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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r 26. 2020

위험한 영양제

"몸이 힘들어서 그런데, 영양제 맞으려고 왔어요."

 하루에도 최소 한 두 명은 꼭 영양제를 맞으러 옵니다.  

 "제가 잠을 못 자고 피곤해서 그런데 영양제를 맞으러 왔어요."

 "저희 어머니가 기운이 없어서 그런데 수액을 맞을까 해서요."

 "밥을 잘 못 먹어서 그런데, 링거를 맞으려고요."

 "숙취가 심해서 수액을 맞을까 해서요."


 20 대 부터해서 80~90대까지 노인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영양제를 맞으러 옵니다. 한국에서는 영양제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입니다. 피곤할 때, 맞으면 힘이 나고, 밥맛이 없을 때 맞으면 입맛이 돌고, 기운이 없거나 무기력할 때 맞으면 기운까지 납니다. 


 거기다 마늘주사, 태반주사, 와인 주사, 신데렐라 주사, 백옥주사까지. 전직 대통령까지 '길라임 주사'(태반+백옥+신데렐라)를 맞으셨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광풍입니다.  


 효과요? 심한 탈진, 영양부족 말고는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대환영입니다. 효과가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일단 매출에 도움이 됩니다. 환자 한 명을 보면 진료비 12000~15000원이지만, 영양제는 최소 3만 원에서 20만 원이다. 환자 3~5명 보는 것과 영양제나 주사가 매출이 같습니다. 원가요? 5만 원짜리 영양제이면 대략 1만 5천 원 전후입니다. 

 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영양제를 흔히 "따봉"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의사 입장에서 '영양제'는 정말 좋습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한 이 시점에는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 같습니다.  


 일주일 전에 환자가 왔습니다. 65세 남자분이었습니다. 때가 때인 만큼 마스크를 쓰고 왔는데, 마스크 옆으로 보이는 얼굴이 부쩍 말랐습니다. 키가 작긴 하지만 40kg도 안 될 정도입니다. 거기다 퀭한 눈까지.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습니다.  

 저는 환자 기록을 살펴봅니다. 2018년 5월 저에게 처음 진료를 받았던 분입니다. 

 변이 가늘게 나오고, 설사도 하고. 하루에 변을 많이 보면 10번도 나오고. 2~3개월 안에 체중도 5kg 빠지고, 가끔씩 혈변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대장내시경을 비롯한 검사를 권유한 것으로 진료가 끝났습니다. 이어서 저희 병원 내과 선생님이 대장내시경을 하여 대장암 진단이 나와서 큰 병원으로 진료의뢰서를 쓴 게 마지막 기록입니다. 

 '오, 역시. 교과서적인 진료가 답이네.'

 고령체중 감소, 변이 가늘게 나오고 설사도 반복하는 등 대변 형태 변화, 혈변. 무조건 대장암을 의심합니다. 

"오늘 어떻게 오셨어요?"

"이틀 전에 대장 내시경 받고 힘이 없어서, 수액 맞으려고 왔어요."

"그래요. 재작년에 저희 병원에서 큰 병원 진료 권해 드렸는데, 어떻게 되셨어요?"

"수술받고, 장루(항문 기능을 할 수 없어서 대변이 밖으로 나오도록 함. 대변 주머니를 배에 달고 다녀야 해서 상당히 생활에 지장을 받음)를 달고 다녀야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그렇죠. 신경도 많이 쓰이고. 생활이 어렵죠."

 "맞아요. 어디 나가지도 못하겠고."

 옆에 계시던 아내분이 거듭니다. 

 "바깥양반이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받고는 영, 못 먹고 기운이 없어서 영양제 맞춰주세요."

 "그래요, 많이 힘드시죠? 영양제 맞고 가세요."

  진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의사로서 올바른 진료를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환자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이 동시에 제 마음속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오셨습니다. 

 "우리 양반이 여전히 기운이 없어서 오늘 또 영양제를 맞으러 왔어요."

 "네,,,,,,,,,."

 원래부터 마르고 기력이 없으셨지만, 일주일 만에 상태가 좀 더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표정이 심각해 보입니다. 

 "힘든 거 있으세요?"

 "너무 힘이 들고, 숨이 차요."

 "예? 숨이 차요? 얼마나 숨이 차요?"

 "피곤해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에요."

  머리가 아픕니다. 

dyspnea. 호흡곤란. 


환자들은 숨이 차다고 하는 이 증상은 흉통과 함께 의사에게 가장 위험하며, 고민을 하게 하는 증상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심장 및 폐문제가 떠오릅니다. 심장만 해도 펌프인 심장이 기능을 못하는 심부전부터 해서 부정맥, 심근경색 등 심각한 질환이 수두룩하고 폐만 해도 폐동맥 색전증 같은 초응급 상황에서 폐부종, 천식, 폐기종 등 다양합니다. 그 외에도 심한 빈혈, 영양 결핍, 간부전 등... 

 "이 양반이 지난주 내시경 하고 나서 영 먹지를 못하고 힘이 없다 그러네요. 영양제나 맞춰주세요."

 보호자분은 옆에서 계속 영양제나 맞춰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폐부종, 심부전, 신부전 같은 경우 수액을 주면 오히려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환자분 다리부터 만졌습니다. 다행히 심한 폐부종이나 심부전 등이 있을 때, 피가 다리에 정체되어 붓는 하지 부종은 보이지 않습니다.  

