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주변을 관찰하는 놀라운 힘

by 양아치우먼

모티브> 더운 여름날 꽤 오래된 서점을 방문했는데 에어컨도 틀지 않고 손님이 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점이 위치한 곳은 그래도 시내라 꽤나 건물세가 비쌌을텐데... 대체 이 서점은 어떻게 유지가 되는 거지?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그랬다. 아마 그 서점 밑에 뭔가가 있을거야?




경찰직 시험을 준비 중이든 취준생 은결은 경찰직에 특별 채용되었다.

"왜요? 어떻게요?"

은결이 자신의 성공담을 자신 있게 후배들 앞에서 강의했다. 아주 의기양양하게.




그날은 너무 더웠어. 35도까지 올라갔어. 강의 동영상을 보다가 꼭 필요한 교재가 없는 거야. 시험이 임박하지 않았다면 인터넷으로 교재를 주문했겠지만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기간이라 급한 마음에 시내에 있는 청학점(흔히 어느 도시든 있는 가장 오래된 서점 있잖아. 우리 동네도 그런 서점이 있었거든)을 갔어.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거 같은데. 서점은 시내 한가운데 제일 땅값이 높은 곳에 있어. 하지만 외관은 몇십 년 전 그대로 아주 초라했지만 나는 그런 걸 따질 겨룰 도 없이 청학점 안으로 들어갔어.

"20년 형사소송법 책 있나요?"

서점 안에는 내 또래의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서점에 들어서도 어서 오라는 인사말 조차도 하지 않았어. 에어컨을 틀지 않았기 때문에 서점 안은 너무 더웠어. 중요한 건 내 물음에도 여직원은 찾아볼게요,라고 간단하게 말하고는 잠시 컴퓨터를 뒤적이더니 없네요 라고 말했어.

뭐랄까? 이런 책 따위는 팔지 않아도 된다?라는 느낌! 처음에 아주 기분이 나빴지. 그녀가 안타깝다는 혹은 찾는 책이 없어 미안하다는 뉘앙스의 목소리를 냈다면 나는 아마 의심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별 볼일 없고 귀찮다는 투였어.


이상하다 싶었지만 나는 바로 나오지 않고 오랜만에 들린 서점을 구경하기로 했지. 서점 한가운데 있는 가판대를 돌아보며 요즘 어떤 신권이 나왔나, 또 베스트셀러는 어떤 것인지 눈요기를 하고 싶었거든. 읽고 싶었던 장류진의 일의 기쁨이나 슬픔 같은 책이 있으면 구입할까도 생각했지. 시험을 끝내 놓고 볼 요랑이었거든.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책 가판대는 신권보다는 이런 책 따위가 있었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은 트렌트 코리아 2020, 혹은 김훈의 남한산성.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지.

저 아가씨는 돈을 꽁으로 받아 가는구나. 새해가 지나간 게 언젠데 아직도 트렌트 코리아 2020을 가판대에 늘어놓다니. 아님, 서점이 너무 어려워 새로운 신간을 들일 능력이 없는 건가? 이제 곧 청학점이 망하는 건가? 그래도 나는 조금 더 서점을 둘러보기로 했지. 망한다면 조금 아쉬울 것도 같아서. 너무 더워 땀이 등을 타고 내렸지만 한 권의 책이라도 사서 이 서점에 뭔가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여기저기 책을 보며 무심히 발길을 옮기다가 가판대 뒤를 넘어 데스크 옆 아래로 향한 사다리를 보았어. 사다리는 나무 사다리였는데 의외로 키가 컸어. 그냥 보아 넘겼지. 별 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거든. 아가씨는 계속 나에게 무신경해 보였어. 어서 내가 나가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라고 할까?

서점을 되돌아 나오며 나는 저 사다리 밑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엉망인 서점이 30년이 넘게 망하지 않고 땅이 가장 비싼 동네에서 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서점의 수입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 그렇다고 서점 아저씨가 건물주는 아니었거든. 나는 되돌아 나오면서 사다리를 눈여겨보았지.



