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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6. 2020

너무 예쁘셔서 그런데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심쿵하는 여자 마음을 아는 남자


공주병이라서 한데렐라

10월 26일은 큰딸 한데렐라 생일이다. 참고로 한데렐라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유는 나는 이쁘니까를 입에 달고 다니는 공주병 때문이다. 안타깝게 아직 공주병을 고치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다.


한데렐라는 현재 임고생(임용고시준비생)이다. 동네 독서실을 매일 다니는데, 독서실에서 오자마자 노란 포스트잇 하나를 듣고 망아지처럼 방방 뛰었다. 우리는 뭔데 뭔데 하며 한데렐라가 들고뛰는 메모지로 모두들 코를 박았다. 노란 스티커에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 예쁘셔서 그런데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뒤에 번호)



한데렐라가 기쁨에 차 말했다. 이게 내 신발안에 붙여져 있었다고! 어휴, 정말 고딩들조차 이쁜 건 알아가지고 화장도 안 하고 맨날 모자 쓰고 다니는데  그래도 이쁜 건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나 봐. 내가 그렇게 어리게 보이나 봐. 고딩들 조차 나한테 이런 스티커를 다 붙이고. 정말 난 너무 이뻐서 큰일이거든. 근데 내 신발에 붙인다는 건 내 신발을 봤다는 건데... 그렇게 나를 관찰했단 말이야? 어휴, 이놈의 인기는 어떻게 식을 줄 몰라. 역시 나는 고딩들 눈에도 이쁘게 보이나 봐! 역시 난 공주가 맞아!


한데렐라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자들에게 자주 이런 쪽지를 받았다. 그 쪽지를 집에 들고 와 자랑하거나 가족 단체방에 올리며 자신의 미모가 뛰어나며 인기가 많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최근까지 미술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에서도  자신의 미모를 보고 남자 초딩들이 부끄러워한다고, 자기는 너무 이뻐서 큰일이라나, 어려도 보는 눈은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콧대를 세웠다. 그때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약도 없는데 큰일이다. 세상에 이쁜 여자는 다 얼어 죽었는가 보다 라고 슬슬 피해 갔다.


그래서 닉네임이 한데렐라다.


한데럴라가 그 스티커를 하늘로 치켜들고 거실을 빙그르 한 바퀴 돌았고 엘리스가, 야 나도 좀 보자 라고 하며 스티커를 뺏으려고 했는데 절대로 한데렐라가 안 뺏기려고 도망을 갔다.

야, 그기 독서실에 다 고딩들 아니가? 아무리 걔들이 눈이 삐어도 니 그렇게 어리게 안보이거든? 엘리스가 겨우 그 스티커를 낚아챘다. 그리고 (뒤에 번호)라는 내용을 보고 스티커 뒷면을 돌리는 순간, 아.... 이 번호는 뭐지? 어디선가 본 듯한.....


끝 번호 네 자리가 엄마 전화번호랑 뒷자리가 같은 것은 우연인가?



잠시 후 엘리스가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 전화번호는 막내아들 어린 늑대의 전화번호였다. 한데렐라가 들켰네,라고 말했다. 누나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이 막내아들이 독서실 누나 신발안에 이 스티커를 몰래 붙여 놓고 간 것이었다.


누나 위한 생일선물

생일 선물이야. 잠시라도 가슴 설렜지?

너무 오랜만이라 더 좋았을 거야.

담담하게 말하는 남동생을 누나 둘이 옆구리 발차기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가 껴안았다가 난리 블루스를 떤다. 야, 나 진짜 설렜잖아. 번호 준 나쁜 놈아! 그러니까 고백 스티커 받았다고 정신줄 놓지 말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니는 맨날 네가 이쁜 줄 아는데 고딩들 한테 쪽지 받을 만큼은 아니거든! 그러다 한데렐라가 어린 늑대를 갑자기 족친다. 근데 이거 가만 보니까  수법이 많이 해본 솜씨 같아. 번호도 뒤에 적는 거랑. 너 여자애들한테 이런 거 많이 해봤지? 빨리 고백해! 남동생을 닦달하는 한데렐라의 복수가 눈에 훤히 보인다. 동생에게 속아 넘어간 게 분한 거지. 그렇게 잘난 척을 했는데...


저녁에 한데렐라 생일파티를 하며 우리 모두 고딩에게 고백받은 날을 축하해,라고 박수 쳐주었다. 아들의 사소한 장난에 나도 깜박 속아 넘어갔다. 누구에게든 관심을 고백받는 건 마음 설레는 일이다. 밀란 쿤데라 소설 <정체성>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남자들이 아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실의에 빠진 샹탈에게 샹탈의 동거남인 장마르크가 샹탈에게 매일 고백의 편지를 보내는 내용이다. 장마르크는 편지를 쓰기 위해 샹탈을 더 깊이 있게 주목하게 되면서 샹탈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아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누나가 남자들에게 고백하는 쪽지를 받고 기뻐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이런 이벤트를 벌였을 것이다.


올해 열여덟 살인 아들은 여자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녀석이다. 심쿵하는 여자 마음을 터치할 줄 아는 놈, 이거 카사노바의 기질이 있는 건 아닌가? 돈 안 들이고 가장 지혜로운 생일 선물을 누나에게 안겨준 어린 늑대가 과연 앞으로 어떤 여자 친구를 만날지  기대된다. 누나를 상대로 한번 시뮬레이션을 해 본건 아니겠지? 떠들썩한 일요일이 또 한바탕 소동으로 지나간다. 일곱 식구의 웃음으로 배부른 저녁이다.


예쁜 꽃이 피었다기에

꽃 보러 왔다가

그대 생각만 실컷 했소


솔직히 말하면 앞에 핀 꽃보다

내 안의 그대가 더 예쁜걸

난들 어떻게 하겠소


솔직하게 표현하고

생각대로 행동한 게 죄가 된다면


그 죄!

행복한 마음으로 받겠소


-고백/ 윤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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