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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21. 2020

개보다 사내 메신저를 조심해야 한다

그분에게 그분의 뒷담화를 보내는 일


사내 메신저의 애초 용도는 직원 간 소통을 원활히 하고 업무적 편의를 위해서다. 소통과 업무적 편의에는 뒷담화도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하가 있고 신참과 꼰대, 나이든 사람과 어린 사람, 여성과 남성, 주류와 비주류가 있기 때문에 또한 개성(개같은 성향)을 가지신 분이 어디든 존재하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뒷담화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뒷담화가 없다면 아마도 1인 사업체가 아닐까? 어느 회사든 사내 메신저를 분석한다면 아마 뒷담화 분량은 책 한 권, 혹은 직장어록 대전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을들의 소리없는 아우성, 메신저로 돌려까기.

주로 넘볼수 없는 권력층보다 바로 옆자리에서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이웃형갑질이 주로 타깃이 되었다. 자신도 누군가를 열심히 뒷담화하고 또 우리는 그런 사람을 뒷담화하는 먹이사슬 같은 메신저의 세계. 현란한 손놀림으로 퍼억, 피쑹, 앞차기, 돌려차기, 찍어누르기. 그래야 약자(약으로 잠드는 자)는 숨쉴수 있다. 메신저를 운용하는 전산팀 직원이 올 때 마다 간식을 내놓는 일은 전혀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메신저 뒷담화는 입대신 자판이 바쁘다

업무 중 뒷담화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전개된다.

급하게 처리해야  서류라도 있는 것처럼 다다닥 다다닥 열렬히 자판을 두드린다. 엔터를 누른  손을 자판에서 떼지 않고 화면을 응시한다. 약간의 틈이 생긴다. 저쪽에서 답장을 보낼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다다다... 다다닥 자판을 두드린다.


메신저의 내용에 따라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이야기가  통하면 다다다 하는 동안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든지, 머리를 넘기며 웃는다든지. 다다다....  책상  머리 어디선가에서  다다다.... 조용한 사무실에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무슨 장구의 장단처럼 여기서 다다다 하면 저쪽에서  다다다... 얼쑤~ 주거니받거니. 초짜는 모르지만 3년이 지나면  안다.  사이드에서 메신저로 누군가가 씹히고 있음을. 설마  다다다의 주인공은 나는 아니겠지. 어느 순간 갑자기 쫀드기 언니가 팀장에게로 향하며 그렇죠? 정말 웃기죠! 조용한 순간 이렇게 느닷없는 대사를 치면 이건 100% 쫀드기 언니와 팀장이 누군가를 메신저로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는 증거다. 모두들 뭐가 그렇다는 거야, 어리둥절.



메신저를 보낼 때 발생하는 mistake

한가한 날이어서 내가 쫀드기 언니를 관찰했다.

참고로 쫀드기라는 별명은 전화나 말을 할 때 말을 쫀득쫀득하게 해서 우리끼리 붙인 별명이었다. 여기서 우리끼리라 함은 나이도 쫀드기보다 어리고 직급도 쫀드기보다 낮은 우리를 말함이었다. 주로 쫀드기 언니의 심부름 대상에 속한 그룹이었다.


갑질이라 하기에는 강도가 약하고 그렇다고 부탁이라 하기에는 거절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갑질의 모호한 경계선. 내가 출장을 간다고 하면, 가는 길에 이것 우체국 들러서 부쳐주고 가면 안될까? 좋다. 한두 번 정도는. 그런데 매번 그런다는 것이 문제다. 

자기에게 가위가 없으면 있잖아, 가위 좀 갖다 줄래. 옆에 있는 누군가에 끊임없이 자기 일을 부탁한다는 것인데,  이게 사람 스트레스받게 했다. 또한 전화나 말을 하면 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있잖아~~~~~~~하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면 30초면 끝날 말을 쫀드기 언니는 2분은 족히 넘게 걸렸다.



내가 쫀드기 언니의 메신저 양상을 브이로그 하듯이 메신저로 생중계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끼리 메신저 안에서 쫀드기 언니에게 당한 경험을 쏟아내며 일심동체로 뭉치곤 했다. 그날도 쫀드기 언니가 메신저로 다다다 거렸다.

내가 바로 메신저를 켜고 전송했다.

쫀드기 메신저 접속 완료, 작업 들어감. 메신저의 주인공은 저의 짐작으로 땡선이 언니가 아닐까 . 왜냐하면 이번에 쫀드기보다  먼저 승진했으므로. 손이 아주 자판에서  춤을 춥니다. 김수진 발레리나보다  우아하게. , 쫀드기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데요? 여기서 모두들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메신저의 반응이 없었다. 바쁩니까?라고 치고 있는데 갑자기 메신저가  들어왔다.


쫀드기 언니가 누군데 나한테 이런 메신저를 보내니? 나야?.....(이런 망할 뒤숭스러운 사람아, 수신자를 쫀드기 언니로 지정하다니) 언니! 제가 왜 언니한테 메신저를 보냈죠?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쫀드기, 저기 3층 말숙이 언니 있잖아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보낸다는 게... 미안해요, 언니. 쫀드기 절대 언니 아니에요. 수고 많아요. 그리고 빨리 퇴장했다.


쫀드기 언니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 어깨에 얹고 말숙이가 왜 쫀드기냐고 물었다. 내 옆과 앞자리의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아, 그 언니가 쫀드기를 너무 좋아한데요. 쫀드기를 박스 때기로 시킨데요. 하하하하!! 옆자리 애들도 같이 웃었다.


개보다 사내 메신저를 조심해야 한다.

뒷담화 주인공 이름을 클릭해  그 사람 뒷담화를 왕창 깡그리 써 보낸 뒤 뒤늦게 이름을 확인하는 실수, 자살폭탄을 여러 번 했다. 다행히도 본명을 거론하지 않고 별명을 붙인 덕에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아나기도 했고, 서술한 정황이 애매하게 꼬이는 바람에 약간 아리송한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백배 천배 사죄하고 수시로 커피와 간식을 대령하고 사죄의 의미로 업무를 대신해 준 적도 있었다. 자폭은 나뿐아니라 다른 직원도 간혹 저지르는 실수였다.


쫀득이 언니는 다른 과로 이동할 때도 이렇게 말했다. 이것 좀 들어 줄래? 아휴 진짜. 이제 마지막이니 내가 참는다. 언니 짐을 곱게 들어주었다. 몇 일뒤 메신저가 도착했다. 쫀드기 뒷담화 요즘은 안 하는가봐. 나한테도 쫀드기 소식 좀 알려줘. 허걱! 언니, 미안해요. 저 지금 너무 바빠서.... 메신저 퇴장.

직장에서는 개보다 메신저를 조심해야 한다. 뒷담화할 때는 꼭 수신자를 한번 더 확인해야 한다. 실수로 시장에게 시장 욕을 한가득 적어 메신저를 보낸 자폭한 과장이 멀리멀리 만주 벌판 같은 곳으로 발령 났다는 전설은 실화라고 믿는다. 말숙언니에게 쫀드기 언니가 쫀드기를 선물했다는 말이 있었다. 내 뒷담화를 메신저로 했단다. 괜찮다. 빚은 갚은 셈이다.



#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로망 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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