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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10. 2020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힘이 기부다

만원의 힘을 믿는다


5년마다 한 번씩 돈의 지출을 관찰한다.

자동이체이든 생활비든 평소는 통장을 잘 들여다보지 않지만 5년 정도에 한 번씩 꼼꼼하게 지출을 관찰한다.

2018년쯤 한번 지출을 쏴악 들여다보며 나갈 곳과 막아야 할 곳을 새롭게 세팅한 듯하다. 그때 조선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착한 늑대의 수입이 70%로 줄어서 긴축재정이 필요했고, 기부로 지출되는 돈을 최소화했다. 유니세프에 2만 원씩 하던 기부금을 끊었고 다른 기부금은 금세 다시 회복했지만 국제 기부는 다시 살리질 못했다.


유니세프나 굿네이버스, 이런데 후원을 할까?


얼마 전 착한 늑대가 내게 물었다. 착한 늑대가 묻는 의미를 나는 안다. 이런 곳에 후원하면 기부금이 제대로 운영이 될까? 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이전에 유니세프에 후원했던 것은 길거리 캐스팅에 당첨되어 헤픈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동이체 번호를 적는 순간의 실수에 의한 것이었지, 꼭 여기를 후원하기 위한 명목은 아니었다. 매월 2만 원의 후원이 크게 데미지 입을 정도는 아니어서 착한 일 하나쯤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는 것도 멋있겠다 싶은, 양아치 엄마는 유니세프에 후원도 하는 생색을 위한 도구였다고 할까? 러프하게 말하면 아무생각없이 별 뜻없이다.

매월 후원자에게 보내주는 메일 레터를 잘 읽지는 않았다. 연말정산을 위한 기부금 영수증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나 할까?


최근 복지관에 기부를 연결했다.

한편으로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데 내가 겨우 내는 2만 원이 난민이나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라는 마음도 있었고, 해외봉사라든지 국제구호단체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2년 정도를 후원하다가 수입이 줄어들자 제일 먼저 끊은 셈이다.


기부도 충동적으로 대충 일회성으로 하는 버릇을 이참에 한번 고쳐볼 심사다. 마음 가는데 돈이 간다는 머니 로드의 진리를 한 번은 조목조목 따질 때가 되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고 빠듯하지만 2~3만 원은 더 지출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의 소환


<제주공항에서의 감금 2박 3일>

2016년 1월 23일 나는 제주도 공항에 유배되어 꼬박 2박 3일을 제주공항 바닥에서 잤다. 엄밀하게 말하면 첫날은 짐을 옮기는 카트에서 쪼그리고 잤고 둘째 날부터는 의자에 매트를 깔고 잤다. 그때 제주공항에는 몇 천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일기예보다 더 많은 눈이 갑작스럽게 내렸고 비행기는 2박 3일 동안 뜨지 못했다. 사람들은 무슨 피난처라도 되는 것처럼 공항으로 꾸역꾸역 몰려왔고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했다. 공항 근처의 모든 숙소는 만석을 이루었다. 함께 간 아는 언니랑 둘이서 공항 카트기에 기대어 쪽잠을 잤다.


공항에 갇힌 첫째 날, 사람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전기코드가 있는 곳으로 몰렸고 공항 안 택배회사 앞에도 줄을 섰다. 택배박스를 사서 깔아야지만 찬기운을 면하고 바닥에 펴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너나없이 사람이 몰리면서 결국 그 박스 조차도 동이 나고 말았다. 그때 박스를 깔고 자리에 누워 자는 사람들은 제주공항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등을 눕히고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소하고 아주 평범한 것의 가치를 몸으로 절감했다. 박스를 누군가가 훔쳐 갈까 봐 가족끼리 교대로 지키기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제주공항에 갇힐것은 상상도 못하고 한라산에서

하루가 지나면 비행기가 뜰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다음날도 비행기는 뜨지 못했고 식자재 트럭이 외부와 차단되면서 편의점 음식이 동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으나 유배 다음날 편의점을 가보고는 깜짝 놀라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생맥주라도 사 왔다. 물과 김밥과 빵 같은 식료품은 텅 비었고 비상약도 모두 나가고 없었다. 물론 컵라면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언니와 나는 제주공항을 나와 눈밭을 30여 분 걸어가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과 컵라면 몇개를 사 왔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래 따라 했다. 춥고 배고프고 서글펐다. 두려움이 껌딱지가 되었다.


컵라면을 먹으려니 따뜻한 물을 구할 수 없었다. 언니는 성격이 무뚝뚝한 성격인지라 뜨거운 물을 구할 길이 없자 그냥 먹지 말자고 했다. 김밥만 먹기에는 목이 마르고 추웠다. 나는 공항을 둘러보았다. 바로 맞은편에 공항 보안경찰? 간판이 보였다. 잔다르크처럼 용감해지기로 했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 나는 아주 불쌍한 얼굴을 하고는 보안 경찰대 문을 두드렸다. 너무 배가 고파 그러는데 따뜻한 물을 좀 빌리수 없겠느냐?라고 물었다. 젊은 보안경찰관이 씩 웃더니 다른 곳에 가서 여기서 물을 얻었다고 하지 말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 가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나보다 어린 싹싹하고 잘생긴 녀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컵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짧은 순간에 알아준 그의 평범한 호의가 고마웠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하면서 비행기가 언제 뜬다는 소식이 없자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카트기에서는 더 이상 못 잘 것 같은데.... 온 삭신이 쑤시고 아팠다.




