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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12. 2020

땡땡이의 유혹

여행보다는 단타성의 힐링


여행이 어디론가 떠나 일상을 완전히 제끼는 장기전의 힐링이라면 땡땡이는 권투의 잽처럼 훅 나갔다가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 단타성 쉼이다. 여행은 비용과 용이성이 떨어지지만 땡땡이는 갑자기 예측 없이 돌발성을 갖기 때문에 사전 스트레스가 없다. 가성비를 따지자면 나는 땡땡이 파에 속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땡땡이를 쳤을까?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문득 운문사를 가고 싶었다. 50년 동안 맞이한 가을 중 운문사 가을이 최고였다. 운문사로 향하는 도로 위, 철없는 아이 웃음을 닮은 바람결 따라 빙그르르 은행잎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굴러다녔다. 아장아장한 걸음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  폭신하고 노란 파도가 울렁거린 운문사의 가을은 10년이 지나도 나를  가끔 흔든다.


땡땡이치고 운문사로 갈까?

마음을 만지작 거리는 사이 105번 버스가 왔다. 마음을 간신히 버스 위로 올렸다. 나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땡땡이를 치는 용기도 이제 느슨해진 나이다. 피식 웃으며 생애 최초 내게 땡땡이를 알려준 정미의 얼굴이 떠 올랐다.



책상 빼면 아무도 몰라.

내가 다닌 학교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였다.  평소는 남녀합반을 하다가 가정과 기술 시간이 오면 옆반과 합쳐 남자는 기술을, 여자들은 가정 가사를 배웠다. 교실을 이동하기 때문에 숫자가 정확하지 않아 의자가 남는 경우가 있었다.


혼자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던 내가 정미랑 같은 반이 된 후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정미가 가정 시간에 땡땡이를 치자고 말했다.

야, 그러다 들키면 우짤라고?

괘얀타 이마녀(가정 샘) 모른다.

반으로 이동할 때 정미와 나는 학교를 빠져나와 내 자취방에서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다. 정미는 나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피부가 뽀얗고 몸집이 통통했다. 정미가 빌려온 하이틴 로맨스 책을 내 자취방에 쌓아두었다가 야자를 땡땡이치고 와서 읽었다.


그날도 가정 시간이 있을 때 정미와 나는 땡땡이를 쳤다. 자취방에서 배를 깔고 누웠던 정미가 아주 묘한 분위기의 얼굴이 되더니 호주머니에서 슬쩍 뭔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이걸 우째 갖고 왔노?

우리 집수리하는 아저씨 담뱃갑을 몰래 훔쳐왔지.

호기심으로 정미의 눈동자가 빛났다.

설마 필라고?

아저씨가 일하다가 피는데... 맛있어 보이더라. 정미가 같이 펴보자고 내 눈을 응시했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담배를 꺼내 요리조리 보다가 냄새도 맡아보고, 우리 둘은 한 개비씩 물고 불을 댕겼다.


켁.... 켁!!!! 엄매야~~

가슴으로 연기가 들어가면서 호흡이 탁 막혔다. 정미가 제법 아저씨 같은 포즈를 냈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고 정미도 아닌 척했지만 결국 반도 못 태우고

쪼그려 앉은 수돗가에서 담배를 발로 밟고 말았다.

뭣꼬? 맛이 와 이렀노? 어른들은 이런 게 뭐가 맛있다꼬 이런 걸 묵노? 미칬다....

정미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옷에 쾌쾌한 담배냄새가 물들었다. 물로 입을 여러 번 헹구어도 덥덥한 냄새가 가시질 않아 이마를 찡그렸다.



그 뒤 사회? 수업이어서 학교로 돌아왔다. 아가씨 선생님이 갑자기 가방 검사를 실시했다. 모든 소지품을 책상 위로 올리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나는데... 다행이었다. 우리는 담배와 함께 라이터를 버리고 온 뒤였다. 안타깝게 우리 대신 민수가 걸렸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압수당했고 귀가 잡힌 채 교무실에 끌려갔다.

지는 학교 와서 안피웠어어예.

정미와 나는 안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뒤로 땡땡이는 몇 번 더 감행되었지만 결국 이마녀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마녀가 출석을 불렀고 정미와 나는 수업을 빠진 죄로 교실 청소를 한 달 동안 했다. 정미와 친 땡땡이는 고등학교 시절 가장 핫한 추억이 되었다. 먹거리든 장난거리든 내 자취방으로 가져왔던 정미와는 대학교를 가면서 소식이 끊겼다.

