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의 완벽한 소통
해풍을 맞고 자란 남해 특산품 마늘.
길수와 두일이는 다른 동네 마늘을 훔치기로 했다.
마땅하게 일자리도 없고 딱히 어디 돈 나올 구멍도 없었다. 둘 다 노총각이었지만 술값이나 담배값은 필요 한 터, 때마침 마늘 수확이 끝난 6월이었다..
남해 설흘리 마을은 할매들이 나이가 많고
젊은 사람이 없어 해가 지면 모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늙은 잠에 빠졌다. 마늘은 주로 헛간에 대충 걸려 있어 트럭 한 대만 있으면 훔쳐 오기가 쉬울 듯했다.
날이 당연하게 어두워졌다. 길수와 두일이는 읍내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트럭을 몰고 설흘리 마을로 향했다. 트럭을 길가에 대더라도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는 서분이 할매집이었다.
역시나 집은 조용하고 담은 낮아서 길수와 두일이는 가볍게 헛간을 들러보고, 각자의 위치를 잡았다.
길수가 헛간에 걸려 있는 마늘을 담장 밖으로 넘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 자~아~ (받아라)
마늘을 받은 두일이가,
- 어... (알았다)
어둠속에서 이런 소리가 계속 낮게 들렸다.
- 자~~아~
- 어...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순간, 갑자기 집 안에서 불이 켜졌다. 재빨리 길수와 두일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서분이 할매가 느릿느릿 일어나 요강에 실기 빠진 오줌을 누고, 끙하며 겨우 일어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불이 꺼졌다.
- 통시네 (화장실이네)
- 쎄기해라. (서둘러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둘은 다시 마늘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마음이 바빠졌다.
- 자! (빨리 받아라)
- 어! (어서 넘기라)
- 자!
- 어!
그런데 마늘을 나르는 길수의 손이 더 느렸다. 왜냐하면 담벼락에서 헛간까지의 거리가 더 멀었다.
두일이가 길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쫌! (빨리 좀 해라)
-어~ (알았다구!)
길수는 두일이의 말을 듣고 마늘을 8 다발씩 움켜쥐고 날랐다. 그 순간 할매 방에서 휴대폰이 < 야~~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울렸다. 길수는 고추 말리는 기계 뒤로 몸을 숨기며 혼자 중얼거렸다.
- 해 뜨것네.
할매가 아들이랑 통화를 했다.
........
- 어이~~
.......
- 하----모!
.........
- 하----모!
........
-드가게!
할매는 다시 깊은 침묵에 빠졌다. 잠을 자는 건지 뒤척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불은 켜지지 않았다. 담벼락 뒤에 낮게 엎드려 있던 두일이가 고양이 울음소리로 길수를 불렀다.
다시 길수가 마늘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조용히 발걸음을 해야 하는데 길수는 눈치가 없이 발자국 소리가 너무 컸다. 길수가 담벼락 근처 왔을 때 두일이가 길수의 손목을 잡고는 말했다.
- 쪼~~ 옴!
(발소리 좀 줄이라고!)
두일이 말을 듣고 길수는 살금살금 발걸음을 떼었다. 맞다. 불은 꺼졌지만 아들 전화 때문에 할매가 잠을 안 잘 수도 있으니.
- 쎄기해라.
(퍼뜩해라)
누군가가 말했다. 그믐밤이라 동네는 어둡고 마음은 조급했다. 행여 들킬세라 헤드라이트를 길게 뺄 수 없었다. 가벼웠던 트럭이 묵직했다. 아까 저녁때 반주를 한 두일이가 걱정됐다.
- 괘얐나?
- 하모.(괜찮다)
두일이가 시동을 걸었다. 조용한 동네에 시동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길수는 안전벤트를 했다. 트럭 가득한 마늘을 다 팔면 한 달 동안은 걱정이 없을 듯했다.
날고 허름한 오래된 동네 사이를 낮은 불빛 하나가 고부랑 고부랑 야금야금 내려갔다.
다음날, 두일이와 길수는 경찰서로 잡혀갔다. 현장범으로. 경찰서 복도를 들어가며 길수가 두일이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 내가 구릉 조심해라 캤제? 쫌!
그믐밤 마늘이 가득 실려 있는 트럭은 커브길에서 구릉으로 박혀 버렸다. 밤새도록 구릉에서 트럭을 꺼내려고 길수와 두일이가 고추 일어서던 힘까지 보탰으나, 구릉으로 처 박힌 트럭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구릉 논은 서분이 할매 논이었다.
#사투리는 지역의 역사다. 사투리가 깊고 억셀수록 생존의 늪이 깊고 험했다는 증거다. 어디서도 남해 사투리를 알아본다. 도시 말을 아무리 흉내내도 말의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묘한 뉘앙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냄새처럼 숨길수 있는 것 들이 절대 아니다.
사투리는 미치도록 찰지고 야무지게 쫀득쫀득하고 퍽! 하고 억새야 생동감이 난다.
깍쟁이스럽던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경계를 풀게 하는 그 내면에 혹시 사투리를 깔보는 무엇이 있을지라도, 사투리는 변방이 아니다.
깊은 생을 살아내고 또 그 생을 이어가는 역사의 메들리다. 고로 사투리는 위대한 뉘앙스의 절정이다. 촌놈이라 깔보지 마시라.
구릉이란
네이버 지식 사전엔 얕은 언덕이나 산비탈로 되어 있지만, 남해에서는 물이 질퍽한 땅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니 입으로 따라
해보시길...
다만 서분이 할매와 아들의 통화는 이렇다.
아들: 엄마 자는 가?
할매: 어이~~
(잠자는 중이다.)
아들: 밥은 묵었는가?
할매: 하----모!
(밥은 먹었으니 걱정마라. 괜찮다)
아들: 몸은 아픈 데는 없고?
할매:하---모!
(내 걱정은 하나도 안 해도 된다. 너 나 잘 살아라)
아들: 잘 있으니 됐네.
할매: 드가게
(목소리 들으니 니도 별일 없네. 퍼뜩 집에 가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