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사는 몇 가지 질환들
수년 동안 응급실과 대학병원에서 제가 겪었던 일상입니다. 그리고 많은 의료진들이 비슷하게 지금도 반복하고 있을 일상생활입니다.
어제도 밤을 새우고 일을 했더니,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옵니다. 지금이 아침 7시니까 어제 아침부터 24시간 병원에서 연속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잤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띵한 건 물론이고, 잠이라도 깰까 세수를 하는데 눈이 따갑다 못해 빨갛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내 두 눈은 도저히 이렇게 못 살겠다며 얼굴에서 뛰어나와 분리 독립을 외칠 기세입니다.
전형적인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입니다. 제 때 잠을 자고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할 텐데 대학병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마음 편하게 먹었던 적이 손에 꼽습니다. 동료들과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기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시간이 안 되면 당직실에 있는 과자나 냉동실에 있는 핫도그로 허기를 달랩니다. 회사에 라꾸라꾸 침대가 있고, 냉장고 냉동실에 냉동식품이 가득 차 있으면, 즉시 탈출하라는데 저는 제 발로 냉동식품과 당직실에 2층 침대가 수십 개가 있는 병원에 그것도 3: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거기다, 밤 10시에 먹으라고 도시락도 꼬박꼬박 나옵니다.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그나마 여유 있는 시간이 밤 10시 전후이다 보니 맨날 야식입니다. 얼마나 자주 통닭, 족발, 피자를 시켜 먹었는지 그 맛있는 야식조차 입에 물립니다.
똥을 눌 때뿐만 아니라, 샤워할 때도 핸드폰 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밥 먹을 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루에도 적게는 수십 통에서 많게는 백 명 통까지 옵니다. 한 동기는 하루에 2 백통이 넘는 전화가 와서 과열로 휴대폰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띠리리."하고 소리가 나서 전화기를 봤는데 전화가 오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응급실 근무할 때는 12시간 근무, 12시간 교대 또는 24시간 근무 24시간 교대입니다. 아침 9시에 가서, 밤 9시에 퇴근하면 그나마 나은데, 밤 9시에 출근해서 낮 9시에 퇴근하면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속도 속인데, 집에 와서 씻고 자려고 해도 밖이 밝아서 잠이 안 옵니다. 밤 근무를 위해서 억지로 잠을 청합니다. 한 5초 지났을까, 잠에서 깨면 주위가 어둡습니다. 벌써 저녁 7시 30분.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감정이 무뎌집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고, 또 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 뭔가를 입에 쑤셔 넣고 씻고 출근을 합니다. 점점 감정이 메말라가고, 얼굴이 굳어갑니다. 마냥 사람이 무기력 해 집니다. 아,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 싶습니다.
작년부터 주 80시간 근무로 많이 좋아졌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36시간 당직 후, 12시간 오프 체재였습니다. 36시간 근무를 마치고, 저녁 6시에 집으로 가려는데 담당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집에 갈 수가 없습니다. 중환자실로 내리고 나서 기본적인 조치를 하고 나면 2시간을 훌쩍 지납니다. 그러다 보니 평일 저녁에는 약속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휴일이나 명절에는 24시간 당직 후, 24시간 오프이다 2년간 명절에 고향에도 못 갔습니다.
의사는 그래도 좀 낫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고 버팁니다. 짧으면 인턴 1년에 레지던트 3~4년을 합해서 4~5년, 길게는 펠로우 몇 년을 포함해서 7년 정도만 버티면 됩니다. 아마, 평생 이렇게 살라고 하면 아무도 못 버틸 겁니다.
그런데 간호사나 응급구조사는 까마득합니다.
10년 이상, 한 병원에서 계속 근무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병동에 딱 한 명뿐인 수간호사 정도가 되지 않으면 평생 3교대로 야간근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근무시간은 낮 근무인 데이(Day, D)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저녁 근무 일명 이브닝(evening, E)은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밤 근무(Night, N)는 밤 9시부터 다음날 7시 30분까지 입니다. 한 달에 데이, 저녁, 밤 근무 중 20일을 일하고 10일은 쉽니다. 하지만 이렇게 칼처럼 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수인계가 제시간에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거기다 병동에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원래 맡은 일은 다 하고 가야 합니다.