 "환자분, 언제부터 숨이 차요?"

 "내시경 한 후부터요."

 "지난주에 저한테 왔을 때도 그랬어요?"

 "약간 그랬는데 더 심해졌어요."

 '아, 실수했네. 환자가 피곤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숨이 찬 거였네.'


 대학병원이면 비교적 간단합니다. 입원시키고, 각종 검사를 쭉 진행해서 원인을 찾으면 됩니다. 동네의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피검사를 해도 내일이나 나올 거고. 하루 만에 숨찬 게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 병원은 엑스레이와 심전도는 되니까,  그 두 가지 검사부터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못 먹어서 기력이 없고 숨이 차다고 판단을 내리고, 영양제를 맞으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호자와 환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난관입니다. '검사를 해야 합니다.',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해도, 그냥 영양제만 놔달라고 우기시는 분들은 꽤 맡습니다.  

 혹시나 큰 병일까 하는 두려움과 각종 검사비에 여간 귀찮고 불편한 상급병원, 작은 의원에 대한 불신, 영양제만 맞으면 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 등이 의사가 검사를 권하거나, 상급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라고 해도 안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은 신장 투석하는 환자가 어지럽고 힘이 없다고 딸로 보이는 30대 보호자와 같이 왔는데 영양제만 놔달라고 우겨서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모시고 여기까지 힘들게 왔다."

 "투석하는 병원에 전화하니, 근처에서 영양제를 맞으라고 하더라."

 신장 투석하는 환자는 언제든지 전해질 불균형이 생길 수 있고, 콩팥으로 배출되는 독소가 몸에 쌓여서 생기는 요독증일 수도 있으니, 무조건 혈액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 들였으나 막무가내로 영양제만 놔달라고 하셔서 서로 목소리가 높아진 적도 있습니다. 

 끝내 제가 응급실로 가시라고 하자 문을 나가면서 저와 밖에 있는 대기 환자들 들으라고

 "의사가 영양제도 안 놔주고 아픈 환자 보낸다."

 라며 끝내 불만을 드러내시며 가셨습니다. 


 "할아버지, 숨이 찬 건 좀 이상하거든요. 대게는 심장 아니면 폐문제니까, 가슴 사진과 심전도 한 번 찍어볼게요."

 "아니, 못 먹어서 그러니 영양제만 놔달라고."

  옆에 있던 할머니가 계속 영양제를 달라고 하십시다. 

 "할머니, 검사는 바로 끝나고 비용도 만원 채 안 나오니까, 일단 찍고 다 괜찮으면 드릴게요. 네?"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과장님, 엑스레이요."

 작은 의원이라, 가슴 사진도 제가 직접 가서 찍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엑스레이 정말 싫어합니다. 

 "자, 숨 크게 들이마시고, 스읍, 참으시고, 하나, 둘, 셋."

 "찰칵."

  '아!'

 심전도까지 찍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였습니다. 공기가 들어가야 하는 폐에 물이 차서, 아무리 숨을 쉬어도 산소가 공급이 안되니 숨이 차고 기운이 없다고. 수술받은 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하셔야 된다고 말입니다. 

 "3일 후에 다시 병원 가는데, 그때 가면 안돼요?"

 "그때는 증상이 없을 때 계획이었고, 지금은 증상이 있으니 계획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바로 응급실로 가십시오."

 환자와 보호자 모두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진료의뢰서 한 장을 가지고 병원 밖을 나섭니다. 마음이 복잡할 겁니다. 영양제만 맞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의사가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하니 문제가 커졌습니다. '걱정할 자식들과 또 어떻게 병원에 가나, 입원은 며칠이나 해야 되나, 큰 병이면 어떡하지' 머릿속에 걱정이 떠나지 않을 겁니다. 


 폐에 물이 차 있는데, 수액까지 주면 폐에 물이 더 찰 수 있으니 영양제를 안 주기를 잘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실수를 하였습니다. 일주일 전에 왔을 때, 좀 더 꼼꼼하게 진찰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부터 이미 폐에 물이 조금씩 차 올랐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영양제를 원해서, 의사인 저는 일단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영양제만 주고 만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영양제를 맞으러 왔지만, 상태가 안 좋은 것을 그제야 깨닫고 부랴부랴 검사를 한 것입니다. 

 처음엔 의사로서 잘못했고(꼼꼼한 진찰을 하지 않고,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데로 끌려 감), 두 번째로는 의사로 잘했습니다. (꼼꼼한 진찰과 환자와 보호자가 해달라는 데로 하지 않고, 전문가적 판단을 내림)


 영양제를 맞고 싶다고요? 영양제를 맞으러 병원에 가지 마십시오. 

 원인을 밝히는 게 먼저 입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기운이 없고, 기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꼭 영양제를 맞아야겠다고요? 어디가 아픈지 의사에게 말한 후, 진찰이 다 끝날 때 즈음 영양제를 맞고 싶다고 하십시오. 의사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처음부터 영양제 맞으러 왔다고 하지 마십시오.  저와 같이 의사가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덧 붙이는 말: 이 글을 전국에 계신 원장님들께서 싫어합니다. 또한 어차피 나중에 원장이 미래의 필자도 싫어합니다. 


표지 사진 출처: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3/2017121301137.html

(무단 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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