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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13. 2019

응급실에 폭탄 던지기

연말특집: 술 II

 1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야간 진료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경찰이 주취자를 지구대에서 5시간 동안 방치했다가 사망했고, 법원은 이에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이 났습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몰랐을 겁니다. 이 판결이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올 거라는 사실을.....

 https://www.yna.co.kr/view/AKR20091001036600004

 

 이 사건 이후로 안 그래도 바쁜 응급실에 난리가 났습니다. 예전에는 파출소에서 지켜보고 집으로 보냈던 주취자를 경찰들이 일단 모두 병원 응급실로 데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일단 주취자를 병원에 내려놓으면, 경찰은 바로 사라져 버립니다.  판사님, 감사합니다

 일반 입원 환자 5명보다, 중환자 1명이 더 힘듭니다. 하지만 중환자 2~3명보다 술 먹고 난동 피우는 환자 1명이 더 의사의 진을 빼놓습니다. 행패를 부려서 경찰을 불러봤자, 상황이 끝나서 뒤늦게 오거나 와서도 직접적인 폭력이 없을 경우 멀뚱멀뚱 구경을 합니다. 대학병원에는 안전 요원도 있지만, 경찰도 그럴 진데 권한이 없는 그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의사는 경찰이 주취자를 격리하거나 병원 밖으로 데려가기를 바라지만 경찰은 혹시나 그랬다가 위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할까 봐 의료진에게 일단 환자 진료를 먼저 하라고 그럽니다. 술 먹고, 막 손발 휘두르고, 심지어는 수액대 폴대를 휘두르고 있는 사람을 말입니다. 의료진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ate=C01&nNewsNumb=20190330698&nidx=30700 

  경찰도 맞는데, 의료진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너무 바빠 고소를 할 생각도 못합니다. 저도 응급실에서 몇 번 멱살 잡히고, 떠 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가 버리고, 술에 취한 환자는 제풀에 지쳐 자다가도 가끔 깨면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링거줄을 뽑고 팔을 휘두릅니다. 피가 하얀 침대고 바닥이고 튑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집에 보낼 수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의사는 곤란에 빠집니다. 머리를 다쳐서 의식이 저하된 건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의사도 모릅니다. 뇌출혈은 오로지 brain CT만 찍어야지만 감별할 수 있습니다. 검사를 할까, 아니면 술 깰 때까지 놔둘까. 의사는 결정을 해야 됩니다. 


1. 각종 피검사와 뇌 CT 촬영 검사 진행

 a. 검사 결과가 정상일 경우 

    가. 술에 깬 환자가 동의도 없이 검사를 했다고 돈을 못 내겠다고 난리. 결국 병원 손해 


 b. 비정상(뇌출혈 등)으로 응급 수술 및 조치 필요

     가. 보호자 동의 없이 의료진 모두가 연대 책임을 지고 수술

        ==> 살면 다행

       ==> 환자가 잘못되거나 죽으면, 소송 및 징역, 배상의 위험

     나. 수술을 안 함==> 환자 사망==> 법원에서 의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과실 치사, 주의 소홀 등으로 소송 및 징역, 배상의 위험


2. 술 취한 환자가 링거 줄을 뽑고, 욕설을 하며 난동을 피워 검사가 도저히 불가능. 

 a. 신경 안정제를 쓰고 검사 진행. 

   가) 술에 의한 구토, 약 부작용 등으로 인한 호흡 곤란 및 흡인성 폐렴 등이 문제 발생

                                             ==> 의사주의 소홀, 환자나 보호자 동의 없음 등으로 소송 및 징역, 배상의 위험

  나) 검사 정상=> 술에서 깬 환자가 동의도 없이 검사를 했다고 돈을 못 내겠다고 난리 

  다) 검사 비정상==>다시 위의 1.b.로 


b. 신경 안정제를 안 쓰고 검사를 못했을 경우  

 가) 멀쩡히 깨면 다행

 나) 추후 문제 발생==> 법원에서 의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과실 치사, 주의 소홀 등으로 소송 및 징역, 배상의 위험


 와, 도대체 이 지뢰밭을 어떻게 피해 가야 할까요? 대학병원 응급실만 하더라도 하루에 주취자 10명은 옵니다. 의사와 병원만 죽어 납니다. 


