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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25. 2020

쪽팔려도 뭐라도 하는 게 낫다

간절함에 베팅한다


고용노동부에서 직업훈련을 지원해주는 배움 카드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자격증이나 취업에 필요한 스킬을 갖추도록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연륜있어 보이는 분이 내 앞에 앉으셨다. 머뭇머뭇 하시더니 드론 조정과 촬영을 배우는 직업훈련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다. 신분증을 확인하니 70살, 난처함이 난감하게 피어났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냐고 물었다.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있었고 PPT나 엑셀 기본은 할 줄 안다고 대답하셨다. 그 연세에 그런 걸 할 줄 안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다. 드론은 왜 배우려고 하세요? 취업하려고요. 요즘 드론이 유망직종이라고 해서 이걸 배우면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요. 난감했다. 이분의 신청을 받아들여야 할지 안된다고 돌려보내야 할지. 안온하고 세상의 풍파를 이겨온 조용한 강단이 베여있는 분이었다.


두 개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드론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이 연세에 어디에 취업하실 수 있을까? 아니야. 이렇게 적극적인 분이 어딨어. 이전에 컴퓨터를 다뤘다고 하잖아. 나이로만 판단하는 건 고정관념이야.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어 야 해.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그분께 솔직한 내 심정을 말씀드렸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민원인에게 솔직하게 내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상담하러 오신 분에게 내 입장을 상담하는 것, 역지사지의 원칙은 내담자와 마찰을 가져온 적이 없었다. 그분은 솔직한 내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으셨다.


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6개월에 200만 원이 넘게 소요되는 직업훈련이다. 선생님이 하시면 다른 분이 교육을 못 받으실 수도 있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연령이 높으실 경우는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은 너무 적극적이시지만 의지만으로 제가 선뜻 지원을 결정할 수 없다. 솔직히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다. 내 말에 그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가 된다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미안하실 일은 전혀 아닙니다.


나이 먹는 게 미안한 일은 아니다, 절대로.

한 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늙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진짜 늙은이가 된 것 같다고 웃으셨다. 어깨가 축처져 가시는 분의 뒷모습이 안타까웠다.

저기, 선생님! 다시 그분을 돌려세웠다.

며칠을 더 기다려 보고 드론 수강인원이 다 차지 않으면 그때 선생님께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이라도 조그마한 기회가 주어지자 그분이 활짝 웃으시며 딸뻘인 나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셨다. 자꾸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 자꾸 고개를 숙였다. 그분의 간절함이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나이 먹는 건 미안한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줄어드는 건 확실하다.

드론 조종 직업훈련은 인원을 다 채우지 못했고 그분도 훈련을 받으셨다. 그분이 적어 낸 취업훈련계획서에는 젊은이들보다 더 꼼꼼하고 자세한 취업계획이 적혀있었다. 느려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돋보기 너머로 글자 하나를 적을 때도 집중하는 눈빛과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  대단했다. 참 멋지게 사시는 분이다. 단정한 필체도 어찌나 정성스럽든지. 그분이 취업을 하셨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다른 업무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나이와 비례했던  열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살까 말까 망설일 때는 사지 말고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해라.

아이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내 앞자리에 앉기까지 그분도 많이 망설이고 인터넷을 뒤지며 많이 주저했다고 했다. 늙은이의 쓸데없는 욕심은 아닌지, 무모한 건 아닌지.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위로하며 왔다고 했다. 그분처럼 나이 들면 참 멋있고 괜찮겠다. 말이 느리지도 많지도 않고 톤은 낮고 편안하며 자기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 어딘가에 세월의 원숙함을 숨겨둔 포스였다. 그 안에 그분의 간절함이 보였다.  


젊은 친구들에게 나는 강권하는 편이다, 주책맞게.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도 하라고 한다. 모임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작은 소모임도 운영해 보고, 글도 써라. 그것이 무엇이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 배우라고. 너의 달란트는 아직  한 번도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입시위주의 교육, 직장생활, 육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은 지금부터이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한다고. 하다는 것은 실천을 기반한 동사라고.


안 하고 못할 핑계는 수도 없이 많지만 하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마음을 먹느냐 안 먹느냐, 내가 얼마만큼 간절하냐의 문제이다. 어차피 본인의 선택이다. 빛길 작가님의 브런치처럼 선택의 또 다른 뜻은 기회(찬스) 일 수도 있다. 꼭 성공을 향한 기회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더 내밀화 할 수 있는, 삶이란 여정에 다양한 꽃을 피워 볼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어떤 선물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70세 선생님의 간절함에 나는 베팅했다. 간절함은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힘을 갖는다. 당신의 간절함에 어떤 기회가 베팅될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나의 기회에 베팅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쪽팔리더라도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 안도현 시집처럼 <간절하게 참 철없이>처럼 덤비는 것이다. 누가 우리 삶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해  갖다 놓든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덤벼야 한다. 늙음이 더 덮치기 전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항상 갈망하라, 항상 무모하라"

-스티브 잡스


이놈처럼 무모한 녀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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