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여자 친구

입장이 같은 건 상대방 위치에 그대로 나를 놓는 것

by 양아치우먼

모티브> 시아버지가 어느 날 부터 매일 외출을 하시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아버지 여자 친구 생긴거 아니야? 그러자 시어머니가 말했다. 제발 그래서 다른 여자랑 나가 살면 좋겠다. 제발 바람좀 나라 그래라. 그래서 우리 모두 깔깔 웃었는데 갑자기 큰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그럼 시어머니가 두 분인데 괜찮아? 입에 들어가던 달달한 수박이 갑자기 싱거워졌다. 뭐? 시어머니가 두분? 그건 안되지? 담부턴 내가 아버지 뒤를 좀 밟아봐야 겠어. 사람은 똑같은 현상을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 들인다는 것을 배우는 소란이었다.



시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정율이 가족회의를 열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모두 컴퓨터에 줌을 깔고 방을 팠다. 정율의 아내 민서도 줌을 깔고 이어폰을 끼었다. 정율의 엄마 박영자 씨도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정율은 어머니와는 영상통화를 연결하였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기 가족회의는 박영자 씨, 그녀의 아들 정율과 정율의 아내 민서, 박영자 씨의 딸 가율, 사위가 참여하게 되었다.

" 이 서방은 빼지, 그러냐? 넘사스럽게."

"무슨 소리야 엄마?

이 서방도 우리 가족인데 참여해야지."

"무슨 좋은 일이라고..."

"엄마는? 뭐... 엄마가 죄 지었어?"

가율이 엄마를 나무랐지만 이걸로 어쨌든 줌과 영상통화의 동시 진행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서방이 서둘러 윗옷을 걸치고 나왔다.


" 아무튼 긴급하게 이렇게 회의를 소집하는 건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아버지한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 때문인데..."

정율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박영자 씨가 양은냄비 같은 가벼운 목소리로 정율의 말 도중에 끼어들었다.

"나이 들어 무슨 궁상이여? 미친 영감탱이!

하여튼 내가 저 인간땜에 못 산다, 못 살어~"


눈매가 박영자 씨를 쏙 빼닮은 가율이 말했다.

"그래서? 아빠가 그 여자랑 살고 싶다는 거야?"

정율이 머리를 긁적이며 박영자 씨의 빈 정수리를 유심히 보았다. 60대 중반인 아버지의 여자 친구 오정희 여사는 정수리가 풍성했다. 민서가 정율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응, 그렇데. 그분도 아버지랑 살고 싶으시데.."

그때, 박영자 씨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율아! 그분이 뭐냐? 그 년이지?"

"엄마.... 흥분 좀 가라 앉혀요."

가율이 박영자 씨를 말렸지만 박영자 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뻗쳤다.

"주책이여! 죽을 나이에 무신 사랑 타령!"

그리고 잠시 이어폰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사랑은 매번 우아해

올해 71살인 박영자 씨의 남편 최만도 씨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살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평생교육원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분이고, 만난 지 3년이 되었다고 했다.

정율이 6개월 전에 아버지인 최만도 씨의 여자 친구 오정희를 만나고 온 것이었다.

오정희를 만나고 온 사실은 이미 박영자 씨를 뺀 나머지 가족들에게 공유가 되었다.

<첫인상부터가 엄마랑 정 반대였어. 엄마는 여장부잖아.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거침이 없고. 뭔가 다른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기가 센 스타일이잖아?

그분은 엄마랑 정 반대더라. 다소곳하고 차분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하신 게?

차 한잔 마시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왜 그분한테 마음을 주게 됐는지 알겠더라.

그분 먼저 보내드리고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란 살고 싶구나!

차마 그런 아버지한테 그냥 엄마랑 지금처럼 사세요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

정율이 한숨을 푹 쉰 뒤 이어폰을 다시 꽂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랑 이혼하는 것에 찬성!

우리도 성인이 다 됐고...