다시 청학점을 방문한 것은 시험을 다 마친 뒤 친구와 약속을 한 뒤였어. 우리 또래는 항상 그랬어.

"야 청학점 앞으로 와."

그런 이유는 누가 하나 늦더라도 서점 안으로 가 시간을 때우기가 가능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날 친구가 늦게 왔어. 오는 길에 교통사고 난 탓이라고 했고 나는 다시 청학점으로 들어갔어.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가? 계산대 앞에 있던 턱선이 발달한 무표정한 여직원이 보이지 않았어.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가판대를 지나 자기 계발서 쪽을 향하다가 고전소설 쪽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발견하고는 책을 꺼냈지. 그러다 그냥 책을 떨어 뜨린 거야. 툭. 그러나 여직원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어. 책을 줍다가 나는 사다리 아래를 우연히 보게 됐지. 거기서 뭔가의 웅성거림이 있는 거 같아서. 아니야 밖에서 들리는 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는 긴 사다리를 보자 그 밑이 궁금해졌어. 그래서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지.




창고라고 적힌 갈색 문이 약간 비스듬하게 열려 있었어. 발뒤꿈치를 들고 살짝 내려가 그 문을 조금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어. 처음에 이게 뭔가 했어. 분위기가 이상했거든. 7-8명의 남자들이 분주한 손놀림을 움직이고 있는데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많은 저울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어. 남자들은 하얗게 보이는 그 가루들을 저울에 달며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움직이고 있었어.

아, 저게 뭐지?

그런데 한쪽 옆에서 무게를 단 하얀 가루를 포장하는 남자 하나가 그 가루를 손에 묻혀 자신의 혀에 바르고는 심호흡을 했지. 그래! 바로 그거!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그거! 읍!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어.

청학점은 사실 위장이었던 거야!!



나는 재빨리 그리고 조용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어. 아, 맞다. 신고를 어디에 해야 하는 거더라? 생각이 나지 않았지. 그냥 무조건 112를 눌렀어. 그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청학점 뒷문을 지켰어.

그다음은 뭐,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그 장면대로 일망타진. 이 가루들은 여기서 포장돼 통영, 거제들의 항구를 타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밀반입되는 과정이었지. 청학점으로 위장한 서점 사장은 이 짓을 30년 동안 한 거지. 혹시 에어컨 바람에 냄새가 날릴까 봐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틀지 않았더 거고. 그래도 너무 더우니까. 그리고 30년 동안 무사했고 사람들이 서점이라고 하면 다른 의심을 안 하니까 자신도 경계를 늦춘 거지.

최초 신고자로 나는 경찰관에 특채가 됐어. 시험은 떨어졌지만 30년 동안 도시의 심장부에 위장돼 있던 불순한 가루를 청산하는데 일조한 의미로 특채가 됐지. 어디로? 당연히 그 기지.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건 주변을 관찰하는 능력인 거 같아. 내가 청학점을 관찰하면서 낌새를 챈 거지.

그 사다리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그기를 들여다보지 않았겠지만,

잘 생각해봐.

서점이 책을 파는 곳인데 손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에어컨도 틀지 않아. 그리고 신간도 없어.

땅값은 제일 비싼데 위치 해 있어. 그럼 대체 주인은 뭘 먹고 사냐고? 이상하지? 뭔가 있는 거지?



"이눔아! 공부한다는 놈이 맨날 쳐 자빠져 잠만 자냐?"

어머니의 억센 손이 내 이불을 확 제쳤다.

아. 청학점. 꿈이었구나!

그래도 청학점 이상해. 그 사다리 밑 창고를 꼭 보고 말테야.




#상상력은 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춤춘다. 꿈을 꾸는 동안 행복하므로,

결국 그 힘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니까. 좌절이 앞에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꿈이라도 꾸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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