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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Dec 24. 2020

브런치 글 때문에 방송 출연까지

<EBS 가족이 맞습니다>의 방송출연


#브런치 <작가에게 제안하기>라는 버튼이 왜 있는지 알게 되었다.

20년 8월 25일 브런치 작가 통과 이후  사이다&동치미 같은 글을 썼다. ( 글을 읽고 시원하다는 평이 많았다. 냉수 같은 글이라고 하려다 진짜 찬물 마실 것 같아 사이다& 동치미 같은 글로 바꿈)

전문직도 아니고 출간 작가도 아니며 글로 밥을 삼는 사람도 아니라 마음 푹 놓고 부담 없이 썼다. 미끄럼 타기 좋은 놀이터 마냥 신나게 썼다. 구독자와 라이킷을 늘리기 위해 가족들에게 1000원 줄 테니 한번 눌러달라고 라이킷 구걸도 했다. 우리 집은 모든 게 화폐로 통하니까. 브런치는 못 먹어도 브런치는 자주 방문하며 민트색 동그라미가 주는 시그널(새로운 알림이 있으면 민트점이 뜹니다)에  재미를 들여 갈 즈음, 이런 알림이 떴다.


작가에게 제안하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메일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뭐지. 나에게도 출간 제안이.... 설마!!

쿵쾅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재빨리 메일을 확인했다.

작가님에게서 온 메일...




메일을 읽고 사기가 아닌가 의심도 했다. 워낙에 그런 세상이니까. 얼떨결에  작가님과 통화하고 보니 사기는 아닌 듯했다. 샤인 머스캣 한 알 250원 이야길 하며 웃었다. 다음 메인에 뜬 브런치 글을 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작가는 브런치 가입한 분도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방송 섭외가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https://brunch.co.kr/@sss9053/75


작가님은 몇 마디를 묻고 방송출연 여부를 타진했다. 온 가족이 출연해야 하는 다큐 시트콤이라 가족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했다.

작가님의 메일을 공유하고 우리 가족은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방송출연이라는 새로운 경험이냐 개인의 사생활 보장이냐. 4:2 정도로 방송 출연이 우세했으나 한 사람이라도 출연을 거부하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판단해 힘들 것 같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약간 두리뭉실하게.


작가님은  높으신 분들의 컨펌도 있어야 하니 일단 기획서를 올려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10월 초순쯤이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우리는 방송 출연이 불발되었다고 생각했다. 방송 출연을 반대했던 엘리스도 약간 서운해했다.

11월 초쯤 다시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송 여부는 불투명 하지만 일단 피디님이랑 우리 집으로 방문을 하시겠다고. 헉...!!! 서울에서 마산까지 진짜로 오셨다. 저녁 7시 30분, 모든 식구가 다 모인 자리에. 우리가 또 촌사람들이라 정에 약하다. 한번 틔인 앞면과 자가용으로 달려온 천리길의 노고에 안돼요, 할 수가 없었다. 피디님 고향이 우리 동네, 슬금슬금 자연스럽게 출연 쪽으로 가더니, 촬영일자가 잡혔다.


#가족이 맞습니다를 촬영했다.

EBS의 새로운 다큐 시트콤, 11월 24일부턴가 촬영을 했다. 4일 동안.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가족들의 일정에 맞춰 편안하게 촬영했다.

촬영하기 전 대충의 콘셉트를 알려주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연출을 부탁했다. 우리 가족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비슷 맥락이지만 약간의 포인트를 짚어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카메라가 도착한 첫새벽에는 신경이 쓰여 거의 잠을 설쳤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인터뷰도 낯설었다.

딱 이틀째가 되니 자연스러워지더니 카메라를 심하게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거의 하루를 우리와 같이 스텝을 맞추었다. 같이 먹고 같이 움직이고. 틈틈이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피디님의 배려가 상당했다. 하루 찍고 나면 그다음 날 촬영신을 서로 조절했다.


집 정리를 좀 했어야 했는데 바쁘기도 했고 워낙 식구가 많아 정리해도 딱히 표가 나지 않을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촬영을 했다. 아, 우리 집 나가면 산만한 것 같아 부끄러운데요. 다 그래요. 피디님은 좋은 방송 찍을 욕심에 잘한다, 괜찮다. 좋다를 연발했다. 과연 방송에도 그렇게 나올까 걱정되었다.

온 가족이 다 있는 주말에 폭풍 촬영이 이루어졌다. 남편은 하루 휴가까지 내었다. 남편이 메인이란다.

우리 가족의 콘셉트는 기분파라 쓰는 아내와 짠돌이 남편의 콘셉트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콕, 잘도 집어 냈다. 딸들은 인터뷰 때 나보다 더 말을 잘해서 혹시 연예인의 기질이 흐르는 건 아닌가. 머릿속에 있는데 막상 인터뷰를 하면 엉뚱한 말이 나왔다. 아, 사투리는 또 어쩔 것인지.