그리고 그날 오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떤 남자 한분이 공항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우리는 공항에 갇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노숙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 편이었다. 무리를 달고 움직이는 남자는 여기저기를 쭉 둘러보더니 사람들과 뭔가를 의논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2시간 뒤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잠자리 매트와 침낭을 배분할 것이니  3번 출구 앞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노약자와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분배했다. 몇 군데 장소에서 매트를 지급했다. 매트를 지급받자 등을 펴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다음 차례로 물과 김밥과 떡이 제공되었다. 공항 안에 텐트가 쳐지고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오더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진료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들이 입은 노란 조끼는 적십자회였다. 머리가 흰끗흰끗했던 분은 아마도 책임자인 듯했고 모든 것은 2시간 안에 완료되었다. 천사와 신은 다름 아닌 노란 조끼를 입은 그들이었다. 그들이 오기 전과 오고 난 후의 공기가 확연히 달랐고 내 마음도 달랐다.



일단 추위에 떨지 않을 잠자리와 음식이 제공되니 마음이 안정을 찾았다. 누군가 우리를 보호하고 지원한다는 느낌이 들자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연대감이 들었다. 그날 밤은 매트 위에서 편하게 잤다. 재난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 적십자회비를 꼬박꼬박 내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트와 침낭, 음식 제공으로 인해 날카롭게 뻗치던 불안의 징후들이 스르륵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적막하게 조용하던 공항에 아이들의 장난과 웃음소리가 그제야 여기저기서 조금씩 튀어나왔다. 아이들 장난 소리 덕분에 공항은 천명이 사는 집 같았다.




지키고 싶은 곳에 후원한다.

착한 늑대가 월 5만 원씩 후원하는 곳은 큰들 극단이다. 후원한 지 25년은 된 것 같다. 큰들 극단은 대학교 때 문화패 활동을 했던 착한 늑대의 지인이 만들었으며 매년 마당극을 만들고 공연하며 30여 명의 배우가 공동체를 꾸려서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는 아마도 월 만원부터 몇 십만 원까지 지역 천여 명의 사람들이 후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http://onekoreaart.or.kr/


착한 늑대의 강권에 시누와 언니까지도 매년 후원금을 내고 있다. 후원자들에게는 큰들 마당극 공연 시 1년에 한 번 초대권을 보내준다. 착한 늑대의 무한한 애정이 쏟아지는 단체라 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후원단체이다. 마당극 문화와 지역문화단체의 보존성을 따진다면 후원할 가치가 충분하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지역의 문화적 토대를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25년이 넘도록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순풍에 돛 달고> <효자전> <마당극 이순신> <최참판댁 경사 났네> <오작교 아리랑> <마당극 남명> 등 지역의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학과 풍자로 지역민들과 호흡하는 문화단체, 내가 힘들게 번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 큰들 극단,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수도권과 다르게 지역은 지역에 뿌리를 둔 개성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왕성하게 교류하고 서로의 문화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상승해야 한다. 그런 문화는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감동을 주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문화는 의식의 징표다. 점차 사라지는 마당극을 지켜내는데 한 줌의 정성을 보탤 뿐이다. 지키는 힘이 약하면 결국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면 잊히질 것이기 때문에 존버하는 마음으로 후원한다.



큰들 극단 마당극 <정기룡전>중



최근 내가 지키고 싶어 후원하는 곳은

뮤직 파라디소이다.

지인으로부터 얼마 전 소개받은 음악다방이다. LP판을 전시하고 팔고 있으며 오롯이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영화음악이나 클래식 감상과 음악에 관한 강의를 무료로 해주는 곳이다. 이용도 무료이다. 이곳에서 누구든 어떤 음악을 듣던 한번 오게 되면 편안한 분위기와 뮤파 지기 심광도(브런치명 빛길) 선생님의 강의에 매료되어 꼭 재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음악이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


뮤직 파라디소에는 없는 음악이 없다


아쏘공<아줌마가 쏘아 올린 공>월 2회 뮤파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기만 하면 뮤파 지기가 좋은 음악과 히스토리와 감동을 그냥 던져준다. 우리는 편안하게 앉아서 감동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기에 요즘 내가 최애 하는 곳이 돼 버렸다. 얼마 전에는 봉여사를 데리고 방문했는데 이미자 노래를 들려주어서 고마웠다. 섬세한 배려가 있는 소박하고 다정한 음악공간이다.


자꾸 들으면 듣는 귀가 열리고 귀가 열리면 마음에 와 닿게 되고 마음에 와 닿으면 감동이 되는 순간이 온다.


