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못하는 이유가 DDONG이라니
취약계층의 사람들에게 일이 가지는 기쁨을 전파하고 그들이 일하기를 희망한다면 모든 안테나와 능력을 동원해 work세계로 안내하는 것, 직업상담사가 나의 업무이다.
난감하다의 사전적 어미는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어려워 처지가 매우 딱하다라는 뜻이다.
상담이 시작되는 시점에 모든 것을 스캔한다
내담자가 정해진 시간에 오는지, 내 자리까지 무리없이 찾아오는지(인지와 지각은 양호하다)
걸음걸이는 어떤지, 인사는 하는지
(사회적 관계 형성에 대한 수준 파악)
눈은 나랑 마주치는지, 자세는 어떤지
(자존감이나 우울증 파악)
식사는 하셨어요?(방어적인지, 내담자의 성향)
상담의 시작 지점, 만나서 상담실로 이동하는 5분 동안 대부분을 파악하게 된다. 13년 동안의 스킬이 키운 촉이다.
그는 모든 게 순탄했고 차림도 괜찮았다.
50대 초반의 남자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이 끊길 수 있었다.
"몸은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내담자의 건강을 물어보는 것은 직업상담의 기본이다. 모든 내담자에게 묻는 공통사항이었지만 그 단어가 툭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3년 전에 탈장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 못 되었는지 자꾸 DDONG이 자신도 모르게 흐른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도 흐르고, 버스를 타도 DDONG이 흘러서 장거리 외출도 하지 못한다고...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상담의 기본은 공감이니까.
"어휴... 많이 불편하셨겠네요."
그러자 힘을 얻은 그가 계속 자신의 DDONG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 DDONG 흐르는 간격이 20분 정도가 되는데...
달릴 수도 없고, 집 밖을 나가면 불안하다.... 한 번은 친척집에 간다고 버스를 탔는데... DDONG가 흐르는 바람에 중간에 버스에서 내렸고...... 흐르는 DDONG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 또 한 번은 목욕탕을 갔는데 DDONG이 나오는 바람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상담 시작한 지 10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DDONG였다. 족히 13번은 들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내가 바를 정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단어를 끊기위해 중간에 겨우 한마디 넣었다.
"그럼, 진단서는 나오는겠네요?"
"의사가 진단서를 못 끊어준대요, DDONG이 흐른다고 이야길 해도 의사가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고 진단서를 끊어 줄 수가 없데요."
그와의 상담시간이 20분을 넘겼다.
혹시나 하고 냄새에 촉각을 세웠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바를 정자는 21회가 그려졌다.
"선생님, 진단서가 없으면 저희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게요, DDONG은 흐르는데 진단서가 안 나온다니, 정말 난감하네요."
저도 난감하네요.... 선생님의 거침없는 발음이.
참고로 나는 경상도에 살고 당연히 그는 경상도 남자였다. 그의 목소리가 그것을 발음할 때 마다 얼마나 쎈 뉘앙스를 남발하는지....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아 있는 우리의 대화는 Gold가 아니라 DDONG였다.
상담은 30분 만에 끝났다.
병원 가서 진단서를 끊어 올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했고 내담자도 진단서를 가져와 보겠노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대부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지만 나는 내담자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내담자의 언어가 진실인지 파악하려 한다.
그를 배웅하러 사무실 문 밖까지 인사를 나갔다.
"서류가 준비되면 언제든지 다시 연락 주세요."
내가 인사를 하며 그를 배웅했다.
사무실 오른쪽 편에는 바로 남자 화장실이었다.
그는 남자화장실을 보고도 화장실을 들리지 않고
건물의 바깥으로 유유히 향했다.
돌아서 가는 남자의 걸음은 하등의 이상함이 없었다. 그 남자의 DDONG은 무사한 걸까?
어쩌면 그런 날이 있었을 것이다.
주체되지 않는 DDONG의 반란들, 그래서 경험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다.
그럼에도 내 앞에서 DDONG의 변명을 늘어놓을 정도로, 체면을 챙길 정도의 여유가 없다면 그가 일을 하지 못하는 절박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장된 DDONG의 핑계가 씁쓸해지는 그런 시간...
그가 던진 체면과 부끄러움의 무게를 마음으로 잰다. 그래요, 당신에게 시간을 드립니다. 그것이 제가 당신을 존중하는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당신의 DDONG이 다음 만남에서는 조금 예의를 갖추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맨날 싸지만 그렇게 매번 DDONG을 자주 언급하지는 않거든요.
상담일지에 그어진 바를 정자를 그래도 세워보며 나를 위로한다. 타인의 DDONG 이야기를 서른 번이 넘게 듣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을 쐬러 나간다. 내담자에게서 받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잘 비우는 것이 상담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여기까지가 상담의 과정이다.
상담후 박완서 단편소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가 생각났다.
<방귀를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던 어머니가 하필 말년에 괄약근이 열린 채 다물 줄 모르게 될 건 또 뭘까. 나는 도저히 해설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난해한 아이러니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어머니의 발병과 수술과 항문이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가 역시 팔아먹을 거라곤 아무것도 안 남은 집으로 들어와 계시게 된 후에 일어난 것이었다.>
... 생략
<내가 떠맡고 싶은 건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똥구멍이었다. 생판 남이 어머니의 똥구멍을 진저리를 치며 구박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건 효도따위보다 휠씬 진실하고 씩씩한 분노였다.>
... 생략
<일생을 자기의 한숨소리 한번 제대로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잔뜩 오므리고만 사신 어머니가 자기 항문도 못 오므리게 된 치욕적인 마지막을 보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