D: 07:00~15:00
E: 14:00~22:00
N: 21:00~08:00
/ : 오프
DE: 07:00~22:00 (15시간 연속 근무, 최악, 빨간색)
HD: 4시간 근무
S: 10:00~18:00 or 11:00~19:0
N / D: 밤새고, 23시간 쉬고 다음날 아침 7시부터 근무. 오프가 하루 있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밤이고, 내일 아침에 7시까지 출근이라 가장 최악의 오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어서 가장 최악의 스케줄 중 하나
약속을 잡으면 최소 한 달 전에는 미리 스케줄을 잡아야 합니다. 남들처럼 정해진 주말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약속 잡기가 어렵습니다. 거기다 누군가가 한 명이 갑작스럽게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서 병원에 못 나오면 누군가가 메꿔야 합니다. 8시간이 12시간이 되고 또 16시간이 됩니다. 누군가가 휴가를 간다고요? 그럼 그 달은 3~4일은 더 출근해야 합니다. 네? 임신을 했다고요? 임산부는 야간 근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최악인 야간 근무가 늘어납니다. 출산 휴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일명 땜빵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병원과 시스템에 적응하는데만 3개월은 걸립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데이에는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니, 늦게까지 잊을 수 없고, 이브닝 근무는 당연히 패스, 밤 근무는 9시부터이니 오프날 아니면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들 주말에 오프를 받기 원하니까, 신입이거나 어린 간호사는 평일날 오프를 나갑니다. 처음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평일이다 보니 같이 놀 사람도 없고 규칙적으로 뭔가를 할 수도 없습니다. 불면증을 흔히 겪습니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갑니다. 그래도 미혼이면 다행입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과 일하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애가 생기면 스튜어디스와 함께 가장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직업으로 손꼽힙니다. 아쉬운 소리 들어가면서 친정이나 시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야 합니다. 그마저 어려우면 입주 아주머니를 써야 하는데, 워낙 불규칙한 생활을 하니 거기에 맞춰 주는 입주 아주머니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거기다 아주머니 월급이 자기가 받는 월급과 별로 차이가 안 납니다. 이일을 계속해야 되나 싶습니다.
근무하면서 정해진 식사 시간은 따로 없습니다. 알아서 요령껏 먹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도둑질하는 것처럼 막 간호사실에서 숨어서 먹기도 합니다. 거기다 낮과 밤이 계속 바뀌니, 위염과 불면증은 달고 삽니다. 거기다 일이 바쁘면 화장실도 잘 못 갑니다. 소변을 참다 보니 일명 오줌소태, 방광염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병동을 걷고 뛰다 보니 다리가 저리고 심하면 하지 정맥류도 생깁니다.
의사는 오더를 냈다가 다시 낼 수 있지만, 한 번 환자에게 투약한 주사나 약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난리가 납니다. 의사가 오더만이라도 제시간에 내주면 정말 다행입니다. 환자는 언제 의사 오냐고 묻는데, 의사는 지금 바쁘다고 못 온답니다. 언제 오느냐고 물어봐도 "수술 중인데", "응급 환자 있어서", "회진 중이어서" 마치고 연락 준다는데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합니다. 환자는 아파 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의사는 연락이 안 되고, 약이나 주사 처방권이 없는 간호사는 발만 둥둥 구릅니다.
그 외에도 힘든 점은 수십, 수백가지겠네요. 어휴.... 업무 정도요?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간호사 한 명이 일본에서는 7명, 미국에서는 5.4명, 호주에서는 4명 볼 때, 한국에서는 19.5명의 환자를 봅니다.1) 그것도 많이 좋아진 겁니다. 2006년에는 27.6명을 봤으니까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한국인의 의료이용 횟수는 16.6회로 OECD 평균인 6.8회의 두 배가 넘습니다. 2) 그런데 의사수는 활동의사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서구 선진국들의 2/3 수준입니다. 즉 의사수는 2/3인데, 외래이용 횟수는 2. 44배 많습니다. 3)그러면 의사 1인당 외래 환자수는 3.67배 많아집니다.
