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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Jul 21. 2022

플렉스와 허영의 차이

돈 자랑의 기준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와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의 의미가 동일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발랄하면서도 여기저기를 합성한 말들이 너무 많이 생기니 세대가 다른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그중 플렉스(Flex)와 허영이라는 단어가 최근 내 관심을 끌고 있다.



플렉스

돈 자랑, 재력이나 귀중품 등을 과시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


허영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


이 두 개의 단어는 공통적으로 돈지랄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궁금해졌다. 어느 경우가 플렉스고 어느 때가 허영일까? 젊은 층은 플렉스란 말을 쓰고 꼰대인 우리는 허영이란 말을 쓸까.




플렉스와 허영이란 단어 사이에는 신조어와 올드한 어감 말고도 묘한 뉘앙스가 존재하는 것 같다.

짐작해 보건대, 원래 있는 놈이 돈 자랑하면 플렉스고 없는 놈이 돈 자랑질하면 허영이라는 느낌이다.

이재용이가 호캉스를 가면 플렉스고 내가 호캉스를 가면 허영이 되는 이치다. 여기까지 이견은 없다. 이재용은 재벌이니 그것까지는 용서가 되고 나는 아직 호캉스를 못 가봤으니 허영은 안 부린 셈이다.



그런데  이런 뻔한 비교 말고 조금 엄격한 잣대를 나는 세우고 싶다.

자기 노동으로 번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입하는 물건이나 여행, 혹은 자랑질은 모두 허영이라는 잣대. 열심히 일한 그대여 떠나라, 라는 말처럼 죽자살자 일했던 사람이 자신의 힐링을 위해 유럽을 여행한다면 그건 플렉스다. 하지만 부모님 재력에 힘입어 혹은 누군가의 호의로 호캉스를 간다면 그건 허영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물론 이 기준에는 성인이라는 레벨이 붙는다.



대신 허영이라는 규정 앞에 있는 수식어,  <자신의 분수>라는 말은 과감히 삭제하고 싶다. 우리에게 맞는 분수라는 건 어쩐지 요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명품을 살만한 분수가 따로 정해져 있나? 최저임금을 받아도 내가 명품을 사고 싶다면 한 푼 두 푼 저축해 살 수 있지 않은가? 그게 분수에 맞지 않다고 허영이라고 규정하는 건 너무 클리셔적인 발상이다.


호캉스도 내가 열심히 돈 모아 신나게 다녀와 힐링했다면 그것도 플렉스가 아닐지. 애초에 명품 살 신분, 호캉스 갈 신분 따위는 정해지지 않았으니... 허영이란 말 앞에 붙는 <신분, 분수>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플렉스와 허영의 차이는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가 돈 자랑하면 플렉스고, 남의 돈(어디서 생긴 공돈 포함)으로 펑펑 쓰고 다니면 그건 허영이 다라는 게 내 결론이다.



한 달치 월급을 호캉스로 날릴만한 플렉스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건 자신이 감내해야 할 몫이고 그런 돈 자랑은 용기까지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님 재력으로 돈 자랑하는 건 조금 꼴불견이다.



플렉스와 허영의 경계 짓기는 아들의 애플 워치 타령 때문에 시작되었다.

대학생인 아들은 애플 워치가 무척이나 갖고 싶은 모양이다. 방학인 지금 쿠팡 알바를 뛰고 있다. 2학기 생활비 2백을 벌고 난 뒤, 7일 쿠팡을 더 뛰면 애플 워치를 살 수 있다고. 어머니 그래도 되죠,라고 물었다. 니 노동으로 니 플렉스 질은(니돈니산) 괜찮다고 말했다. 더운 여름에 코피 흘리며 번 돈으로 자기가 갖고 싶다는 걸 사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쿠팡 알바는 일주일 내내 가능하지 않고 하루 일당이 7만 원이며 아직 100만 원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갖고 싶은 전자기기는 자꾸 생겨난다.

처음에는 신형 아이폰이었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애플 탭을 샀고 이어폰을 샀다. 이어폰도 20만 원 씩이나 하더라. 지금은 애플 워치고 그다음은 대체 뭐가 나와서 아들 마음을 뺐을지 모르겠다. 아이 셋에게 탭과 이어폰까지 마련해주니 경비가 만만치 않다. 또 남편과 내 것까지. 제대로 플렉스 해서 애플과 삼성에 야무지게 갖다 바치고 있는 셈이다.


"애플에서 이거 사라고 협박 하디?"

"에이.. 요즘 애들은 다 갖고 싶어 하죠"

"그니까 시계도 안 차는 놈이 그게 왜 갖고 싶냐고?"

"있어 보이잖아요. 바로바로 톡 확인도 가능하고."

아들은 자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엄마가 답답한 얼굴이지만 나는 신제품에 맨날 코를 박고 끌려다니는

절제 없는 욕구가 걱정이다. 그래도 더 이상 잔소리하기 싫어 플렉스든 허영이든 상관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실컷 사고 싶었던 건 책이고 지금도 책이다.

대학생일 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째로 사고 싶었고 최근에는 미생 시리즈를 갖고 싶었고, 세계 문학전집을 사고 싶었다. 지금도 신간 코너에 있는 에세이와 소설, 자기 계발서를 가슴에 한 아름 사고 싶다. 쟁여 두고 읽고 싶은 마음, 그걸 표현하면 갈구한다라고 해둘까. 내보이고 싶어 하는 돈 자랑이 아니라 나에게 치솟는 어떤 갈증을 해결하는 것.



플렉스도 지조가 있어야 하는 시대다. 자신만의 가치관, 어떤 신념 혹은 자신이 지향하는 내적 욕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뒷받침되어야지만 멋진 플렉스, 돈 자랑이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기부로 플렉스 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나만 그렇게 보이나.



어쩌면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갖고 싶다는 애플 워치에 대한 변명, 혹은 회피. 굳이 플렉스와 허영으로 비교해 가며 무마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부한다. 자신의 노동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플렉스를 할 수 있고 또 그게 진정한 플렉스라고.



신발 하나 사고 난 뒤, 아들이 비명을 지른다

"아~ 쿠팡 반나절이 날아갔어."

나는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이 놈아, 너 때문에 엄마 인생은 통째로 날아갔다"

허영이든 플렉스든, 돈 자랑이든 돈지랄이든 내 인생은 그것들과는 빗나간 터라 더운 여름 선풍기 앞에서 열을 식힌다. 완경기의 여름은 더 덥고 후덕 지끈하다. 에잇, 에어컨 팡팡 틀면 나도 플렉스 좀 해보자.




허영에는 정도의 차이가 없다

오직 그 허영을 감추는 능력에 차이가 있을 뿐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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