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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6. 2020

내 인생의 에티튜드

내 인생에 내가 태클 걸지 말자


상담은 종종 나를 멍들게 했다.

상담이란 직업은 타인의 삶을 합법적으로 훔쳐보는 일이다. 내담자의 언어와 비언어를 통틀어 숨기고 싶어 하는 시선까지 훑어 내는 일은 김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단어처럼 어마어마한 일이다.


상담 초보였던 시절, 여동생의 성폭력을 상담했던 언니의 백지장 같던 얼굴, 가출로 인해 40대 남성의 집에 감금 아닌 감금되어 아이를 낳아야 했던 딸 또래의 담담했던 고백, 실수로 아내를 살해하고 전자발찌를 차고 그 순간을 소설을 쓰듯 이야기했던 남자의 이마, 에이즈가 걸려 어디에도 취업할 수 없었던 청년의 고개, 가난한 부모가 죽었을 때 팩스로 온 하트 그려진 부양의무자 포기각서.... 가난은 가난해서 슬프고 약한 자는 약해서 아프고 이해받지 못한 자는 이해받지 못해 고통스럽다.


그들은 고백성사를 하듯 무엇인가를 나에게 털어놓았지만 나는 그들의 무엇도 사하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존중, 그것뿐이었다. 삶의 기록들이 말로 튀어나올 때 나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그들의 감정에 호흡을 맞추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채색을 띤 하찮은 존중, 상담은 그런 것이었다. 아픔과 고통에 고개 끄덕여 주며 대단하세요라는 상투적인 멘트를 날리는 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상담에서는 내가 먼저 지쳐가기에 그럴 때 잠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 인생을 너는 그냥 살았구나라는 일들이 자주 많았다. 전이는 내담자의 아픔이 상담자에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현상이고 전이를 겪으면 상담자가 내담자를 포기해야 한다. 객관적인 상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가출청소년이 18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보고 싶다고 울 때는 어떤 일로도 울지 않았던 나마저도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노란 염색머리에 손에 낀 반지가 빛을 내는 너무 고운 아이였지만 가정폭력에 가출하고 또 가출때문에 출산까지 하게 된 아이의 눈물에 나는 더 이상 어느 누구의 숨어있는 인생의 결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상담하고 적당한 권유와 조건으로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당히 아프지 못하고 늘 과하게 아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는 일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종종 멍들게 했다.


내 인생을 반추하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훔쳐보는 10년 동안 나는 내 삶에 내가 어떻게 태클을 거는지 알게 되었다.



# 비교하며 변하는  인생의 백분율

아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베틀을 하듯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아주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경쟁하듯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보면 질투심을 느낀다.


내 또래의 여성들 중 빈곤의 굴레로 떨어진 삶을 보면 위안이 되었다가 잘 나가는 친구들의 고급 승용차를 보면 어느새 내 삶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저 차 보조석 문짝만 네 거고 나머지는 캐피털 꺼지라고 농담으로 받아치기는 했어도 누구와 비교하는 가에 따라 내 삶의 무게는 아래위로 요동쳤다.

다른 사람의 성적에 따라 내 위치가 변하는 백분율처럼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한심하다는 걸 알았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좌표였다. 아무 의미 없는 남의 인생을 가지고 내 인생을 채점하는 그런 일은 쓸모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꾐에 종종 빠졌다. 내 안 단단한 마음의 뿌리가 없기때문에 매번 휘둘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 상대방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다

가난하다고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이 명품지갑을 들고 나타나면 은근히 마음 한 귀퉁이가 꼬이며 저 사람은 분명 뭔가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해라고 사람을 의심했다. 일자리가 급하다면서도 여기는 돈이 너무 적어요, 일이 너무 힘들어요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며 속으로 이렇게 되뇐 적도 있었다. 그럼, 당신이 사장을 하시든가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과 사연이 있었을 거지만 가끔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에 따라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내담자는 변화가 없는데 내가 꼬이면 모든 게 꼬여보이는 색안경 효과였다.


거의 10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한 50대 후반의 아저씨였다. 당뇨로 고생하다가 겨우 몸을 추스른 후 일자리를 원한다고 상담을 했다. 여기저기를 안내해도 별로 내켜하지를 않아 정말 이 사람이 일자리를 원하긴 하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그분이 취업되었다.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아저씨에겐 노모가 있었고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집과 가까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잠시 쉬는 시간에 어머님의 식사를 챙겨주며 경비원으로 근무했다.   내담자들은 똑같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지치거나 까탈스럽거나 지겨워 보일뿐이다. 문제는 내담자 위치에 있는 가난한 그들이 아니라 나의 뒤틀린 심사가 문제였다.


어떤 삶이든 최선이다

가난하다고 희망조차 가난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가난했지만 제 각기 희망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제가 힘들어도 이렇게 버텨주면 우리 아이가 잘 자랄 거예요. 우리 남편이 잘 이겨낼게요.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함부로 사는 사람보다 자신의 몫인 인생을 잘 꾸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8살 아이 엄마도 자신이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직장을 가져서 돈을 모은 뒤 아이를 다시 데려 올 거라고 자부했다. 그녀는 전산자격증 학원에 등록했고 힘들어도 해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의 몫인 삶을 향해 첫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한번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여주었다. 엄마가 없는 그녀가 나의 위로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힘들 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그녀도 내 등을 토닥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그녀의 등은 단단하고 야무졌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나는 분노와 슬픔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그녀와의 포옹으로 위로 받은 것은 나였다. 그녀가 웃으며 내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았다. 그녀가 어느지점에서 어른이 돼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가난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은 변곡점이 많았다. 폭력, 상실, 우울증, 단절, 불안, 실패.... 그럼에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몫인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주름지고 휜 손가락을 어떻게 가졌을까? 그들은 자신이 마주한 변곡점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녀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기준으로 내 잣대로 그들의 인생을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을 함부로 폄하할 자격은 없으니까.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나도 놓여 있었다면, 그들에게 닥쳐온 변곡점이 나에게 고스란히 닥쳐왔다면 그들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인생에서 지고 이기고 가 어디 있어 다 각자 인생이지.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사 중 일부이다. 맞다. 우리 인생 중 잘살고 못 산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 각자의 몫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겠는지.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며 흔들리지 말고 내가 만나는 인생을 폄하하지도 말고 내 몫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나의 에티튜드다. 내 인생에 내가 태클을 거는 못난 짓 따위는 하지 말자. 그보다 더 미련한 짓은 없다. 무엇이건 남과 비교하는 게 바로 태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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