다른 나라보다 3~4배의 일을 더 해내는 의사와 간호사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이 나라 의료 시스템이 미친 건지 모르겠습니다.
진료비는 OECD 평균의 1/3~1/4에서 심할 경우 1/10 수준이라는 것을 굳이 통계 자료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병원도 간호사도 의사도 박리다매입니다. 레스토랑이 아니라, 김밥 OO입니다. 진료비가 싸니까, 의사는 더 많이 환자를 볼 수밖에 없고, 환자의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진료비가 싸니까, 환자는 병원을 자주 방문하고, 진료의 질이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갑니다. 간병요?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19.5명인데 간병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4) 김밥 OO처럼 모든 게 셀프입니다. 수저도 자기가 챙기고, 물도 자기가 떠 오고 주문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간병도 환자와 보호자의 몫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돈보다 생명을 중시해야 하고 봉사 정신과 희생정신이 투철해야 하니까 돈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의사, 특히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 및 응급 구조사 분들 모두 건강하십시오. 일 년 기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비행기 기장은 1년 기준 1000시간을 넘으면 안 되고, 승무원은 1200시간을 넘으면 안 됩니다.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 선생님들은 작년부터 시행된 전공의 법이 제대로 지켜질 경우에 4000시간(주 80시간)을 근무할 겁니다. 거기다 담당 환자수는 의사 선생님이든 간호사 선생님이든 다른 나라에 비해 최소 2배에서 4배까지 많을 겁니다. 제 동기가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 병원에서 수련 받을 때, 입원환자를 81명을 찍더군요. 하아, 정말 제가 화가 다 더군요.
불규칙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에 불면증까지. 하지정맥류와 방광염은 덤입니다. 심할 경우, 우울증과 자살까지 겪습니다.
버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버스 운전기사가 장시간 운전을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모두 개인 책임입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성형, 미용에 뛰어들고, 간호사들이 일을 그만둡니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에 절반이 일을 할 뿐입니다. 젊을 때는 어떻게든 버티나 나이가 들면, 애가 태어나면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간호사 면허 소지자의 절반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병원 간호인력 이직률은 2018년 13.9%에 달하며, 1년 미만 간호사 이직률은 33.9%로 1/3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옮깁니다. 5)
버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운전기사가 장시간 운전을 하게 만든 시스템이 문제라고 하면서, 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오로지 개인의 실수이고, 개인의 인성 문제입니다. 사회는 담당 의료진에게만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돈을 밝힌다며 의사를 욕하고, 아픈 사람은 죽어나갑니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가고 또 목숨을 끊습니다.
미국의 경우, 여자 간호사의 자살률이 평균 여자보다 1.58배 높습니다. 6) 연구된 적은 없지만 미국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들의 사망률은 더 높을 것입니다.
의사요? 미국의 경우 모든 직종 중에 가장 자살률이 높고 7), 일반 인구에 비해 2.28~3.3배 높습니다. 8)
그러니 부디 건강하십시오. 자신의 몸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챙길 수 있습니다.
남의 생명을 살리려다, 자신의 생명을 깎아먹지 않기를.
1) 출처: 병원 간호사회 병원 배치 인력 실태조사
2) 출처: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40&clasCd=7
3) 출처: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40&clasCd=7
4) 출처: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6354
5) 출처: http://www.kmedinf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62
6) 출처: Nurse suicide in the United States: Analysis of the Center for Disease Control 2014 National Violent Death Reporting System dataset Archives of Psychiatric Nursing Volume 33, issue 5 October 2019, Pages 16-21
7) 출처: https://1boon.kakao.com/officeN/5ab46bf56a8e5100011c4f68
8) 출처: https://www.webmd.com/mental-health/news/20180508/doctors-suicide-rate-highest-of-any-professi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