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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Nov 27. 2020

갱년기인데 실업급여 됩니까?

공감은 스킬이 아니라 마음이다



고용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실업급여 신청을 주로 한다. 실업급여는 고용센터의 터줏업무인 셈이다. 원하지 않는 실직이 닥쳤을 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국가가 실업자에게 지급하는 사회안전망이 실업급여 제도이다. 자격조건은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하며 비자발적 실업일 경우만 해당된다.

코로나로 인해 실업급여 지급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안타깝고 대단한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갱년기인데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고용노동부 1350으로 걸려온 상담전화였다. 핵심은 갱년기가 심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이것도 실업급여 지급 사유가 되느냐는 상담이다. 주변의 다른 상담사들이 모두 빵 터질뻔한 얼굴을 했다. 다소 황당한 상담이었다. 전화상담원인 그녀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럴 수 있다.


선생님도 갱년기시군요. 어휴 힘드시겠어요. 실은 저도 갱년기이거든요. 감정 조절하기 힘드시죠? 저도 그래요. 어떨 때는 막 화가 났다가 아무것도 하기싫고... 식은땀도 나고 잠도 잘 못 자겠고....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셨군요.

어떡해요? 그런데 의사가 갱년기를 질병코드에 안 넣었네요. 아마 남자 의사가 많아서 그럴 거예요. 남자 의사는 갱년기 증상이 어떤지는 알지만 얼마나 힘든지는 잘 모르거든요. 자기가 안 겪어 봤으니까요. 그래서 안타깝게  갱년기가 질병에 안 들어가네요. 질병에 안 들어가니 실업급여 신청 자격은 안된답니다.


저도 그래서 갱년기인데도 이렇게 선생님 전화를 받고 있잖아요.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열이 확확 올라서 죽을 것 같지만 먹고살자니 이렇게 일이라도 해야죠.

갱년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그녀는 감사하다, 열심히 하시니 보기 좋다는 격려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주변의 동료 상담사들이 무슨 큰 계약이라도 따낸 것처럼 그녀를 향해 엄지 척을 했다. 공감은 함께 먹는 감이다.


갱년기는 실업급여 사유가 안됩니다, 라는 말보다 훨씬 감동적인 상담이며 안내였다.



민원인과의 충돌은 교통사고처럼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출장을 다녀온 후 고용센터가 시끄러웠다. 센터 직원과 민원인이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 신청이 안된다. 그것을 모르는 민원인이 내가 고용보험을 냈는데 왜 실업급여가 지급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이분은 자발적 실업은 실업급여 지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스스로 퇴직하신 분이셨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든지 둘이서 목소리 베틀 하는 줄 알았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뾰족한 해답이 없는 싸움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급기야 언성은 더 올라가 감정까지 격앙되어, 너는 무슨 공무원이 그리 싸가지가 없냐? 내가 가만 두지 않겠다. 신문고라도 올리겠다. 또 담당 직원은 하세요. 저는 원칙대로 처리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선생임이 실업급여를 받을수는 없습니다. 규정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받아 쳤다. 보고 있기가 그래서 결국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선생님, 잠깐 여기로 오시겠어요.

화가 난 그가 내 앞자리로 앉았다. 선생님,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그러자 그가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다. 16년 동안 회사를 다녔고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길 예정으로 퇴사를 했는데 일이 잘 안되어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애들이 대학생이다. 당연히 실업급여가 되는 줄 알았다. 충분히 안타까운 사정이다. 실업급여에 대해 조금이라도 찾아보거나 아는 분들에게 정보를 받았다면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분은 정직하게 일만하고 살아오신 분이다.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인지 모르고 착하게만 사신 분이다.


그분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고개도 끄덕여졌다.  선생님, 이제 제가 말씀 좀 드려도 될까요? 그분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질문형 화법은 내담자에게 집중을 이끌어 낸다.

이미 이직확인서 사유에 자발적 사직으로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드릴수가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고용보험은 직접 납부하신 게 맞지만 실업급여라는 제도는 어쩔 수 없이 퇴사하시는 분들에게만 지급하는게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무너질 경우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담당자가 이 규정을 어기고 실업급여를 지급하게 되면 문책을 받습니다.


그분의 주름진 표정이 앞보다 많이 누그려졌다. 그렇게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면 될 것을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니 내가 화가 난 것이다. 그렇죠. 저희가 워낙 많은 민원을 대하다 보니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분은 나와 20여분을 이야기하다가 소리를 질러 미안하다고 하시며 고용센터를 나가셨다.


그분을 센터 문 앞까지 배웅해드렸다.

대학생이 둘이라는 말이 안쓰러움로 맴돌았다. 50대 중반 투박하고 주름진 가장의 뒷모습은 낡은 서까래처럼 추레하고 위태해 보였다. 나 다니엘브레이크 영화가 떠올랐다.

선생님, 저기....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요.

고용센터를 빠져나와 내가 속닥하게 말했다. 그분이 눈빛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 이거는 영업비밀인데요.... 속닥속닥.... 이러쿵, 저러쿵.

휑하니 차가 도로를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다른 사람은 못 들었겠지. 그분이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얼굴이 환해지셨다.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휴,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앞으로는 뭐든  알아보시고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그의 발걸음이 좀 가벼워 보였다.


- 나 다니엘브레이크 대사중에서





영업비밀은 밝힐 수 없다. 그게 악용되면 안 되니까.

업무 담당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잘 아는 것을 보통의 사람들은 모른다. 너무 잘 아는 빠꼼이들도 많지만 의외로 정보에 무지한 사람도 많다. 혹은 주관적 오류에 빠져 객관성을 잃어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럴 경우 민원인과의 갈등은 늘 생긴다. 돌발적으로 부딪힌다. 달라고 하는 사람과 줄 수 없는 경우의 팽팽한 대치는 우리에게도 스트레스다.



공감은 스킬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마음을 헤아리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여유가 없을 경우다. 공감은 스킬이 아니고 마음이다. 사람의 딱한 처지에 마음 한켠을 내어주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 된다. 나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누군가는 핀잔을 주지만 어쩔 수 없다.

가난을 겪어 본 사람 눈에는 가난의 그림자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도와주지 않으면 그날 밤 내가 편하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다. 선의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나를 위한 것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불운과 행운이 교차하는 일이다. 빨간불과 파란불이 교차하는 신호등처럼. 그러니 빨간불을 만났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기를. 그가 건너는 파란불이 오래도록 깜박거렸다. 은행잎이 휘날리는 가을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에게도 이 가을이 그렇게 기억되기를.


정면으로 겨울이 오고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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