옆에서 보면 저 정도밖에 못하나 하는데 실제로 하면 진짜 잘 안 되는 카메라 효과. 나도 그렇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카메라 감독님, 스텝들에게 감사합니다, 말하는지 알겠더라. 4일 촬영하는데도 우리가 걸을 때 뛰어다니고 가는 곳마다 미리 촬영 섭외해야 하고. 손 시려도 카메라 들어야 하고, 우리는 맛있는 거 먹는데 굶으며 촬영했다. 손 떨리면 안 되니까 체력도 좋아할 듯했다. 피디라는 직업이 전문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육체적 노동의 최전선이 아닌가. 나도 연예인이면 딱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카메라도 시간이 흐르니 친근해지는 생명체,

왜 피디님이 자꾸 말을 시키고 칭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상담으로 치면 라포 형성 과정, 어색함을 제거하는 수순이었다.


카메라 촬영 준비중이신 피디님들.


#아휴, 다른 집은 다들 으리으리하더라만

가족이 맞습니다. 첫 화를 보고 기가 죽었다. 오머나 저 집은 왜 저렇고 좋고 깔끔한 겨. 이쁘기까지 하네. 우리 딸들이랑 나랑은 화장도 별로 안 하고 찍었는데 저기는 마스카라도 했구먼. 야, 큰일 났다. 우리는 거지발싸개 모양으로 나오겠다.

다음날 피디님께 문자를 넣었다. 엔젤편집 부탁해요. 우린 너무 가난하게 나와요. 피디님이 괜찮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촬영할 때 보다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 더 기죽게 만들었다. 뭐야, CEO 가족까지. 아니 우리랑 컬리티가 다른데. 다들 왜 저렇게 잘 사는 패밀리들이지. 가족도 단출하고 품위까지 있어 보이냐

괘얀타. 방송 잠깐 나가고 나믄 뭐 잊아뿌지.

사람 사는 기 다 똑같지 뭐.


내가 방방 뛰니 봉여사는 이제와 촬영한 걸 어쩔거냐고, 방송 나갈 때 그때뿐이라고 위로한다. 흠, 어무이 그럴까 예. 찍어갔으니까 저그가 알아하겠지.

봉여사는 나보다 강심장이다. 아휴 인터뷰할 때  화장을 더 디테일하게 할걸. 우리 집이 제일 평범해 주눅이 들었다.


#방송 촬영 후에 다가오는 것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카메라가 일상을 따라다닌다는 것은 자꾸 무언가를 의식하는 일이다. 그냥 쉽게 보고 웃고 떠들고 했던 것들, 방송의 예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4일 동안 따라다니던 카메라가 없자 알수 없는 시원 섭섭함, 후련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다. 카메라는 짐이기도, 자랑이기도 한 묘한 생명체였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보고 어시장 어르신들은  왜 자기를 찍냐고 항의도 했고 가게들은 좋아하셨다. 언론 노출에 대한 각자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피숍을 가는 장면은 추다방에서 찍었다. 다행히 2단계 격상 전이라  촬영이 가능했다.

(통 편집되어 버렸다 ㅜㅜㅜ)

작가들은 방송의 소재를 찾기 위해 SNS의 바닥을 샅샅이 훑는 실력을 갖추었다. 너튜브, 블로그, 브런치까지. 기가 막히게 집어서 지방까지 오는 걸 보고 작가들의 촉은 참 대단하다 싶었다. 브런치 글이 다음 메인에 뜬 날짜는 하루정도? 였는데 그걸 보고 출연 섭외를 했다는 게 신기했고 이후 방송 콘셉트도 내 브런치 글을 보고 다 잡았다.

크지는 않지만 츨연료도 받았고 협찬도 받았다.


무엇보다 방송출연을 통해 가족들만의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 제일 값진 일이다. 아마 10년 후에 이 영상을 보며 또 우리는 지금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사생활 노출이 되기도 해서 약간의 리스크는 있지만 가족들에게 좋은 경험이되었고 우리가 즐거웠으므로 괜찮다.


12월 23일 저녁 7시 45분, EBS 가족이 맞습니다

방영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다. 언니 공동체(오소희 작가님을 필두로 한 언니 공동체)의 적극적 지지, 우리 아쏘공 (아줌마가 쏘아올린 공) 멤버들이 마치 자기가 출연한 것 마냥 홍보해서 이거 담에 커피라도 사야 하나. 그깟이것 사지 뭐. 쓰는 여잔데. 부끄러워 알리지 않았는데 방송의 힘은 대단한가 보다. 10 몇년 만에 친척이 연락도 해오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방송은 연출과 편집이 꽃인것 같다. 각자 따로 찍어서 몰랐는데 하나가 된 우리 가족을 보니 우리 참 시끄러운 가족이다.

브런치, 너 뭐니.

파급력이 이 정도였어?


코로나로 변한 가족의 일상을 다큐로 보여줍니다.


EBS가족이 맞습니다 제4화 아빠는 스크루지 중에서




코로나 시기, 또 하나의 시끌벅적한 추억이 우리에게로 왔다. 12.24일 크리스마 이브, 딸들과 함께하는 매거진을 열기로 합의했다.

같은 주제로 나와 한데렐라와 엘리스가 나란히 글을 쓰기로....글을 쓴다는 건 일상의 시간에 렌즈 초점을 맞추는 일, 돈보다 글맛을 물려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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