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나의 부고

엔니오 모리꼬네 따라 하기

by 양아치우먼

모티브> 가까운 이의 부고가 아무렇지 않게 카톡으로 날아 들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의 마지막 편지는 부고라는 생각이, 언젠가는 꼭 한 번은 써야 할 편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남긴 자신의 부고를 읽으며 그가 아내르를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 온 종일 나를 지배했다. 울컥 했다.



무무씨가 출근하자마자 메시지가 왔다.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언제가 한번 같이 교육을 받았던 동료의 남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무무씨는 생각했다.

죽음은 핸드백처럼 우리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에 멀리 있지 않는 거라고. 무무씨는 얼마 전에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처럼 직접 자신의 부고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무무씨는 인싸였기 때문에 존재론적인 부고를

작성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저도 이렇게 갈 줄 몰랐네요.

그래도,

저한테 부의금 받으셨던 분들은 회사 사이트에

올라온 제 부고 소식 아래 걸려 있는 계좌번호로

꼭 부의금 넣어주세요.

가끔 본인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부의금 생까시는

분들 계신데....장례식장까지는 안 와도 되니까.

손익계산은 야무지게, 우리 지금까지 그래 왔잖아요


이대리님 에어컨 날개 저 몰래 제쪽으로

돌려놓은 거 알지만 제가 참았어요.

나중에 겨울 히터 틀 때 제가 다시 살짝 돌려놓을라 했는데... 아마 오늘 에어컨 바람 나올 때 저한테 아주 조금 미안해지실 거예요.


호심(호모 심슨)! 입사동기 최 팀장,

내가 없어 승진 서열 한 끗 올라가겠네.

뭐, 짜드라 승진도 욕심 없더라만

밑에 애들 결제 올릴 때 그거.... 쪽 자꾸 고치지 마.

점, 띄우기, 맞춤법, 오탈자....

그런 거 말고, 부비부비 잘하고 회식 때마다

국장님 옆자리 재빨리 앉는 거.. 그런 거 좀 해.

어깨 좀 펴고.


요지(요술 램프 지니)

맨날 내가 요지하고 불러서,

식당에서 이쑤시게 갖다 준 아저씨 있었지.

자기가 너무 일을 잘해서 그래.

엑셀마악 돌리고, ppT막 지르고

동영상까지 쫘르륵~ 근데 다 잘하지 마.

자기 믿고 은근히 우리 안 배운다.

only 자기만, 착한 콤플렉스 NO!


타잔(타인에게 잔정이 없다)

쭈욱~ 그대로 살아라.네 삶의 결정값은 폭망이다.

타 부서 이동할 땐 네 책상은 좀 치우고 가라. 신던 슬래퍼도 좀 버리고...

예의범절은 아프리카에서 된장 쌈싸 먹다가

후루룩 쩝쩝 두고 온 녀석아!

금수저는 뭐 똥 안싸고 금싼디? 아무튼 가는 마당까지 곱게 가고 싶은데, 너.::사람부터 되자. 남의 꺼 새치기 말고 엄빠찬스 쓰지말고 짜식아!


p, s피에쑤~~

간식 사다리 만원 빵 할 때 번호 바꾸기 없기!

가끔 메신저로 저 욕 날아온 거 있었는데 아무런 말 안 했어요

(무무, 좀 나대지 않나?)

(우짜라고?)

엉덩이 한쪽 들고 방귀는 이 과장님, 뒤에

냄새 너무 많이 나니까 조심해 주시고요.

마팀장님 다리 좀 고만 떠세요, 어지럽구먼...


아무튼, 오피스 프렌즈 여러분!

저의 결재라인은 없어집니다.

저의 죽음이 여러분들의 삶에 작은 돌멩이가

되기를! 콕오옥! 가심에 박히는 짱돌이 되기를..

내게는 공이 있다! 즐겨~~~ enjoy~엔조이~~

@책상 위 안시리움에게 물 좀 주세요~



<20대&50대-대학교 선후배 8명>


그대들과 함께여서 늙는지 몰랐어요

함께 20대였고 또 모두 50대여서.

즐겨 입는 청바지처럼,

격 없이 함께 뒹굴었으니 감사하오.

석이, 율이, 임이, 옥이, 또 석이...


천국의 명당자리 내가 찜해 놓을 테니 언제나처럼 늦게, 조금 늦게 웃으며 들 오시길...

아, 같이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고스톱치며 밤새 또 싸우고 싶다.

그럴 때가 제일 행복했네. 시름도 비교도 없이.



<마이 패밀리>


엄마가 죽었다냥, 그래도 슬퍼 마시라양..

아마 출근도 출장도 안 갈 거고 인싸도 아니라서

늘 여기에 머물 거 다량~

엄마가 책 읽으면서 생각나는 틈틈이

메모를 적어 놨다양! 그럼 엄마가 늘 곁에 있는거다양~ 쓰카이, 사랑한다냥~

엄마의 아들딸로 와줘서... 너무 아주 많이 고맙다냥.

엄마에게 마지막 뽀뽀를 해 주라양~~

울지말고 아프지고 씩씩하게 살아라양!

*끝의 양은 엑센트를 끌어 올려라양!


여봉!

나 먼저가요. 그래서 좀 억울하네.

내가 더 나이도 어린데. 괜찮아요. 내가 더 착하게 살아서 먼저 가는거 겠지?

당부하자면, 불안, 강박을 버리고 좀 느슨하게..

잔소리는 화장실에 양동이를 갖다 놓고 거기다 해요.그래야 당신 재혼이 가능할 거야.

1년 뒤에 꼭 재혼해요. 당신이 혼자 있는 거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니.그 정도는 용서할게요.


돈은 애들한테 다 주지 말아요,

캐비넷에 돌멩이 넣는거 잊지말고...

(금뎅인줄 알고 애들이 자주 올거에요.

우리 한쪽이 먼저 가면 좋은 금고사서 그러기로 했잖아유, 잊지말어유)


사랑하고 존중해줘서 고마워요,

행복했지만 다음 생은 더 다리길고 잘생긴 놈으로 만날거니 찾지말아유.

l love you




#나의 부고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ambience를 줄까.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처럼은 말고

가을날 코스모스를 간지럽히는 향내

좋은 바람으로 살다 가자.

푸근하게 또 파아랗게,

평범해 보여도 나만은 찬란하게.


슬픔도 기쁨도 찬란하도록

*박경리 삶이란 시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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