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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24. 2020

서울은 진짜 코 베어 가는 곳이 맞다

                 서울은 참말로 숭악하다



1. 숨길수 없는 경상도 사투리

마산에서 서울로 출장 가는 일은 흔하지만 늘 부담된다. KTX로 왕복 6시간. 허리가 휠 지경이다.

몇 년 전 지하철 타기가 껄끄러워 서울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서울 가서 촌티가 나면 택시기사가 빙빙 돌아가 요금을 일부러 높인다는 경상도식 카드라 통신이 있었다. 최대한 서울 말투에 근접하기 위해 엑센트를 연습했다. 광화문요! 광화문예...경상도 사투리의 강한 악센트가 깡화문으로 발음되었다. 또 연습했다. 깡화문요. 네이버에는 왜 영어나 다른 나라 발음은 있으면서 서울 발음은 없는가? 기차 내내 속으로 연습했다. 강화문요.... 엑센트를 앞에 두었다가 중간에 두었다가 끝에도 두었다가.  깡~화문, 깡화~문, 깡화문~ 구조까지 연습해 보며 어느 것이 가장 서울 억양에 가까운지 입을 굴려보았지만 발음을 하면 할수록 헷갈렸다. 그러다 갑자기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노래가 생각났다. 눈 내린 광화문 사거리.... 그래 앞에는 힘을 빼고 뒤쪽 문을 조금 길게 빼자. 호기 있게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행선지를 물었다. 아저씨 예, 강화문~요. 그 뒤로 아무 말을 안 했는데 갑자기 기사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부산 대구? 경상도?


허걱, 저 아저씨 어떻게 알았지? 한참을 있다가 말했다. 마산에서 왔습미더. 기사 아저씨가 젊었을 적에 자신도 마산에 산 적이 있다며 아구찜에 마산 수출 자유지역에.... 호록 호록, 스멀스멀.. 아마 광주에서 왔다고 해도 그기 산 적이 있었다고 했겠지. 아직도 39사가 창원에 있냐고 물었다. 아입미더, 진즉에 옮깄지예! 나도 모르게 아저씨랑 삼촌처럼 대화했다. 다행히 택시비도 5천 원이 안 넘었다. 덕분에 둘러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휴, 그나마 착한 아저씨 만나 다행이다. 그 뒤로는 택시 말고 지하철 타는 걸 익혔다. 서울 사람들에게 숨길수 없는 건 가난과 눈빛이 아니라  경상도 말투였다. 경상도 티를 가급적 내지 않고 서울 사람처럼 묻히기 위해 최대한 입을 열지 않았다. 표정도 일부러 화난 것처럼 무뚝뚝하게 지었다. 턱도 조금 들었다.



2. 서울은 진짜 숭악하다

얼마 전 서울의 숭악함을 제대로 목격했다.

일행이 마산 1명, 울산 1명 서울 2명이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회의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근처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남자 두 분이 그 사이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두 분이 흥분하며 시끌벅적하게 들어왔다. 담배꽁초를 버리다 구청 단속반에 걸려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것이다.

4만 원 이란다. 꽁초 버리고 담배 한 보루 값이라니? 진짜로 과태료 발급받은 영수증을 갖고 왔다. 그걸 본 나와 울산에서 온 일행은 동시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 서울 숭악하네~


숭악하다는 흉악하다. 무섭다 등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경상도도 지역에 따라 사투리가 좀 다르다. 남해는 수~악하다 라고 한다. 최대한 수에 강한 엑센트를 주어야 한다. 서울 진짜 수~악한 동네네


그것도 담배꽁초를 버리고 2m를 떠나야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버린 후  바로 자리에서 단속반에 걸리면 버린 게 아니라 잠시 놓친 거라고 다시 주우면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우겨서 단속을 피한 적이 있단다.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고 서너 발자국을 떼어야 과태료 부과가 된다고. 촌놈 둘은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옴마야! 웃긴데이....


<서울의 숭악함>은 커피를 마시는 내내 터져 나왔다. 무단 횡단하다 걸려서 20분 동안 벌었던 이야기, 3천5백 원짜리 밥 먹고 카드 긋는 이야기. 그리고 커피숍을 나왔는데 진짜로 단속반이 사냥개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담배 피우는 남성 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중구 롯데호텔 건너편 GS편의점 근처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거 그거 아니가? 깨진 유리창 효과, 담배꽁초가 쌓여있으니 그걸 보고 흡연자들이 계속 여기 와서 흡연을 하는. 정말 담배꽁초가 모아 놓은 것 마냥 수북이 쌓여있었다.

애나 숭악하다, 담배꽁초 고깐거 버맀다꼬 벌금을 4만 원이나 메기고. 이런 동네서 우에 사노?



3. 몰토 아다지오처럼 느린 이 동네가 좋다

경상도는 내가 빠삭하다(빠삭: 사투리가 아님)

경상도에는 고민이 있다. 젊은이들이 올라가면 안 내려온다. 얼마 전 경상도내 고등학교마다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도내 대학 스마트융합공학과 입학하면 모든 학비 공짜, 매월 생활비 50만 원 지원, 취업보장. 20년도에 처음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버스 광고도 붙었다. 또 어떤 대학은 입학생 전원에게 학비를 면제해주는 대학도 있다. 그만큼 경상도 젊은이들이 서울로 가면 안 내려오기 때문이다.


in 서울 대학생 하나를 두면 최소한 월 100만 원 이상의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지방 부모들은 자동 등골 브레이커로 등록된다. 얘가 서울 있는 대학을 다닌다면 아이고 힘들겠네요, 라며 아는 사람에게 밥은 얻어먹는다. 홍대도 신촌도 강남도 가보았지만 그래도 나는 싱겁고 슴슴한 도시가 좋다. 질퍽한 숭늉 닮은 마산이란 동네가 좋다.


마산 산복도로를 올라서면 밤 야경이 다 보인다. 마창대교 불빛이 바다를 향해 멋지게 반짝거린다. 20분 정도만 가면 구산면 바다가 나오고 뒤로는 무학산이 있다. 남해와 거제, 통영까지 1시간  조금 넘게 달리면 해양관광이 가능하고 신선한 해산물이 많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차가 밀리긴 하지만 살인적이지는 않다. 공간의 밀도가 듬성듬성해서 숨 막히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담배꽁초 버린다고 아직 단속하는 곳은 없고 세종문회 회관은 없지만 3.15 아트센터가 있다. 경복궁은 없지만 창원 용지호수가 있고 북한산은 없지만 천주산이 있고 인사동은 없지만 창동은 있다. 겨울이면 장작난로에 구워 먹는 조개구이는 가격 대비 맛도 아주 예술적이다. 30분만 달리면 천지가 바다다. 그런 자연에 흠뻑 빠졌다 오면 사는 게 달달해진다. 열 받았을 때 먹는 초콜릿처럼.



행복은 발견이 아니라 잦은 횟수, 빈도라고 했다. 자주 느낄수록 늘어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그런 면에서 마산 아짐매의 행복지수는 높은 편이다.

서울에서 마산역에 도착하면 마음이 느긋해지며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휴하고 내뱉는다. 코로나 시국에는 서울 가는 게 더 힘들다. 템포가 빠른 젊은 친구들은 서울이 좋을지 몰라도, 느리고 어설프고 허당스런 구석이 있는 나는 몰토 아다지오 템포를 가진 동네가 딱이다. 숭악한 서울은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샘님~같아서 별로다. 이건 나만의 피셜이다.



방 창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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