잘생긴 뮤파지기는 아니지만 마음이 참 따뜻하고 뮤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려고 하기 때문에 그냥 좋다. 사실 나는 클래식에서는 베토벤 운명밖에 들은 적이 없고 그것도 딴따단단~하는 앞부분만 알 정도로 젬병이었지만 음악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뮤파지기의 위로에 힘입어 꾸준히 음악을 듣게 되었다. 뮤파지기가 알려준 여러 가지 버전의 음악들을 기록해 놓았다가 자주 듣는다.


스트레스받을 때 발목 잡는 무엇이건 뿌리치고 뮤파의 음악을 들으면 한결 마음이 차분해지며 새삼 화낼 것도 짜증 낼 일도 없는 것처럼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월 만원의 후원을 기꺼이 신청했다.

음악이 좋아서 잘 나가던 직장도 접고 뮤직 파라디소라는 훌륭한 음악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뮤파지기의 용기에 꼭 이 공간을 잘 지켜 달라고 당부하는 마음으로 만원이지만 천만 원짜리 애정을 담아 후원한다.

뮤파지기 샘이 발간한  책 뮤직파라디소


지역방송에 출연하면서 뮤파 지기가 책을 내었다. 뮤직 파라디소(천국).... 책은 샀지만 아직 읽어보질 못해서 책 소개는 다음으로.. 창원에 오신다면 꼭 뮤직 파라디소에 가서 뮤파 지기와 음악 한 자락 하시기를.... 음악이 주는 감동은 은근하고 내밀한 힘을 가진다. 감동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뮤파지기의 말에 공감한다.


https://brunch.co.kr/@gwangdo/53

나의 인도로 브런치 입성한 뮤파지기(빛길)



나는 왜 후원이나 기부를 하려 하는가?

기부란 이름으로 사익을 취했던 사례는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이 오로지 나를 위한 의식주와 소비에만 쓰인다는 것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먹고 사는 일에만 전력질주 한 것 같아 서글픔이 든다. 잘 나가는 사람처럼 억 소리 날게 벌지 못하고 월급날이 지나면 몇일만에 휘리릭 잔고가 0원을 향해 가지만  기부는 나를 사람이게

하는 행위이다. 가치있는 소비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의 특권인 셈이다.


무엇보다 세상은 누군가와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다 큰들 마당극을 통해, 뮤직 파라디소를 통해 힐링의 시간을 얻었고 누군가의 전문적인 역량과 투자가 있었기에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 가는 곳, 지키고 싶은 곳에 내 노동의 가치를 조금 나누어 주는 것이 기부라고 생각한다. 벌어먹고 살아야 해서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은 못할지라도 내 수익의 일부분을 잘게 나누어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어주는 것,  용기를 내어준 그들에게 나의 지지를 쪼깨(조금) 보태는 것, 그것이 기부의 평범하고 소박한 자세다. 만원이 큰 몇 배의 가치를 발휘하는 투자라고나 할까.



더 지켜야 할 미래를  찾는 중이다

국제단체에 대한 기부는 아직도 탐색 중이다.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후원할 통로는 많아 보였다.


후원해 놓고 의심하는 것보다 찬찬히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보기로 한다. 통장에 한 줄의 자동이체 내역으로 남더라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개미 콧구멍만 한 여유에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고작 2~3만 원의 지출을 또 꿈꾸고 있다. 아무렴 이런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이 헛으로 쓸까 그런 믿음을 가진다.


부모가 오로지 먹고 산 일에만 열심인 것보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곳에는 기부하며 살았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나는 후원하고 기부하려 한다. 또한 내 아이들도 어렵게 돈은 벌더라도 먹고사는 일에만 목매달지 않고 나누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이건 부모가 해야 자식들도 따르는 법이다.  소신이 있게 지키고 싶은 곳을 찾아내는 안목, 믿고 후원할 수 있는 용기, 내 발등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의 길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삶은 혼자 꼿꼿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끼리 서로 기대어 흔들리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싶다.

코로나로 예술인과 문화단체가 힘들었다.

존버 해줘서 고맙다. 연말이 다가온다. 없는 이들에게 겨울은 또 넘겨야 할 위기의 계절이다.



그래도 착한 늑대의 소비는 너무 쫌생이다.

핸드크림을 다 썼길래 내가 버렸더니 다시 주워서 이렇게 반으로 잘라 손으로 쓱쓱 훑어서 쓰고 있다

아무리 말해도 과하게 아끼는 소비 패턴은 바뀌질 않는다.


아, 삶은 왜 이다지도 이중적인가?

일상은 비루해도 기부를 하고 싶다니 황홀하게

이뻐서 눈 딱  감고 잔소리를 꿀꺽 삼킨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뭔 기부야? 그냥 핸드크림이나 팍팍 사써!

그 말을 꼭꼭 누르며 양치를 하는데 아이코 치약도 저 녀석처럼 배가 갈라져 있다. 일상은 암만 생각해도 궁색함의 연속이다. 삶은 이래도 찬란한 하루인지 박경리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다.


당신의 삶은 지금 찬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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