이 부드럽고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며 할머니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화가 난 어르신들이 마음껏 고함을 지를 때 적당히 추임새를 넣거나 맞아예, 맞아예 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30분이 넘게 지속되어도 후배는 고함을 지르거나 부드러운 어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자신도 이렇게 돼 너무 속상하다는 말을 간간히 넣었다.

" 좋은 방법이 있는지 제가  열심히 찾아는 보겠습니다."



어르신들은 한바탕 자신의 말을 쏟아내고 마지막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손녀와 헤어지듯 살갑게 돌아섰다.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의 마음에 약음기를 달았던 건 아니었을까. 평소 그녀 목소리는 크고 발랄했다. 사무실의 빌런처럼.



사람에, 마음에, 사회에 약음기를 달면.

사람의 목소리에 약음기를 달면 톤이 낮아지고 까칠하고 뾰족한 부분이 둥실해지고 어조는 부드러워지겠지. 소리가 작으면 사람들이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겠지.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 나도 사계의 가을에서 모기소리처럼 앵앵거리는 음률을 들으려고 더 바짝 신경을 썼다.



마음에 약음기를 달면 불안이나 분노 울분의 힘겨운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금방 타 올랐다 한껏 식어버리는 파도타기도 잔잔해지겠지. 마음의 파고를 낮추면 조금 더 타인을 더 이해할 수 있겠지. 그녀처럼.



사회에 약음기를 갖다 붙이면 다름에 대한 토론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장애나 이민자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작아지고 나누는 일들이 많아지겠지. 이기주의에 약음기를 달면 똘레랑스로 변하겠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처럼 우리는 생각의 다름이 발전의 가능성이란 걸 믿겠지.



그리고 지금 일상에 약음기를 달고 있다고,

자유가 제한된 현재에 긍정과 부정의 접촉면이 공존하고 지금까지의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변주가 아닌가. .



목소리가 큰 나는 약음기를 가끔은 달자.

질주보다 산책을, 흥분보다 상냥함을,

조급함보다 느긋함을 위해 때때로 약음기를 달고 파랑 파랑의 시간을 견뎌보자.



비발디 사계의 가을이 나를 그렇게 콕콕 찌른다.



관악기에 넣는 약음기(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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