 최근 법원 판결은 일단 환자가 죽으면,  의학적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의사에게 책임과 배상을 묻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안락사 논란이 일어났던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도, 병원 측 의료 과실은 없으나 시술 부작용을 본인이 아니라 딸에게만 설명 했다고 '설명 의무 원칙을 어겼다'라고 4000만 원 배상 판결이 났습니다. 

 응급실이면 어떨까요? 환자가 죽었는데 검사를 안 했다고요? 수술이 필요한데 보호자 동의 없이 수술을 했다고요? 보호자가 없어서 수술을 안 했다고요? 의사는 배상금에다 이제 징역까지 살아야 합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802110700004


 일 년만 해도 한 대학병원에 수백 명의 주취자가 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응급실 항상 적자입니다. 적자이기에 시설도 시설이지만, 인력은 정말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거기다 앞의 판결 때문에 119와 경찰서에서 술 취한 사람은 무조건 병원에 데리고 옵니다. 일명 '던지고' 갑니다. 경찰도 살아야 합니다. 

 폭탄 던지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은 병원 응급실입니다. 

 폭탄이 터지면, 일단 술 취한 환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봅니다. 거기다 예전에는 피해자였던 의사와 병원이 법에 의해서 가해자가 됩니다. 안 그래도 적자 응급실, 인력 감축으로 의사와 간호사는 죽어나는데 주취자에게 멱살 잡히고 한바탕 하느라 체력도 바닥나고, 냉정한 판단도 하기 힘듭니다. 그로 인해 응급실에서 온전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아픈 환자들의 진료가 늦어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진료비는 아시겠지만,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입니다. 상해나 자해는 보험이 안 됩니다. 

음주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술로 인한 질병이나 국민건강보험관리 공단에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70%까지 내줍니다. 술 먹고 다치거나 아파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돈 없다고 빼째라고 하면 병원에서 그 30%도  미수금 처리하고 대부분 그냥 넘어갑니다. 다음에 또 미수금 있는 환자가 와도, 병원은 진료 거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주와 뉴질랜드는 술을 편의점에서 살 수 없고 허가받은 bottle shop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bottle shop은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것도 낮 11시부터 밤 9시까지만 살 수 있습니다. 미국요? 미국 영화를 보시면, 냉장고에 열쇠가 달려 있습니다. 12시가 되면, 열쇠로 술이 든 냉장고 문을 잠급니다. 한국요? 500m 거리마다 편의점이 있고, 24시간 술을 살 수 있습니다. 13~20도로 꽤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가 한 병에 천 원 밖에 안 합니다. 

 한 때 저에게 영어 회화를 가르쳤던 50대 호주 출신 아저씨 폴은 한국을 극찬했습니다. 자기 나라는 술 값도 비싸고, 사기도 어려운데 한국은 정말 술을 마시기 너무 좋은 나라라고. 24시간 여는 편의점이 널려 있어 언제든지 구입 가능하고, 거기다 싸기까지 하니까요. 결국 폴은 한국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술꾼이 되었습니다. 


 각종 이익 단체(편의점, 식당 사장, 기타 등)의 압력과 로비에 법을 만드시는 분들은 술 판매를 쉽게 해 줍니다. 술 판매를 쉽게 해 줘서 정치인들은 표를 얻고, 상인들은 돈을 벌지만, 그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쉽게 알코올 중독에 빠집니다. 술 먹고 잘못되면 또 판사가 "땅, 땅, 땅"하고 그 모든 책임을 경찰, 소방관, 의사에게 떠 넘깁니다. 

 치료비도 국민과 병원이 다 내주고, 술 먹다 잘못되면 책임은 경찰, 소방관, 의사와 병원이 집니다.  일탈한 개인과 잘못된 제도가 만든 폭탄이 응급실에서 터져서 불쌍한 의료진과 아픈 환자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보너스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술 먹고 범죄를 저질러도 감형, 즉 형을 줄여 줍니다. 역시 원더풀 코리아입니다. 

https://www.kfm.co.kr/?r=home&m=blog&blog=news&front=list&uid=9328300&cat=16


  멋진 조언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꼭 술을 먹고 찾아가십시오. 맞아도 별로 안 아프고, 때려도 감형까지 되니까요. 그렇다고 판사는 찾아가지 마십시오. 이유는 각자 상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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