뭐 평소에 엄마랑 사이가 좋으셨던 것도 아니고..."

정율이 박영자 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의외로 이 대목에서 박영자씨는 축 처진 눈꺼풀만

꿈벅이며 아무런 말을 안 했다.

"아... 아버님, 대단하십니다.... 멋쟁이 십.."

모처럼 이서방이 줌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뀌 보려고 한 마디 하는 찰나,

가율이 남편을 잡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가? 당신도 그럼 다른 여자랑 살고 싶은 거야?"

"아... 아니..."

그때 박 여사가 스피커가 찢어지게 말했다.

"그래... 나도 저 인간이랑 살고 싶은 생각 없어.

돈 벌어 올 때야 먹고살아야 되니까 그랬고, 늙으면 아프기밖에 더 하겠어. 젊은 년 한테 병시중 받게 가라 그래!"

박영자 씨의 말을 듣고 정율이 이마를 펴며 말했다.

"그렇죠? 엄마! 잘 생각하셨어요!"

뒤이어 가율이 말했다.

"그래 엄마, 모양은 좀 빠지지만...

아빠가 사랑을 찾겠다는데, 우리가 양보해 주지 뭐. 대신 엄마는 우리가 더 자주 챙길게.."

그렇게 최만도 씨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오정희 씨와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듯했다.

시어머니가 두분? 싫어요

이어폰을 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정율의 아내 민서가, 잠깐만요, 하고 끼어들었다.

"저는, 저는 반대예요!"

평소 조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잘 피력하지 않고

대부분 정율과 가율의 의견대로 따라 주던 민서가 반대를 하자 가율은 당황스러웠다.

모두 민서의 얼굴을 바라봤고 박영자 씨도 정율에게 며느리 얼굴을 보이게 하라고 재촉했다.

"저는 반대예요! 저한테 시어머니가 한 분 더 생기시는 건데... 그건 안되죠! "


정율이네 집에는 규칙이 있다. 가족회의에서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할 경우에는 그 의견이 통과될 수 없다는....

민서가 끝까지 반대의견을 고수하자 결국 이 날의 회의는 최만도 씨의 이혼과 재혼은 부결되었다.

그리고,




줌을 끈 후 정율이 아내 민서에게 따졌다.

"여보, 왜 그래? 내가 미리 말했잖아? 오정희 여사가 빌딩 갖고 있고 아버지랑 재혼 후에는 빌딩 반은 우리한테 준다고! 어차피 엄마랑 아빠랑 사이 안 좋은 거는 당신도 알잖아? 왜 그래?"

민서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 꼿꼿하게 맞섰다.

"그래도 싫어요!"

"왜~~~~ 에?"

민서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는 듯했다. 머뭇거리며 민서가 낮게 말했다.

"나도 나중에 박영자 씨처럼 되면 어떻게 해."


민서는 안방으로 문을 탁 닫고 들어가면 또 한마디 했다.

"오정희 여사, 내가 알아봤는데 성격이 장난 아니래. 그런 시어머니 비위를 내가 어떻게 맞추고 살아. 그냥 나는 박영자 씨 한 사람으로 족할래."


정율이 민서를 따라가 아무리 설득했으나 끝내 민서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 우리 집 위층 70대 어르신들이 맨날 싸우신다. 싸우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새벽에는 가끔 잠을 깨기도 한다. 한 번씩 엘리베이터에서 뵙는 아저씨는 너무 점잖다.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해본다.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는 양가감정의 산물이다.

편하지는 않지만 같은 여자 입장에서는 왠지 편들어주고 싶은, 깨끗하지 않은 행주는 이해가 안 되지만 텅 빈 정수리는 이해가 되는.

아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새털 같은 감정들이 내게는 못이 되어 콕 박히는.


가족이라는 연결선을 떼고 보면 우리는 같은 여자, 세상의 가부장제에 흔들리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먼 후에 시어머니가 될 나의 삶도 빛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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