아마 정미는 확실하게 재미있게 살고 있을 것이다. 정미만큼 호기심이 다양하고 희한하게 발휘된 녀석은 없었다. 학교를 빠져나가며 개구멍에서 만난 대학생들, 최루탄, 시위대의 함성(87년 민주항쟁의 시간)...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안은 햇살의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 내 삶을 좌우할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었다.


땡땡이 덕분에 무료하고 겉으로만 돌던 고등학교 시절이 그나마 활기를 띠었다. 공부에 코를 완전히 박지도 못하면서 또 아예 발을 떼지 못한 어정쩡한 10대였만 그때 당시는 거창했던 비밀을 간직한 경험은 나를 좀 으쓱하게 했다. 미적분을 풀고 있는 친구들의 뒤통수가 하찮게 보였다. 세상은 미적분처럼 공식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어슴프레 알았다고나 할까?



땡땡이는 빡빡한 삶의 스펀지다.

딱딱한 것 끼리는 부딪히면 서걱서걱 거리는 소리가 나고 결국 어딘가에 흠집이 생기고 만다. 딱딱한 사람끼리도 마찬가지다.  딱딱한 일상도 예외는 아니다. 딱딱하고 빼곡한 것에는 뭔가의 틈과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땡땡이는 삶의 빡빡함을 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스펀지이다. 매일 달리던 도로에서 한 번은 이유 없이 다른 방향으로 길을 꺾는 것, 매일 만나던 사람에게서 벗어나 연락 않던 친구를 만나는 것. 바쁨에서 적막한 고요 속으로 숨어드는 것, 익명에서 비익명의 시간으로 존재를 감추는 것.


땡땡이는 하루의 다른 풍경을 보게 한다.

시간과 방향의 반전은 일상에서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고 하는 매력이 있다. 하루의 다른 스타일을 보게 한다.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관찰자가 된다. 평소와 는 다른 감정들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내가 선 자리를 한 발자국 떨어져 보게 되는 관조자의 시선을 갖게 된다. 아등바등하던 호흡이 부드러워지고 별것도 아닌 것을 제대로 별것 아니게 여기게 된다.  평정심을 갖게 되는 것, 헤헤... 웃게 되는 비법이 땡땡이라고 말하고 싶다.



땡땡이치는 비법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땡땡이치는 시점은 대부분 현타가 올 때로 묘사된다. 암이라고 판정받거나 이별을 하거나 실직 혹은 상실할 때, 일상의 필름을 놔 버린다. 드라마니까. 내가 사는 일상은 그런 반전을 위한 장치가 없으니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도 드라마를 따라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처럼 약간의 우울을 뒤집어쓰거나 과한 명랑함을 업시켜서 계획 없이 도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하는 전화를 받는 사람과 밥 한 끼 먹는 것이 목표라든지, 인스타에 들어갔을 때 눈에 끌리는 곳으로 가보는 게 목표라든지. 어젯밤, 그냥이라고 내 안부를 물었던 녀석에게 가 고기를 사달라고 한다든지... 분명 땡땡이의 방문을 받는 사람도 즐거울 것이다. 고정된 일상에서 확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잠시 쓱 한 발만 뺐다가 다시 뻔뻔하게 복귀하는 것이 땡땡이가 가지는 매력이다. 쨉은 예상치 못하게 훅 날리고 재빨리 빠른 스탭으로 치고 빠지는 것, 그게 땡땡이의 비법이다.



# 땡땡이 버킷리스트

- 여수 겨울바다가 어떤 얼굴인지 가보고 싶고

- 평일날 주왕산은 무슨 색깔인지

- 강릉 파도는 잘 있는지

- 광양의 친구 몸은 괜찮아졌는지 수다하고

- 황토방에서 하룻밤 자고

- 초가집의 일출을 보고

- 다시 박완서의 책을 읽고

- 가을 햇살 아래 친구랑 끊임없이 수다를 하고


그리고 다시 여기로 웃으며 돌아오는 그런 날을 기대하며 버킷리스트 중 올해가 가기 전 하나는 반드시 해보리라 다짐하며 시원하게 날릴 쨉을 고르고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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